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모험 기피하는 모험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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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투자의 핵심은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스타트업 여러 곳에 자금을 투입하고 노하우도 전수하며 함께 성장하는 게 벤처캐피털(VC) 비즈니스의 핵심이죠." 테헤란로를 돌아다니며 만난 심사역들이 입을 모아 하던 말이다.
최근에 만난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스타트업들이 성장에 실패하고, 자금 회수 창구가 좁아지면서 VC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며 "이에 따라 초기 투자에 대한 보수적인 기조가 강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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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투자의 핵심은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스타트업 여러 곳에 자금을 투입하고 노하우도 전수하며 함께 성장하는 게 벤처캐피털(VC) 비즈니스의 핵심이죠.” 테헤란로를 돌아다니며 만난 심사역들이 입을 모아 하던 말이다. 이들에게 벤처 투자는 스타트업 업계에 폭넓게 씨앗을 뿌리고, 잘 성장시켜 열매를 거두는 일이라는 취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사역들은 가능성을 찾아 돌아다녔다. 한 심사역은 “10개의 씨앗을 뿌려 1~2개의 열매만 수확해도 성공한 농사”라고 말했다. 씨앗이 발아하고 싹을 틔우며 열매를 맺기까지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벤처투자 업계가 정말로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초기 투자를 기피하고 안정적인 후기 투자에만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씨앗을 뿌려두며 가능성을 찾기보다 실질적인 숫자를 찾아 열매 따기에만 주력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3년 이하 초기기업 투자 비중은 19.3%(8936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최근 10년 중 가장 낮은 수치다.
반대로 전체 투자 라운드에서 후기기업(7년 초과) 투자는 2조1108억원(44.9%)에 달했다. 중기기업(3년 초과~7년 이하)에는 1조6241억원(35.4%)의 투자금이 집행됐다. 초기와 중기 투자 대신 후기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은 지난해부터 뚜렷해졌다. 지난해 말 기준 후기 투자 비중은 37.8%로, 37.6%를 기록한 중기 투자 비중을 처음으로 앞섰다.
후기 투자를 넘어 이미 결실을 맺은 상장사에 투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 오픈엣지테크놀로지와 인벤티지랩의 전환사채(CB) 인수에 국내 VC 다수가 참여한 것이다. 중수익·중위험을 노리는 메자닌 투자에 모험자본이 투입되며 초기 투자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물론 심사역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초기기업의 부실 위험이 커졌고, 경기 침체로 펀드레이징 경쟁이 심화하며 성공적인 트랙레코드를 만들어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한 스타트업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사례가 종종 나타난 점도 한몫했다. 높아진 상장 문턱 탓에 엑시트에 대한 확신이 높은 기업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만난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스타트업들이 성장에 실패하고, 자금 회수 창구가 좁아지면서 VC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며 “이에 따라 초기 투자에 대한 보수적인 기조가 강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초기 스타트업 투자가 줄어들면 창업 생태계의 고리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모험자본이 유동성을 공급해 벤처기업을 키우고, 잘 성장한 벤처기업이 국가 경제에 다시 도움을 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매년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모태펀드에 출자하는 이유다.
벤처캐피털(모험자본)이 모험을 기피하는 순간 더이상 모험자본이 아니게 된다. “벤처 투자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1%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그동안의 말이 공염불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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