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미북 제네바합의 30년…철저한 실패, 그리고 트럼프

2024. 11. 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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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지난달 21일은 1994년 세계를 떠들석하게 했던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서명한 지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 후 핵확산방지조약(NPT)탈퇴를 위협한 것이 제1차 북핵위기다. 결국 북한이 플루토늄 생산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에 1000메가와트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비판적 여론이 높았으나 미국에선 북한 핵개발을 원천봉쇄한 클린튼 행정부의 쾌거로 치켜세워졌다.

이 무렵 북한은 또다른 핵무기 원료물질인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시설을 극비리에 개발하고 있었다. 북한이 1993년 파키스탄 베나르지 부토 수상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의 미사일 기술과 파키스탄의 우라늄 농축기술을 교환키로 한 비밀합의가 서방 언론에 공개되었고, 2002년 10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존재를 시인함으로써 그 다음해 제네바합의는 파기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양자협상이 더는 무의미 하다고 판단해 2003년 8월 남북한과 중국, 일본, 러시아를 끌어들여 6자회담 시동을 걸었으나 북한은 2009년 제2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부과에 대한 반발로 6자회담을 전면 거부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은 2012년 2월 29일 윤달 합의(Leap Day Deal)로 상당한 진전을 보이는 듯했으나, 합의후 두달도 안돼 은하3호 로켓을 발사했고 2.29 합의는 파기됐다. 클린튼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연이은 북핵협상 실패는 북한에 대해 동정적이던 민주당 행정부 핵비핵산 전문관료들의 등을 완전히 돌려놓았다.

2016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전후한 시점에서도 북한은 4·5·6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2017년 7월엔 ICBM의 우주궤도 진입을 시도했다. 싱가폴 미·북 정상회담과 하노이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북한은 미·북 정상회담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핵무장 고도화를 위한 시간벌기에는 성공했다. 북한은 지난 30년 6-7차례에 걸쳐 핵위기를 조성한 뒤 ‘위기발생→위기봉합합의→합의파기’의 악순환 패턴을 반복하며 핵무장 고도화를 위한 시간벌기와 굳히기 작전에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였다.

북한 비핵화의 30년에 걸친 처참한 실패 원인을 따져보면 첫째는 북한의 핵개발 능력과 의지를 과소 평가한 점이다. 아울러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선의를 기대하고 북한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본발상부터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당초부터 불가능했던 비핵화를 잘못켜진 유튜브의 ‘쇼츠’처럼 무한 반복하지나 않았는지 되돌아 봐야한다.

북한이 고도의 핵무장을 이룬 이상 시간은 결코 우리의 편이 아니다. 북한은 지난 30년간 집요한 노력으로 이미 60~90기의 핵무기 또는 핵무기용 핵분열 물질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며, 상당한 숫자의 핵무기 추가 생산도 예상된다. 이제 남북한 간의 ‘핵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는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일방적 핵우산에 의한 것이든, 한·미간 핵과 재래식 군비의 통합(CNI) 전략이든, 아니면 대한민국의 독자적 핵무장이든, 북한의 오판을 방지할 수 있는 ‘공포의 핵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한국으로선 어느 때보다 큰 불확실성과 맞서야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초기 북한에 대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쏟아붓던 입장에서 돌변하여 김정은과 30통 가량의 소위 러브레터를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한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앞으로 어떤 상황으로 반전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미·북 정상회담이 열려,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이 주한 미군의 중대한 변화나 핵우산 보호에서 발빼기를 시작할 가능성도 회자되고 있으나 한∙일이 힘을 합쳐 트럼프행정부가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확대·발전시키도록 전력투구해야한다.

우리에게도 기회의 창이 닫혀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지난 70년처럼 안보를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관계에서 벗어나 한·미 동맹관계를 세계공급시장을 함께 장악할수 있는 상호보완적 첨단산업기술동맹으로 그 성격을 전환할 시기가 되었다. 당장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분야로 우라늄 농축기술이나 잠수함을 비롯한 군함건조 분야가 있다. 한·미가 이 분야에서 새로운 형태의 컨소시움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주도해 나갈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농축우라늄 시장의 경우, 러시아와 중국이 전세계 공급량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상황에서는 언제든지 글로벌 공급 시장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전세계 농축우라늄 공급주도를 목표로한 한·미간 공동컨소시움 구성을 서둘러야 할 때이다. 조선분야는 어떤가. 120년전 미국의 조선산업 보호를 위해 제정된 존스법(Jones Act)은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지금에는 오히려 독과점의 폐해를 낳아 미 해군의 압도적인 해양 지배력이 위협받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세계 최고의 함정 조선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과 적극 협력해야할 상황이다.

이러한 한미간 새로운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G7 가입을 적극 지원해 준다면 한반도의 안보지형은 확연하게 달라질 것이다.

박인국 전 주유엔대사·전 최종현학술원장

박인국 전 주유엔대사·전 최종현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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