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기 때와 달라"…EU, 2기 관세는 회피 모색할듯
일부는 보복 촉구하지만 대부분은 "충돌 피하려 할 것"
"미중 갈등 심화시 대중 공조 강화도 EU엔 긍정적"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유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통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CNBC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1기 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대응했던 것과 달리, 2기 때에는 중국에 함께 맞서야 한다는 점을 부각하며 관세를 최대한 회피하는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유세를 펼치면서 중국산 수입품에는 60~100%, 기타 모든 수입품에는 10~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수없이 공언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예측불가능한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관세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경고에도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강조한 바 있어서다.
트럼프 당선인은 보호무역주의를 미국의 일자리와 성장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간주, 미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인 유럽연합(EU) 및 중국과 새로운 긴장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유럽의 정책 입안자들은 관세 부과에 따른 부담을 어떻게 덜어낼 수 있을지 대응책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대응책은 크게 보면 보복을 통한 맞대응과 협상을 통한 회피로 나눌 수 있다. EU는 트럼프 1기 시절에는 똑같이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제한하거나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복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EU를 이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더 이상 없고, 후임자 역할을 맡았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영향력도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EU 내부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압박이 외교·안보 협상을 위한 단순 카드인지, 실질적인 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정책인지 여전히 불분명해서다.
독일 Ifo 국제경제센터의 리산드라 플라흐 연구원은 “EU 서비스 시장의 더 깊은 통합과 더불어 보복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며 보복 관세, 서비스 무역 및 지적재산권의 무역 제한, 외국인 직접투자 및 공공 조달에 대한 접근 제한 등을 제안했다. 그는 “특히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수출과 관련, EU와 독일은 자체 조치를 통해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EU가 채찍보다는 당근을 사용할 가능성이 더 높다면서, 관세를 전면 회피하는 방향으로 대응 가닥을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 관세를 면제해주는 대가로 특정 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을 확대하는 식이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유럽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앤드류 케닝엄은 2018년 7월 당시 EU 집행위원장이었던 장 클로드 융커가 협상 카드로 내세웠던 액화천연가스(LNG)와 대두 등이 수입 확대 품목에 포함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미국이 10% 관세를 부과했을 때 유로존 국내총생산(GDP) 감소폭은 0.2%로 제한적일 것”이라며 “EU가 어떤 종류든 협상에 성공하면 피해 규모는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EU가 미국의 관세 위협을 막기 위해 “더 광범위한 지정학적 협정을 체결할 수도 있다”며 “예를 들어 EU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방위 장비를 구매하기로 약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방안은 “독일을 포함한 많은 회원국들이 공동 차입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어 자금 조달 방안을 합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라시아그룹의 애널리스트들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미국보다) 먼저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농업, LNG, 방위와 같은 핵심 분야에서 미국의 수출을 강화하는 목표를 따르게 될 것”이라며 “미국으로부터 LNG 수입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어 “조 바이든 정부와 협상 중인 두 거래,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글로벌 협정과 EU-미국 중요광물 협정을 마무리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 또한 EU-미국 무역기술위원회를 통해 인공지능(AI) 및 수출 통제와 같은 디지털 문제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더 많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U의 대중 정책이 미국과 공조하는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역시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케닝엄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산 전기자동차 및 기타 기술의 수입에 대한 추가적인 장벽이 생길 수 있으며, 중국으로부터의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이 억제되고 첨단 기술 제품 수출에 대한 제한이 강화할 수 있다”며 “EU는 중국과의 관계 단절을 주저하고 있지만, 미국의 압력에 직면하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유라시아그룹의 분석가들도 “가장 어려운 정책 대응은 중국에 대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거들었다. 또 “EU는 첨단 반도체 등과 같은 특정 분야에서 미국과 뜻을 같이할 가능성이 높은데, 트럼프 당선인이 무역전쟁을 시작했을 때 중국에만 집중한다면 중국도 EU에 신경을 쓰지 못해 단기적인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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