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노인의 성생활 고백이 지금의 절 만들었죠" [강홍민의 굿잡]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와 부딪힌다. 극복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무수히 많은 문제들을 안고 인생을 살아간다.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가 되면서 인간이 겪는 문제들은 실타래처럼 더 꼬이고 복잡해진다.
이러한 인간의 복잡한 마음 속 문제를 듣고 헤아려 주는 직업 ‘심리상담사’는 최근 각광받는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인간관계에서,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 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유일한 처방전을 내려주는 이들이 심리상담사다.
'마음의 병을 치유해주는 전문의' 이호선 심리상담사를 통해 직업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최근 들어 방송에서 어린 아이들을 비롯해 청소년, 부부, 노인 등 할 것 없이 고민을 해결하고 솔루션을 제시해주는 상담 프로그램들이 늘고 있어요. 예전과 비교해보면 심리상담사를 찾는 비율이 늘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상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커졌기 때문에 과거보다 의뢰가 상당히 늘어났다고 볼 수 있어요. 오은영 선생님을 시작으로 상담에 대한 접근성이 좀 쉬워졌다고 할까요. 저에게 상담의뢰를 하는 분들의 특징은 다른 데서 이미 몇 번의 상담을 받거나 치료를 받았는데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이에요.”
최근 들어 부부관계 문제가 있는 부부들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이런 부부들의 특징이 있을까요.
“과거에 비해 폭행과 관련된 부부문제로 많이들 찾아와요. 특히 예전에는 일방적인 폭행이었다면 최근에는 쌍방폭행으로 갈등을 겪는 젊은 부부들이 많아요. 여성들이 남편의 폭력에 괴로워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부부사이에서도 민주화가 돼 평등한 위치로 바뀌게 된 거죠. 더불어 여성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남성은 부드러워지면서 서로의 목소리를 내는 밸런스가 어느 정도 맞아졌다고 볼 수 있어요.”
방송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상담 프로그램의 경우, 심리상담사를 포함해 변호사, 정신의학전문의가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보면 이들의 역할도 비슷해 보이는데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변호사, 전문의, 심리상담사의 공통분모는 상담이에요. 차이는 법적이냐, 비법적이냐죠. 법률적인 상담은 변호사의 영역이고, 의료적으로 약을 처방하느냐의 유무는 전문의겠죠. 반면 심리상담사는 내담자의 생활이 더 나아지도록 아주 적극적인 개입을 하는 역할인거죠.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셋 모두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점이죠.”
굳이 다른 점이라면 변호사와 전문의는 국가공인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심리상담가는 그렇지 않다는 점 아닐까요.
“청소년상담사의 경우 국가전문자격으로 분류돼 있기도 한데, 대부분 심리상담 영역은 민간자격증이 많다 보니 스스로 오랜 시간 공부하고 상담 경험을 많아 전문가가 되는 과정이 필요하죠. 간혹 아주 짧은 교육과 훈련만 받고 상담가로 활동하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분들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막기 위해 심리상담학회에서는 2급·1급·슈퍼바이저 등으로 나눠 자격을 부여하고 있어요.”
"대학 전공은 물론, 훈련과 교육을 거쳐야 전문 심리상담사 될 수 있어···심리상담사는 모든 문제 상담할 수 있어, 경력 쌓이면 특정 분야 살릴수도 있어"
전문 심리상담사가 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네요.
“대학에서 심리상담학을 전공하고, 석·박사를 거친다고 다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에요. 전공은 물론, 훈련과 교육을 통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하거든요. 적어도 슈퍼바이저로 활동하려면 10년 이상은 상담심리에 대해 공부하고 투자를 해야 합니다.”
민간 자격증은 필요한가요.
“필수는 아니에요. 개인적인 생각으론 있어야 한다고 봐요. 자격증은 일종의 면허거든요. 이를테면, 상담사가 이 영역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할 만한 역량을 갖췄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죠.”
심리상담가도 아동·청소년, 부부, 노인 등 전문분야가 있나요.
“기본적으로 심리상담가들은 요람에서 무덤이란 말이 있어요. 전천후로 다 상담을 한다는 뜻이죠.(웃음) 좀 구체적으로 이 세계를 들여다보면 이혼 전문 변호사가 있듯 상담사마다 분야별 특성화를 합니다. 자신과 잘 맞는 분야, 이를테면 아동이나, 청년, 노년 등의 나이대에서 오는 고민들이 있거든요. 저 역시 모든 연령대르 커버하지만 특히 중장년·노년층들의 고민을 상담하는데 전문이라고 보심 됩니다.”
중장년·노년층으로 특화한 이유가 있을까요.
“명확한 이유가 있었어요. 제가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를 하러 친정 엄마네서 지내던 시절이었어요. 어느 날 새벽 1시 즈음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80대 어르신이 그 추운 눈길을 맨발로 뛰어와 저희 집 문을 두드리는 일이 발생한 거예요. 너무 놀라 안으로 모셔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보다 2살 많은 남편이 부부관계를 안 해준다고 마구잡이로 때려서 도망쳐 나왔다는 거예요. 겨울 새벽에 눈으로 꽁꽁 언 그 길을 맨발로 도망쳐 나오면서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때 ‘노인들도 성생활을 하는구나’,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도 갈등이 발생하는구나’ 라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그래서 찾아봤더니 우리나라에 노인을 전문으로 상담하는 곳이 없다는 걸 알았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노년층을 위한 전문 상담 시설이 없었군요.
“그 일을 겪고 난 이후 노인 상담에 대한 책을 찾아봐도 제대로 된 게 없었어요. 노인 상담 영역은 불모지였죠. 아무도 가지 않았던 블루오션이지만 국내에선 어떤 도움을 구할 데도 없는, 불모지라는 표현이 맞았어요. 그렇게 시작하면서 어떻게 보면 힘들게 노인 상담에 대한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노인상담센터를 열었죠.”
지금은 예전에 비해 노인 상담 분야가 나아졌습니까.
“그럼요. 노인들의 고민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각 지자체에 노인상담복지센터 등이 생겨나고 센터마다 노인 상담센터가 운영되고 있어요. 그리고 노인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심리상담을 원할 경우 건강가정지원센터에 신청을 하면 무료로 6회까지 상담을 받을 수 있어요.”
방송에서 심리상담을 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매뉴얼이 있어 보여요. 내담자의 속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있나요.
“사실 방송에서 보여지는 건 단회(1회)상담이에요.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많지 않은 정보로 뭔가 임팩트 있는 해결을 제시해야 하거든요. 근데 심리상담은 원래 솔루션을 주진 않아요. 처음 상담을 할 땐 내담자가 어떤 문제로 이곳을 찾아왔는지를 파악하고, 앞으로 이 문제를 이런 목표를 향해 풀어가 봅시다라는 일종의 과정에 대한 설명과 약속을 하게 되죠. 첫 상담은 일종의 청사진을 그려주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내담자와 첫 상담 시 '일종의 치료적 동맹'으로 불리는 라포형성이 중요···심리상담 이론이 단단하게 쌓여 있어야 실전에서도 흔들림 없이 이끌어갈 수 있어"
그 이후 내담자에게 어떻게 접근해 나가나요.
“내담자와는 일명 ‘라포형성(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를 말하는 심리학용어)’이 매우 중요해요. 우리는 이걸 일종의 치료적 동맹이라고 부르거든요. 이 라포가 초반에 잘 형성이 되면 상담이 끝날 때까지 연결되는 거겠죠. 그렇게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의 문제에 맞는 치료의 방법들을 적용해요. 본래 스스로 처해 있는 환경 속에서 내담자 스스로가 답을 찾아가도록 틀을 만들어 주는 과정이 심리상담이거든요.”
심리상담의 근본은 내담자의 문제를 끌어내 스스로 해결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반면 한 내담자가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을 때 실타래처럼 하나씩 풀어내는 상담사만의 기술도 중요하겠군요.
“그렇죠. 실제 심리상담을 공부해 본 분들 중에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론과 실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임상 현장에서 이론이 섬처럼 올라 온 거예요. 수많은 임상데이터를 압축해 이론이 나오는 것이고, 그 이론을 공부하고 실제 상담에 적용하는 거죠. 무엇보다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해서 이야기를 끌어내고 그 안에서 자신의 문제를 의식화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현실적으로 내담자에게 압박을 주는 문제일 경우 스스로 그 문제를 반복해서 말하게 돼 있어요. 그렇게 되면 그 문제에 집중해 질문을 하나씩 던지게 되죠.”
상담 외에도 그림 또는 항목체크로 심리검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경우 이런 검사를 하는 건가요.
“심리검사는 문항을 작성하는 표준화 검사를 비롯해 그림을 통해 심리를 알아보는 비표준화 검사가 있어요. 이러한 검사를 통해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안의 크기, 어린 시절 등을 대략 파악할 수 있어요. 이 검사로만 완전한 심리를 파악하긴 어렵고, 이 결과를 근거로 상담을 통해 파악하는 거죠. 일종의 심리검사 도구라 보시면 됩니다.”
심리 상담을 진행할 때 내담자의 상담 횟수는 어떻게 정해지는 건가요.
“여러 가지 상담 접근법에 따라 달라져요. 정신 분석의 경우 내담자의 무의식, 그리고 과거 경험 속에 들어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그리고 현재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기 때문에 수년 간 긴 호흡으로 상담하는 경우도 많아요. 단기 상담이라 하더라도 단발성은 어렵고 적어도 5~7회 정도는 진행하는 걸 원칙으로 하죠.”
회당 상담시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보통 한 회당 50~60분 정도 진행하고, 부부상담일 경우 1시간 30분으로 각각 상담을 하고 있어요.”
심리적 불안감이 큰 내담자들의 경우, 상담에 비협조적인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땐 방법이 있나요.
“사실 의사들은 수술하려고 (몸을)열어보니 너무 심각해 닫는 경우도 있다고 하잖아요. 근데 심리상담은 다시 덮는 일은 없습니다. 처음에 내담자의 문제가 한가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더 큰 여러 문제를 찾았다면 설득하죠. 얽히고설킨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날 수 있으니까요.”
"상담 중 위험한 상황 발생하기도 해···상담 시 내담자의 폭력성 드러나면 반드시 제지해야, 상담자와 내담자 간 규칙 세워야"
감정이 극에 치달은 내담자의 경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예전에 남성 내담자와 일대일 상담을 하던 도중에 그 분이 의자로 절 내려쳐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었어요. 그런 일을 겪으면 상담 자체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도 제 일이니까 해야 하잖아요. 그 이후부턴 상담실에 CCTV를 설치했는데, 폭력을 행사하거나 욕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경우엔 반드시 제지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걸 받아주면 다음에 또 할 수 있거든요. 상담자와 내담자 간 함부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세워야 해요. 그 부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상담 비용은 어느 정돕니까.
“비용은 상담사마다 다 달라요. 각자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책정한 비용도 다 다른 셈이죠. 일반인들이 느끼기에 비싸다고 느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전문가들은 그 시간 동안 누구보다 내담자에 집중해서 상담을 이끌어 간다는 점이죠.”
최근 들어 심리상담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어떤 자격을 갖춰야 되나요.
“기본적으로 대학에서 심리학 전공을 하거나 석·박사 등의 정규교육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대학 전공이 필수는 아니지만 실제 이 직업을 해보니 무엇보다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심리학을 전공했다면 임상 훈련은 반드시 받아야 해요. 실제 상담을 해보면서 저 같은 슈퍼바이저(전문가)들에게 상담의 진행과정 등 전체 상담을 코칭 받는 거죠. 이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게 되면 상담의 지평이 넓어지고 나만의 상담 영역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됩니다.”
전문적인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이 분야는 정신의학전문의들이 수련을 거치는 과정처럼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야 하는 분야예요. 끊임없는 이론 공부와 현장 임상 훈련을 통해 스스로를 닦고 기름 치고 조이는 과정을 반복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전문 지식 또는 수련만큼이나 성향도 중요해 보이는데 어떤가요. 이를테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거나 공감을 잘 하는 성향 말이에요.
“타고난 상담자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죠. 누군가의 말에 공감을 잘한다거나 타고난 분석가라던가···이런 사람들한테 상담을 받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쌓였던 문제도 해결되는 느낌을 받잖아요. 이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상담 공부와 훈련을 받으면 원석이 될 수 있습니다.(웃음)”
자격증은 필수인가요.
“상담심리사 국가에서 공인받은 학회에서 주관하는 민간자격증이 있어요. 대학 전공이수, 협회 등록 등 조건들이 있고,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청소년상담사의 경우 국가전문자격으로 분류돼 있어 상담가로 활동하려면 꼭 있어야 합니다.”
오랜 시간 누군가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직업이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을 선택하기 잘했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상담을 한다고 해도 내담자의 인생이 100% 좋은 결말로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참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있어요. 한 5년 전 쯤 한 내담자가 상담 도중에 뛰어내리겠다고 창문에 매달린 적이 있었죠. 그때 참 힘든 시기여서 상담을 그만두려고 했었어요. 그럼에도 그분이 상담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저와 함께 했는데, 지금은 너무나 잘 지내고 있어요. 자살기도를 수차례 한 분들이 저를 찾아와 새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신이 저한테 기회를 주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주변 지인들이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 해 주나요.
“상담 초기 땐 지인들의 요청에 상담을 해주곤 했는데, 지금은 안 해요. 상담에서 정말 조심해야 할 부분이 이중·다중관계예요. 친구나 지인이 동시에 상담자와 내담자가 되는 거예요. 분명한 건 이 관계가 나중에는 틀어지게 돼 있어요. 그럼 깊은 상담도 하지 못하고 관계도 어그러지죠. 그래서 하지 않습니다.”
미래, 심리상담사는 살아남을까요.
“전 긍정적으로 내다봐요. 요즘 인공지능으로 심리상담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잖아요. 저도 참여한 적이 있는데, 만들어 놓은 걸 보면 웬만한 상담가의 공감보다 효과가 높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강점이 있어요. 그 사람의 눈빛을 보고 상황에 따라 눈빛의 질감을 바꿀 수 있는 능력, 말하지 않아도 눈빛을 전할 수 있는 메시지는 기계가 못하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로 내담자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해요. 기계가 아닌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공감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직업은 오래가지 않을까요.(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 =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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