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사라지는 11월, 詩語로 쓴 응원가 띄웁니다”

장상민 기자 2024. 11. 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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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사진) 시인이 11월 한 달 동안 매일 한 편씩 읽을 수 있는 시 에세이집 '물끄러미'(난다)를 펴냈다.

이 시인은 "한동안 시를 쓸 수 없었던 시간이 길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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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에세이 ‘물끄러미’ 이원 시인
“매일 아침 책상 앉아 시 기다려
문장 떠올리는 순간 神 만난것”
곽성호 기자

이원(사진) 시인이 11월 한 달 동안 매일 한 편씩 읽을 수 있는 시 에세이집 ‘물끄러미’(난다)를 펴냈다.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이 빼곡히 담긴 시와 산문, 인터뷰들은 ‘쓰며’ 살아온 33년의 시적 시간을 설명하는 부록처럼 느껴진다. 문화일보에서 최근 만난 시인은 ‘기도문 같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11월은 모든 것이 사라지는 달이에요. 희미해져 사라지는 것들을 볼 때면 우리가 서로를 응원해야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죠. 이 책은 응원가이고 기도문입니다.”

제목이 된 ‘물끄러미’는 11월 6일 자에 수록된 에세이다. 시인은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물끄러미 바라보던 스승 황현산(1945∼2018)의 모습을 추억한다.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 무심한 듯 정곡을 찔러냈던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며 시인은 물끄러미 보는 일이란 긍정과 부정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중심을 보는 동시에 너머를 바라보는 고도의 관심이자 시적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스스로 “사람이 어렵다”고 말하는 시인의 시선은 물끄러미 비물질을 향했다. PC통신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냈던 1990년대 초반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부터 인간을 향해 손짓하는 인터넷 세계를 탐험했다. 이는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로 깊어졌고 세 번째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는 모더니즘의 정수를 선보이기도 했다. 시인의 시어는 여러 해의 세월 동안 변해왔지만 ‘애플 스토어’ 연작시가 실린 최근작 ‘사랑은 탄생하라’에서도 고유한 시 세계를 드러냈다.

그런데 어느새 시인이 마지막 시집을 펴낸 지도 7년째이건만 올해도 신작 계획은 없다. 이 시인은 “한동안 시를 쓸 수 없었던 시간이 길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시의 원동력은 세상 모든 것을 향한 사랑과 연민”이라며 “인생에도 힘든 시기가 있듯 시를 짓는 마음에도 사랑과 연민이 고갈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시를 쓰지 못하면 살아있는 감각을 느낄 수 없다”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는 중에도 시인은 결코 시를 놓지 않는다. 평균 5∼6년마다 시집을 펴내며 과작 시인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는 이른 아침이면 간단한 마실 거리만 챙긴 채 책상 앞에 앉아 시를 기다린다. 불현듯 떠오르고 차오르는 창작의 순간에 대해 시인은 ‘신’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은 곳에 신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한 번도 안 적 없던 문장이 떠오르는 순간 잠든 신을 깨운 것이죠. 무엇으로도 치유되지 않던 아픔이 치유되는 순간, 구원이고 신일 수밖에요.” 조금씩 마음을 회복해 가고 있다는 시인은 “늦어도 내년에는 시집을 한 권 묶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포부를 내보였다.

또한 시를 쓰는 것만큼이나 시인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시를 가르치며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책에도 수업시간에 나눈 대화가 인터뷰로 실려 있다. 그는 스승 오규원과 자신을 버티게 했던 시집 ‘피어라 돼지’를 쓴 김혜순 시인의 뒤를 이어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다. 쓰는 일과 가르치는 일 중 더 소중한 것을 골라달라는 질문을 받자 시인은 오랫동안 생각하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며 끝내 답하지 못했다. “쓰는 것과 가르치는 것 모두 사명이기에 한쪽으로 기울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모든 순간에 온전한 진심을 쏟아붓고 싶습니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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