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통계 앞 월급쟁이는 ‘털 뽑히는’ 느낌이 든다 [아침햇발]

정남구 기자 2024. 11. 12. 15: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부동산 관련 세금 상담 안내문. 연합뉴스

정남구 | 선임기자

“과세의 기술은, 거위의 비명을 최소화하면서 가장 많은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

프랑스 루이 14세 통치 초기에 재무장관을 지낸 장바티스트 콜베르(1619∼1683)의 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8월, 세법 개정안에 대해 해명하면서 조원동 경제수석이 이 말을 입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해 소득세 개편의 핵심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것이었는데, ‘총급여 3450만원 이상 중산층’의 세 부담이 늘어나게 설계해, 불만을 샀다. 조 수석은 ‘과세 대상을 늘리고 세 부담은 줄인다’고 해명하려고 콜베르의 말을 인용했을 텐데, 납세자들은 ‘실제 털을 뽑히는 느낌’에 더 바르르 떨었다.

정부는 5일 뒤 수정안을 냈다. 총급여 5500만원 이하는 세 부담이 늘지 않고, 7천만원 이하는 평균 2만~3만원 늘게 했다. 그렇게 넘어가나 했는데, 2015년 1월 연말정산 때 난리가 났다. 연 급여 5500만원을 밑도는데도 세금이 늘어난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541만명에게 4227억원을 환급해주는 조처를 취했다.

근로소득세는 ‘비명 안 나게 깃털 뽑기’가 쉬운 세금이다. 세제를 가만 놔두기만 하면 된다. 물가가 오르고 명목임금이 오르면 높은 세율이 적용돼 세수가 절로 늘어난다. 박근혜 정부의 소득세제 개편 이후 과세표준 구간을 계속 손보지 않자 소득세수가 급증했다. 국세통계를 보면, 2010∼2021년 법인세수가 1.9배로, 부가세수가 1.45배로 늘어나는 동안 소득세수는 3.05배로 늘었다. 근로소득세는 3.24배로 늘었다. 근로자 1인당 세액이 2013년 198만원에서 2020년 361만원으로, 거의 갑절로 늘어났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을 약간 조정했다. 지방소득세 포함 6.6% 세율 구간을 과표 1200만원까지에서 1400만원까지로, 26.4% 구간을 4600만원 이상에서 5천만원 이상으로 높여 세금을 깎아줬다. 일부에선 ‘소득세도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왔는데, 정치적 의미에서 보면 법인세 최고세율을 내리고, 종합부동산세를 큰 폭으로 깎고, 금융투자소득세도 유예하면서 소득세 납세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개평’ 성격이 짙었다.

이듬해인 2023년 우리나라 총 국세수입은 344조천억원으로 전년에 견줘 51조8천억원이나 줄었다. 하지만 근로소득세는 57조4천억원에서 59조1천억원으로 늘었다. 근로소득세의 세수 비중이 2022년 14.5%에서 17.2%로 뛰었다.

올해는 어떨까? 기획재정부는 9월26일 올해 국세수입이 337조7천억원으로 작년보다 6.4조원 더 줄 것이라고 세수 재추계 결과를 밝혔다. 기재부는 “법인세 세수 감소폭이 당초 예상보다 큰 가운데, 양도소득세 등 자산시장 관련 세수가 부진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근로소득세는 ‘취업자 수와 임금 증가에 따라’ 늘고 있다고 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근로소득세가 61조7천억원으로 작년보다 4% 늘어날 거라 본다. 세수 비중은 18.3%까지 치솟는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금투세를 폐지로 몰아붙이고, 최고세율 인하와 가업상속공제 확대를 통한 상속세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그로 인한 세수 감소를 보전하기 위한 세금이 월급쟁이들한테 또 얹혀질 가능성이 높다. 부자 감세 남발이 ‘그저 남 좋은 일’에 그치지 않고, ‘일해서 벌어먹는 이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콜베르는 잔혹한 관리가 아니었다. 그의 묘비에는 “멋진 세금으로 프랑스를 부유하게 한 영웅, 여기 잠들다”라고 쓰여 있다. 그의 ‘깃털 뽑기 비유’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도록 세원을 넓히고 부담은 줄여 큰 저항 없이 세수를 늘리라’는 것이었다. 권력과 부를 누리면서 면세 혜택까지 받던 성직자와 왕족·귀족에게도 세금을 물린 것이 그의 기술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거꾸로 간다. 재벌 기업과 주식·부동산 자산가의 세금은 뭉텅뭉텅 깎고, 근로소득자에게는 깃털 뽑는 기술을 쓴다. 2022년 근로소득세는 과세 대상 소득의 32.1%를 점유한 상위 10%가 전체의 72.4%를 냈다. 소득세도 면세자를 계속 줄여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산가들이 감세로 횡재를 하는 동안, 근로소득자들의 소득 대비 세금 비율만 가파르게 올리는 것은 ‘몰빵 애국’을 강요하는 일이다. 월급쟁이들이 세수 통계와 연말정산 결과 앞에서 ‘털 뽑히는’ 느낌이 든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jej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