트럼프 당선, 기후공시 도입에도 변수?···“시장 요구는 없어지지 않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기후대응 관련 정책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기후변화 대응에 배치되는 입장들을 표명하면서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계획 등을 공개하는 ‘기후공시 의무화’도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미 유럽연합(EU)에서 기후공시 압박이 커지는 상황 등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를 고려하면, 국내 기업들이 미국의 기후대응 후퇴 가능성에 보조를 맞춰선 안 된다고 말한다.
12일 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2기 정부 시작을 앞두고 기후공시를 비롯한 환경 정책이 역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5일 “공화당은 트럼프가 내년 취임한 후 기업의 온실가스 기후공시 요건 등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타 우선순위를 해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빠르면 1월부터 기후공시 규정을 취소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포브스도 7일 “기후공시는 보류되거나 심각하게 축소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SEC는 미국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상원 승인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5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지난 3월 기후공시 의무화 규칙은 보수 성향 위원 2명의 반대에도 민주당 성향 위원 3명이 찬성해 통과했다. 하지만 이후 SEC 권한의 적법성 시비 등 재계와 공화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실제 효력은 각종 소송으로 중단된 상태다.
그간 바이든 정부의 SEC는 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기조였지만, 트럼프 행정부로 교체를 앞두게 되면서 모든 게 불투명해졌다. 상원까지 장악한 공화당에서 SEC 위원을 교체하거나 SEC 권한을 제동하는 법적 장치를 동원해 기후공시 의무화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7월 유세 현장에서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을 가리켜 “취임 첫 날” 교체한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미국의 기후공시 의무화가 늦춰지면 한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삼정 KPMG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국내산업 영향’ 보고서에서 “미국 내 사업을 영위하는 한국 기업의 탄소배출량 감축 의무 및 탄소배출권 구매부담, 상장사 대상 기후공시 의무 부담이 감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에도 당국은 미국 등 주요 국가의 ESG공시 의무화 지연을 사유로 국내 공시 의무화 일정을 연기한 바 있다.
‘그림자 부통령’ 머스크 입에 쏠리는 눈
하지만 미국이 연방 차원에서 공시를 막더라도, 이미 주 단위에서 기후공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주 최초로 기후공시 의무화 법을 통과시켰고, 지난 5일엔 이를 막기 위해 미국 상공회의소가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기후변화 대응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점도 변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그림자 부통령”(영국 가디언)으로 예상되는 머스크가 트럼프의 친탄소 정책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테슬라가 옥상 태양광 패널과 가정에 백업 전력을 제공하는 배터리를 판매하고 그 매출이 전체의 10%를 차지한다는 점을 거론하며 “기후 변화와 청정 에너지에 대한 머스크의 견해가 새 행정부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느냐가 남은 최대 질문”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은 기후공시를 강력 추진하는 유럽연합(EU)에 보조를 맞춰야 할 의무도 있다. 2028년(회계연도)부터는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공시지침(CSRD)을 한국도 따라야 한다. 구체적 대상은 EU 역내 순매출이 1억5000만 유로를 초과하며, 역내에 자회사 또는 지사를 두고 있는 기업 등이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미국 내에서 정책적으로 기후공시 의무가 막히더라도 시장에서 기후공시에 대한 요구가 없어지진 않는다”며 “자금 조달과 기업가치 상승을 노리는 기업들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투자자가 필요한 정보를 공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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