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파워 트럼프시대 맞는 尹… ‘이익 교환’으로 ‘동맹 약화’ 막아야[Deep Read]

2024. 11. 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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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한의 Deep Read - 트럼프시대의 대미 전략
트럼프 당선은 ‘新주권 국제질서’ 강화 신호탄… ‘미국 우선주의+한국 국익’ 교환·공존 과제
한·미 ‘보호기술주의’ 협력 필요… 尹정부, 의제 개별협상 아닌 그랜드바겐 통한 국익 극대화 절박

지구촌 전체가 숨죽이고 지켜본 미국 대선은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의 중장기적 국익을 위해 국제협력과 위기 해결을 주도하려는 카멀라 해리스보다, 단기적 국익을 위해 국가 재원을 국내문제 해결에 최우선 투입하려는 트럼프가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신주권 국제질서

이는 미국이 전후 70여 년간 유지해 왔던 ‘자유주의(Liberal) 국제질서’가, 트럼프 1기(2017∼2021년)에 이어 ‘신주권(Neo-Sovereign) 국제질서’와 충돌할 것임을 예고한다. 자유무역, 다자협력, 인권 등에 기반한 자유주의와 달리 신주권 국제질서는 각국의 주권을 최우선시하고, 국제협력보다는 국익과 자율성을 강조한다. 질서의 정착 여부는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국의 호응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 2기(2025∼2029년)에도 지속될 ‘미국 우선주의’의 핵심 요소는 ①보호무역주의 강화 ②다자협력 축소 ③동맹 구조조정 ④군사적 개입 자제 ⑤에너지 독립 ⑥국경 및 이민 통제 등이다. 집권 1기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중국산 제품에 10∼25%의 추가 관세를 단계적으로 부과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모든 국가에서 수입되는 철강(25%)과 알루미늄(10%)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보호무역주의 구현에 적과 동맹을 구분하지 않았다. 2기엔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60% 추가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공언했다.

게다가 트럼프는 다자협력을 경시한다.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이유로 1기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고, 이후 줄곧 다자간 무역협정보다는 양자 무역 협상을 선호했다. 이러한 추세는 집권 2기에도 계속될 것이다.

트럼프는 동맹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으나, 동맹국 관계를 일종의 ‘비즈니스 거래’로 간주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동맹은 바뀌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트럼프 1기는 한국·일본·독일 등 핵심 동맹국에 주둔 비용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트럼프의 전략

트럼프는 올해 대선 과정에선 “내가 재임 중이었다면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 원)를 지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미 간 합의된 액수의 9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도 국내총생산(GDP)의 2∼3% 수준으로 올리라고 강력히 요구할 태세다.

트럼프는 대규모 해외 군사 개입 대신, 미국의 이익이 직결된 경우엔 최소한의 힘을 사용해 위협을 억제하는 것을 선호한다. 2020년 1월 3일 이란의 군사 지도자인 가셈 솔레이마니를 드론 MQ-9 리퍼에 장착한 헬파이어 미사일로 제거했다. 작전 종료 직후 트럼프는 “즉각적인 위협을 막는 조치였으며, 미국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적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보는 현실주의자다. 그가 지난 9월 27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앞에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얘기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신속히 끝내 러시아를 미국 쪽으로 끌어당겨 중국으로부터 분리한 다음 중국 봉쇄에 ‘올인’할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해진다. 미국 우선주의가 (사실상의) 동맹국의 이익과 충돌할 경우 동맹국을 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또한 이번 선거 과정에서 “미국이 전 세계 산업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에너지 비용을 가진 나라가 되도록 하겠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개발할 것이며, 원자력·청정석탄·수력발전도 적극 활용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2기는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독립 정책을 더 강화하고 환경규제와 재생에너지 정책을 축소할 것이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인 지난 7일 최우선 과제로 국경 강화를 꼽았다. 강력한 국경 통제와 불법 이민 차단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한국의 대응

신주권 국제질서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가운데 슈퍼 파워 트럼프 시대를 맞는 윤석열 정부의 최우선적 대미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와 한국의 국익이 공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동맹이라고 이견과 경쟁이 없을 순 없다. 이견을 최소화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히 조율하는 관계가 동맹이다.

우선 한·미 양국은 ‘보호무역주의’가 아닌 ‘보호기술주의’ 실행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면 미국 중산층의 선택폭이 좁아지고 삶이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동맹국과 함께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통제에 초점을 맞추도록 신속한 협의가 필요하다. 미국에 투자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우리 반도체·배터리 기업에 보조금 지급이 지속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돼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동맹은 미국의 일방적 희생이 아니라 한·미가 함께 이득을 볼 수 있는 관계임을 보여줘야 한다. 동맹이 첨단기술과 에너지 안보 협력을 통해 양국에 훨씬 많은 이득을 안길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 비전과 데이터로 증명해야 한다. 미국의 해군력 강화를 위해 한국의 조선업 역량을 활용하고,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에 들어가는 엄청난 전기를 조달하기 위해 한국의 원전 역량을 활용하면 얼마나 득이 되는지 등의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한·미가 함께 대처해야 한다. 우리도 북한에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지만, 2018∼2019년 미·북 정상회담 때와 달리 북·러 군사협력이 큰 변수로 등장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곧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연동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종전은 러시아가 북한의 파병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서, 종전 이후 한·미가 북·러 군사협력 약화에 따른 북한의 ‘취약성’을 활용해 북을 비핵화 대화로 유도할 수 있다.

◇그랜드 바겐

미국 우선주의와 한국의 국익이 공존케 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실이 컨트롤 타워가 되어 한·미가 북핵·통상·기술·방위비·에너지 등에서 개별 협상을 하기보다 ‘그랜드 바겐’을 하듯 각 분야를 망라하는 ‘이익 교환’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방위비 분담금 분야에서 한국이 양보해야 한다면 미국에 투자한 우리 첨단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보장될 수 있도록 대통령실과 백악관이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한·미가 주고받기를 사전에 교감하면 양국 관계는 순항할 수 있다.

고려대 교수·경제기술안보연구원장,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 용어 설명

‘신주권’은 개별 국가의 주권과 독립을 강조하는 것. 이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신주권주의’라 하며, 이를 토대로 한 국제질서를 ‘신주권 국제질서’라 함. 트럼프 2기 대외정책의 기초가 됨.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미국의 일방주의·보호주의·고립주의를 강조하는 정책.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와 함께 트럼프 1기에 이은 2기 행정부의 상징적 구호로 자리 잡음.

■ 세줄 요약

신주권 국제질서 : 트럼프 대선 승리는 ‘신주권 국제질서’ 강화의 신호탄. 트럼프 2기에도 지속될 ‘미국 우선주의’의 핵심 요소는 보호무역주의 강화, 다자협력 축소, 동맹 구조조정, 군사적 개입 자제, 에너지 독립 등.

트럼프의 전략 : 트럼프는 동맹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으나 동맹국 관계를 일종의 ‘비즈니스 거래’로 간주함. 윤석열 정부의 최우선적 대미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와 ‘한국의 국익’이 공존하도록 만드는 것에 있음.

한국의 대응 : 미국과 ‘보호기술주의’ 실행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북핵 위협에 공동 대처해야. 尹 정부는 개별 협상보다는 ‘그랜드 바겐’으로 각 분야를 망라하는 ‘이익 교환’이 이뤄지게 함으로써 동맹의 약화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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