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만 원에 사서 67만 원에 판다는데 누가 고려아연 지지하겠나”
"89만 원에 자사주를 사서 소각하고, 67만 원에 신주를 발행하면 주당 20만 원 이상 손해가 발생하는데 누가 지지하냐. 주주를 호구로 보는 것 아니냐."
11월 6일 네이버 종목토론실에 고려아연 주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고려아연의 기습 유상증자 발표로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보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 금융감독원이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 요구를 해 효력이 정지됐지만, 관련 논란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고 있다.
무엇을 위한 유증인가
전문가들은 고려아연의 이번 유상증자 결정이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다고 분석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통상적으로 설비투자 등 중요 안건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 부족할 때 유상증자를 하는데, 고려아연은 '무엇을 위한 유상증자인가'라는 것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거듭된 자사주 매입으로 현금 상황이 좋지 않으며, 유동주식 수마저 감소해 상장폐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이은 자사주 매입이 기업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해 유상증자를 했다는 것이다. 애당초 자사주 매입을 하지 않았으면 관련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큰 만큼 투자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투자업계와 재계에서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지분율 경쟁을 염두에 두고 유상증자를 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가 이뤄지면 두 세력의 지분율 순위가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기존 주주들의 지분이 희석돼 최 회장 측 지분(40.4→35.5%)과 영풍-MBK 연합 측 지분(43.9→36.4%)이 모두 낮아진다. 하지만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물량의 20%를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한 만큼 이 물량이 최 회장 편에 서면 우호 지분이 36.9%가 돼 영풍-MBK 연합을 근소하게 따돌릴 수 있다(그래프 참조).
3개월 내 정정신고서 제출해야
금융당국의 제동으로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계획은 잠시 멈췄다. 금감원은 11월 6일 고려아연에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하면서 "유상증자 추진 경위 및 의사결정 과정, 주관사의 기업실사 경과, 청약 한도 제한 배경, 공개매수신고서와 차이점 등에 대한 기재가 미흡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고려아연이 3개월 이내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일반공모 유상증자 증권신고서는 철회된다. 앞서 함용일 금감원 부위원장은 10월 3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형식적으로 같은 시기에 공개매수와 유상증자를 동시에 했다면 각각이 독립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며 "기존 공개매수 신고서에 중대한 사항이 빠진 것이고, 부정 거래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한 바 있다.
고려아연 측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응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금감원과 금융당국에 (유상증자의) 진의와 진행 과정을 성실하고 정확하게 소명하겠다"며 "시장의 우려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모든 안을 열어놓은 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사회의 최종 결정을 거친 다음 공시 등 관련 절차를 빠르게 진행해나갈 예정"이라며 "세부 일정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와 별개로 현금 확보에 나선 상태다. 고려아연은 11월 6일 보유 중이던 ㈜한화 주식 543만6380주를 한화에너지에 1520억 원을 받고 전량 매각한다고 밝혔다. 개인주주의 돈으로 자사주 매수 부담을 메우려 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은 이외에도 호주 자회사 아크에너지가 지분을 소유한 맥킨타이어에 대여해준 3900억 원의 조기 상환도 추진 중이다.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Copyright © 주간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