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생애 차별이 쌓여 여성노인 절반 ‘빈곤’
57살 김아무개씨 일과는 오전 6시50분께 시작한다. 해가 뜨기 전이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오기 전에 기본적인 청소를 마쳐야 한다. 강의실과 교직원 사무실, 화장실, 건물 로비 복도를 청소하고, 쓰레기로 꽉 찬 휴지통을 비운다. 김씨가 맡은 청소 구역만 17개다. 쉴 틈이 없다. 곳곳을 빠르게 이동해야 한다.
특히 강의실 청소가 힘들다. 손걸레질이 필요한 얼룩 묻은 책상은 왜 그렇게 많은지. 책상 서랍에 쓰레기는 왜 그렇게 많은지. 강의실 바닥을 대걸레로 밀어야 하는데 의자는 왜 그렇게 무거운지. 일하면서 어깨, 팔, 손목, 다리가 안 아플 수가 없다. 김씨의 청소 노동자 경력도 벌써 2년이 넘었다.
그전엔 남편과 슈퍼마켓을 10년 동안 운영했다. 단 등록된 사업자는 남편이었다. 김씨는 남편과 함께 슈퍼마켓 일을 했지만, 외형상 무소득 배우자였다. 무소득 배우자는 국민연금 가입 대상이 아니다. 그 뒤로 김씨가 2년간 주말에 쉬지 못한 채 마트 노동자로 일하고, 지금 청소 노동자로 2년 넘게 일하고 있지만 10년의 소득 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10년 뒤에 받게 될 국민연금 월 지급액을 보면 알 수 있다. 37만원이다. 김씨가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기에 “굉장히 부족한 액수”다.
그래서 김씨는 계속 일할 수밖에 없다. “먹고 살려면 계속 일해야죠. 우리 사회가 그렇잖아요, 지금. 나이 먹어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비빌 언덕이 없으니까.”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사회보장제도 중 하나가 국민연금이다. 나이가 들어 더는 일할 수 없는 개인에게 노후에 필요한 소득을 국가가 매달 지급하는 제도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국민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시기에 번 소득 일부를 보험료로 내고 노후에 매달 연금을 받는다. 그래서 노령연금이라고도 한다.
몇 살부터 받을 수 있는지는 출생연도에 따라 다르다. 1961~1964년생은 63살, 1965~1968년생은 64살, 1969년생 이후로는 65살부터 받는다.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하면 최소 1년, 최대 5년 일찍 연금을 받을 수 있다. 1964년생을 예로 들면 빠르면 58살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은 얼마의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 보험료 액수를 결정하는 소득액과 보험료를 낸 기간이 연금 수준을 결정한다. 납부 기간이 길고 임금소득이 높으면 노후에 받는 연금액이 올라간다. 반대로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오래 일하지 못하거나 받는 임금이 적으면 노령연금 액수가 낮거나 연금을 받기가 어렵다. 둘 중에 후자가 여성들이 주로 처한 현실이다.
“하고 싶은 일 누르며 살아야 했던 시간”
55살 정아무개씨는 24살 때 제조업 회사에 들어갔다.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공장이었다. 28살에 결혼하고 임신했다. 야간근무가 많아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웠다. 당시 남편도 직장 생활을 해서 아이를 온종일 돌볼 수 없었다.
육아를 떠맡을 수밖에 없었던 정씨 입장에선 퇴사 말곤 방법이 없었다. 입사 4년 만에 회사를 나왔다. 그 뒤로 10년 넘게 아이 양육과 집안일을 책임지는 전업주부로 지냈다. “육아와 가족 돌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누르고, 누르고, 계속 누르며 살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자녀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정씨는 무급 가사·돌봄노동 늪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보육교사 1급 자격을 취득하고 지역아동센터와 가족센터에서 다문화 강사로 근무했다. 초등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짧게 어린이 통학버스 안전 도우미로 일한 적도 있다. 아동·청소년 대상 교육, 상담 활동을 하는 비영리법인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특수학교에서 특수교육지도사로 근무한다.
틈틈이 유급노동을 하면서 국민연금 최소 가입 기간(10년)을 간신히 넘긴 정씨는 65살이 되는 2034년 11월부터 월 59만원의 노령연금을 받을 예정이다. 많진 않지만 정씨에겐 정말 소중한 돈이다.
“갱년기가 오면서 관절도 아프고 몸에서 아프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점점 나빠질 텐데 모아둔 자산은 없고, 뼈와 살을 갈아 넣으며 오랫동안 해온 가사·돌봄노동은 (유급노동으로) 아무런 인정도 못 받고….” 정씨는 자신의 상황이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성차별이 누적된 결과”라고 표현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임금이 적다. 2023년 남성 임금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2만6042원이다. 여성 임금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남성 임금의 71% 수준(1만8502원)이다.(여성가족부 ‘2024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반면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여성이 더 높다. 여기서 말하는 저임금은, 전체 노동자 임금을 가장 낮은 금액부터 가장 높은 금액순으로 순위를 매겼을 때 가운데(중간값)를 차지한 임금(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에 해당하는 값이다. 남성 임금노동자 중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10.9%다. 여성 임금노동자에서 저임금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크다. 24.5%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2023년 기준)
저임금 노동자·비정규직 비율 모두 여성이 높아
여성은 또 남성보다 고용이 불안하다. 2023년 남성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29.8%인데 여성은 45.5%다.(여성가족부 ‘2024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40대 중반인 김아무개씨는 실외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노동자)으로 일한 지 20년 가까이 됐다. 캐디 노동자는 기간제 노동자, 단시간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중에서도 특수고용 노동자에 속한다. 택배 기사, 학습지 방문교사, 대리운전기사처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람이다.
김씨는 골프장 이용객이 제공하는 캐디피(fee)에 따라 월수입이 결정된다. 그래서 소득이 일정하지 않다. 김씨가 일하는 골프장의 성수기는 여름철인 6~8월이다. 이때 월수입은 400만원 정도다. 반면 겨울철인 12월, 1월, 2월엔 한 달에 200만원 벌기도 힘들다.
소득 변수는 또 있다. 이용객들 태도다. 캐디 노동자가 라운드(골프장에 있는 18개의 홀을 모두 도는 일)를 완료하지 못하면 캐디피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악용해 갑질을 일삼는 이용객이 많다. 반말과 욕설은 기본이고 폭행, 신체적·언어적 성희롱을 일삼는 이용객도 적지 않다.
“‘체인’(체인지를 가리키는 말로, 캐디 노동자 교체를 뜻함)이 많아졌어요. 원래 캐디가 라운드 중에 다치거나 경기 진행을 제대로 못하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체인을 하는데, 지금은 손님들이 자기 기분 나쁘다며 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해요. 언니(동료 캐디)가 고객이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는데, 같이 있던 사람한테 그랬대요. ‘(골프채로 친) 공이 너무 안 나가니까 확 기분 잡쳐서 캐디 교체해달라고 했더니 바꿔주던데?’”
현재 소득액 기준으로 김씨가 65살부터 받는 연금은 월 56만원 정도다. “전기료, 수도요금 등 공과금과 통신비만 내도 증발할 것 같은 금액”이다. 지금 나이에 다른 일을 찾기 힘들다는 김씨. 몸이 따라줄지는 모르겠지만 50대 중반까지는 일하고 싶다.
김씨는 일하면서 크고 작은 부상을 겪었다. 비 오는 날 골프장 비탈길에서 미끄러져서 다리뼈가 부러져 2년 동안 치료받은 적도 있다. 팔, 어깨, 허리, 다리 등 안 아픈 곳이 없다. 그래도 꾹 참고 일한다. “노후 생각하면 지금 버는 것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성별연금격차 요인 89.5%가 ‘차별’
여성을 저임금 노동과 고용 불안으로 내모는 노동시장 성차별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노동 이력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는 고스란히 성별 연금 격차로 이어진다. 노령연금을 받는 사람 수도, 받는 액수도 여성이 남성보다 적다.
다음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 내용이다.(2024년 6월 기준 자료만 발췌) 국민연금 가입 연령(18~59살)이 지난 60~64살 노령연금 수급액(평균 월액)을 비교하면, 남성은 98만원(천원 단위 이하 생략)이지만 여성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46만원이다. 65~69살 연금 수급액도 여성(39만원)이 남성(80만원)보다 낮다.
수급자 수 차이도 뚜렷하다. 60~64살 노령연금 수급자 중 남성은 69만 명(천 명 단위 이하 생략)인데 여성은 53만 명으로 더 적다. 65~69살 수급자도 여성(80만 명)이 남성(115만 명)보다 규모가 작다.
국민연금 가입자 유형 중에 ‘사업장 가입자’와 ‘임의가입자’가 있다. 사업장 가입자는 말 그대로 사업장(회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전업주부(무소득 배우자)와 같이 소득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임의가입자가 된다. 2023년 초혼부부 평균 연령이 남자는 34살, 여자는 31.5살이다.(통계청 ‘2023 혼인통계’) 30~34살 사업장 가입자 수를 비교했을 때 남성은 116만 명이고 여성은 85만 명이다. 반면 같은 연령대에서 임의가입자 수는 남성(475명)보다 여성(4680명)이 더 많다. 이는 여성이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 자녀교육, 가족 돌봄을 이유로 노동시장에 남아 생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경력단절)을 보여준다.
이처럼 가사·돌봄노동을 여성의 일로 규정해 여성의 활동 반경을 가정에 가두는 성 역할 규범 역시 성별 연금 격차의 주된 원인이다. 이를 실증적으로 드러낸 연구도 있다. 2024년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논문 ‘성별 연금 격차의 차이와 차별에 관한 실증’은 2019년 기준 60살 이상의 노령연금 수급자 667명을 분석했다. 여성(204명)의 월평균 급여액은 약 26만원이고 남성(463명)은 약 54만원인데, 이런 격차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분석한 학술논문이다. 와하카-블라인더 요인분해 방식을 활용했다. 그 격차의 원인이 성별, 연령, 학력 등 개인 특성의 차이인지 아니면 구조적 차별인지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논문이 수급자의 배우자 유무와 자녀 유무 특성을 고려해 성별 연금 격차 요인을 분석한 결과, 남성 연금소득에서 여성 연금소득을 뺀 값인 성별 총연금소득 격차 값 0.607 중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값은 0.064(10.5%), ‘차별’로 설명할 수 있는 값은 0.543(89.5%)으로 나타났다. 이는 배우자 유무, 자녀 유무가 남성과 여성의 연금 수급액 격차에 차별적 영향을 미침을 보여준다. 즉, 남성은 배우자가 있든 자녀가 있든 연금수급액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여성의 연금수급액은 배우자 유무, 자녀 유무에 따라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똑같이 자녀를 둔 수급자라면, 남성의 연금수급액은 줄지 않지만 여성은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가족 내 불평등한 성 역할 분담과 돌봄 부담을 드러낸다.
남성 노인 빈곤율 34%, 여성 노인 빈곤율 45.3%
정씨는 “여성 노인 빈곤 문제가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 문제는 심각하다. 오이시디 회원국에서 66살 이상 노인 인구 빈곤율이 가장 높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 오이시디 평균(14.2%)을 훌쩍 넘는다. 특히 여성의 노인 빈곤 위험은 남성보다 크다. 남성 노인 빈곤율은 34.0%지만 여성 노인 빈곤율은 45.3%다. 여성 노인 절반 가까이가 빈곤 상태다.
이처럼 높은 수준의 여성 노인 빈곤율이 지속하고 있고, 그 원인이 되는 구조적 성차별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노인 연령을 높인다? 김씨는 생각만 해도 암담하다.
“여자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경력이 단절될 때가 많잖아요. 나중에 재취업을 해도 원래 하던 일보다는 저임금 일자리나 규모가 작은 사업장으로 갈 확률이 높고요. 여자라서 취업도 잘 안 되는데, 나이 든 여성한테 누가 일을 맡기겠어요. 하…. 한숨이 나오네요. 노인 연령을 높이면 연금 지급 시기도 늦어질 거 아니에요? 여성은 일하고 싶어도 일하기 어려운데 연금까지 늦게 받으면…. 너무 암담해요. (노인 연령 상향이) 누구 좋자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어요.”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