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汶楗 풍수유람] 51. 검찰총장 심우정 선영

손건웅 2024. 11. 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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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6일, 법무차관이던 심우정이 검찰총장이 되자 청송심씨 종보(宗報)에는 가문의 영광이라며 관련 기사를 실었다. 청송심문(沈門)은 1880년 심승택이 대사헌(오늘날의 검찰총장)이 된 이래 144년 만의 쾌거라며 가문의 긍지를 드러냈다.


청송심문은 고려말 문신인 심홍부(沈洪孚)를 시조로 청송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조선시대 왕비 3명, 정승 13명을 배출하는 등 명문가의 지위를 유지했는데, 기실 심문의 명망은 세종대왕의 왕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1395~1446년)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버지 심온(沈溫, 1375~1419년)이 억울하게 사사(賜死)되는 개인적 불행을 감내하며 남편인 세종이 성군의 치세를 이루도록 내조한  부덕지도(婦德之道)는 오늘날에도 귀감으로 남아있다. 

 

▲ 심택현(沈宅賢, 1674~1736년)과 손자들 묘소 후경. 공주 율당리.

청송심문 17세인 심택현은 서인의 영수이자 병조판서인 심의겸의 6 대손이다.

1699년 진사시에 합격한 이래 당쟁으로 탄핵과 파직을 당하기도 하고 재등용되는 과정에서 대사헌과 이조판서 등 조정의 내외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가 말년에 공주로 낙향하니, 심문의 율정리 입향조가 되었다.

하단은 원래 장손 심관지(沈觀之) 묘소만이 있었는데, 근년에 형제들의 묘소를 이장해 모셨다. 

▲심택현 맥로도

맥로도. 뒤에서 내로오는 맥로가 심택현 묘소에 8회절 명당을 맺었다.
 
맥로이론에 의하면 앞에 있는 손자 묘소들은 당연히 조부 묘소에 비하여 풍수파워가 떨어진다.

 
8회절 명당의 풍수파워이면 향촌에서는 알아주는 집안이 될 수 있다. 심택현은 생전에 조정의 핵심 요직을 역임하고 장손 심관지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을 역임했으니 향촌에서의 명망은 언급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 심봉섭묘소 

증조부 심봉섭(1887~1918년), 증조모 안동권씨(1884~1962년) 묘소. 공주 청룡리. 

타인의 선영을 찾아가는 길은 어려움에 부딪히는 경우가 발생한다. 묘도를 찾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심우정의 증조 묘소가 그랬다. 묘도의 초입은  당진~영덕 고속도로의 개설로 생겨난 지하도를 지나야 한다. 차에서 내려 묘소까지는 500여 미터의 길이 여전히 예전의 모습이지만, 가쁜 숨을 내쉬며 꼴딱 고개를 올라서야 선영이 시야에 들어온다.

▲ 심봉섭 맥로도

맥로도. 전면의 우측 서북방에서 진입하는 맥로가 길흉경계선을 넘어 증조 묘소에 12회절, 증조모 묘소에 11회절의 명당을 맺었다. 심봉섭은 32세로 단명했지만, 후손들의 영달을 추동해 주는 명당에 자리한다. 


청송심문 대종회장을 역임한 손자 심대평이 이 묘소의 풍수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는 22대, 24대 대전시장(관선)과 24대 충남지사(관선)을 역임하고, 노태우 정부에서는 행정조정실장과 행정수석 비서관을 역임, 1995~ 2006년까지는 3연임 충남지사(민선)을 역임하고 2007~2012년까지는 재선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의 30년이 넘는 관록(官祿)은 이곳이 명당임을 입증하고 있다.

▲ 심재갑 묘소

 조부 심재갑(1904~1989년), 조모 경주김씨(1911~1994년) 묘소 후경. 공주 율정리.
심재갑은 평생을 교직에 몸담으며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직했다. 장면 정권 시절에는 잠시 대전 교육감에 당선되는 영예도 누렸다. 또한 만년에는 아들의 영달을 오랫동안 지켜보았으니 여한이 없었을 것이다.

▲ 심재갑 맥로도

맥로도. 산세의 모양으로 판단하는 만두형세(巒頭形勢)로 보면 산 옆구리에 억지로 묘를 쓴 느낌이다. 더구나 묘소 전면은 석축을 쌓아 인위적으로 조성했으니 명당이 아니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산세와는 무관하게 묘소의 청룡방에서 맥로가 진입하여 10회절의 명당을 맺었다.
 
증조(심봉섭)의 묘소가 달리는 말과 같은 힘이 되었다면, 조부(심재갑)의 묘소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심대평의 여유있는 말년과 심우정의 관록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율정리의 청송심문은 수백 년 전의 조상님부터 근년에 이르는 묘소까지 모두 관리를 잘하고 있다. 그들의 정성과 효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아쉬운 점은, 그들 선영의 풍수파워는 국무총리급에는 미치지 못한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심대평이 이해찬에게 석패한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또한 선영에는 대권반렬의 정치인이나 조(兆)단위 기업인이 배출될 명당도 비어있는 점이었다.
 
검찰총장 심우정의 선영을 돌아보니 심우정 부자(父子)의 관로(官路)는 풍수파워와 부합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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