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사들여 ‘책의 천국’으로… 평화를 향한 꿈을 펼치다[자랑합니다]

2024. 11. 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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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랑합니다 - 고창 해리 책마을 이대건 촌장
‘책숲시간의숲’에 앉아 있는 이대건 촌장.

어느 저녁 자리에서였다. 누군가 이대건 촌장에게 창을 청했다. 그러자 짧은 시간 고민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소리’를 했다. ‘남원산성’이라는 남도 민요였다. 가슴을 파고 들어가는 그의 ‘소리’는 웅숭깊었다. 단숨에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유능한 편집자였다. 내가 다니던 출판사의 후임 편집장으로 온 그는 탁월한 기획력으로 출판사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가 어느 날, 고창의 한 폐교를 샀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고 보니 고창군 해리면 나성리는 그의 고향이었고, 1939년 증조부가 학교를 설립했으며, 지역사회에 기부채납을 했는데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어 2001년 폐교를 하게 되었고, 이대건 촌장이 그 학교를 다시 사들였다는 것이다.

해리는 고창군 읍내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이었다. 증조부는 암담했던 일제강점기에 미래 세대를 위해 재산을 희사해 이 시골 마을에 학교를 짓고, 도로를 내고, 저수지도 축조했다고 한다. 이대건 촌장은 그 뜻을 잇고 싶어 했다.

폐교를 사들이고 몇 해, 그는 서울과 고창을 오가며 생활했다. 이곳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깊게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해리초등학교 나성분교’로 문을 닫았던 학교는 ‘책마을해리’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의 일이다. 허물어지고 삭아가던 교사(校舍)와 숙직실, 풀이 무성하게 자라던 학교 운동장은 다시 생명을 얻어 부활했다. 폐교라는 스산한 이름을 얻었던 학교는 온통 책의 천국이 되었다.

책마을해리의 운동장. 멀리 보이는 부엉이도서관엔 생태환경 서적이 비치돼 있다.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교사를 활용한 ‘책숲시간의숲’은 책의 시간과 공간의 시간이 만나 하나의 거대한 탑을 이룬 공간이다. 천장까지 높다랗게 쌓아 올린 책의 탑을 지나면 그 안에 스민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오직 어린이와 청소년의 책으로만 꾸민 ‘버들눈도서관’, 골방에 갇혀 만화만 읽을 수 있는 ‘만화공방’, 책 한 권을 다 읽기까지 나올 수 없는 ‘책감옥’, 생태환경도서관인 커다란 부엉이 모양의 ‘책부엉이도서관’, 그리고 책과 종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한지활자공방’과 그림책과 원화를 전시하는 ‘그림책 전시관’도 있다.

특히 운동장가 학교의 역사와 함께한 키 큰 플라타너스 위에 지어진 트리하우스는 낭만과 동심을 자극시킨다. 동시에 이 트리하우스는 특별한 뜻을 새길 수 있는 공간이다. 학교와 멀지 않은 고창군 무장면은 동학농민운동의 기포지다. 이대건 촌장은 “보통 동학 다음에 흔히 혁명이나 전쟁이란 이름이 붙지만 실은 평화가 바탕이 된 운동이다. 가족이 함께 평화롭게 밥 한술 나누기를 소원했던 사람들이 그 평화를 억압했던 더 큰 힘에 대항한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래서 이름이 ‘나무 위 동학평화도서관’이다.

‘책마을해리’에서 그의 증조부가 그랬듯, 그는 미래 세대를 위해 고민하고 그 뜻을 실천해나간다. 그 뜻은 세상의 ‘어머니의 마음 즉 모심’을 회복하는 것. 그는 ‘모심(母心)’과 ‘모심(모시다)’은 같다고 강조한다.

책마을에서는 사계절 내내 축제가 열린다. 봄이 되면 ‘어린이책 잔치’를 연다. 여름에는 읽고 쓴 다음 책을 출간하는 과정까지 체험할 수 있는 ‘여름 책학교 캠프’를 진행한다. 가을이면 ‘생태예술제’를 연다. 이 기간 동안 세계자연유산인 고창갯벌을 비롯한 고창의 자연생태를 탐방하는 생태환경학교, 영화학교, 시인학교, 그림책학교, 행성지구인문학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겨울이면 ‘청년책학교’가 열린다.

올가을에도 책영화제가 열렸다. 올해로 8년째다. 이 행사에는 참가비가 없다. 외부 도움 없이 책마을에서 운영하는 독립서점, 출판사 ‘ㄱ’과 ‘책마을해리’에서 발간하는 책 판매 수익금을 조금씩 모아 사람들을 초대하여 축제를 여는 것이다.

지난여름, ‘ㄱ’에서 박남준 시인의 산문집 ‘안녕♡바오’를 펴냈다. 바오바브나무를 보러 마다가스카르에 갔던 시인이 그곳 학교가 물난리로 사라진 것을 보고는 학교를 지어주기 위해 출판 인세를 기부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대건 촌장도 책 판매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기로 했다. 책마을해리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이처럼 따뜻하다.

김진(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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