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자연이 만든 선홍빛 달콤·짭짤한 별미 ‘대게포’…“자꾸만 손이 가네”

관리자 2024. 11.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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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남문 밖 두갈래 거리, 거리 입구 초가집 처마에 술집 표지 꽂혔네. 새로 온 붉은 연지의 기생 가냘프고 여린 손 희기만 한데, 옻칠 소반에 큰 게살포(脯) 올려 내오네."

김려 역시 "색깔이 선홍빛이라 보기 좋고 맛도 달콤하고 부드러운데, 정말로 진귀한 음식이다"라고 했으니 마치 두 사람이 함께 먹고 같은 미식평을 적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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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대게포
게살 물에 축여 두드려 반건조
조선 문인 김려 ‘우해이어보’서
맛 좋은 진귀한 음식으로 소개
비슷한 어육가공품류 ‘게맛살’
김밥 등 한식 핵심재료로 자리
다리가 대나무처럼 생긴 대게.

“진해 남문 밖 두갈래 거리, 거리 입구 초가집 처마에 술집 표지 꽂혔네. 새로 온 붉은 연지의 기생 가냘프고 여린 손 희기만 한데, 옻칠 소반에 큰 게살포(脯) 올려 내오네.”

이 글은 조선 후기 문인 김려(176 6∼1821년)가 지은 어류사전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 실린 한시다. ‘우해이어보’의 ‘우해(牛海)’는 당시 ‘진해현(鎭海縣)’의 별칭이다. 조선시대에 진해라 불리던 지역은 오늘날의 경남 창원시 진해구가 아니라 마산합포구 진동면 일대다. 김려는 이곳으로 유배 와 머물면서 ‘우해이어보’를 썼다.

시중에서 판매 중인 대게포.

이 시는 ‘자해(紫蟹)’ 항목에 나온다. 김려는 자해를 두고 “온몸이 붉은색이고 크기는 장독만 하다. 배 속에 창자는 없고 온통 물고기·새우·소라·고동·모래뿐이다. 껍데기 속에는 (살이) 넉넉히 일곱여덟말이나 들어 있고, 넓적다리와 집게다리는 살이 꽉 찼고 맛도 달다”고 했다. 자해는 이름으로만 보면 ‘홍게’다. 그런데 다리에 살이 꽉 찼다고 했으니 ‘대게’일 가능성이 크다. 대게는 큰 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다리가 대나무 마디처럼 생겼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김려보다 거의 200년 앞서 살았던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게는 삼척에서 나는 것이 ‘강아지’만 해 다리가 큰 대(竹)만 하다. 맛이 달고 포로 만들어 먹어도 역시 좋다”고 적었다.

김려는 “이곳 사람들은 포를 만드는데 색깔이 선홍빛이라 보기 좋고, 맛도 달콤하고 부드러운데 정말로 진귀한 음식이다”라고 적었다. ‘포’는 고기를 얇게 저며서 양념해 말린 음식이다. 생선을 이용해 이렇게 만든 음식을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어포(魚脯)’라고 불렀다. 어포는 민어·농어·숭어처럼 주로 큰 생선으로 만들었다.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 뒤 살을 양쪽으로 펼친 다음 술이나 식초 또는 양념에 절였다가 말리거나, 아무 양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말리면 된다. 김려가 말한 어포는 오늘날 말로 하면 대게포다. 그렇다면 대게포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1854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요리책 ‘윤씨음식법’엔 대게포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다. 책의 저자는 이 요리법의 제목을 당시 한글로 ᄒᆞㅣ(ᄒᆞ+ㅣ)포라고 적고, 옆에 다시 한글로 ‘게포육’이라고 썼다. ᄒᆞㅣ(ᄒᆞ+ㅣ)포의 한자는 해포(蟹脯)다. 게포육은 게살로 만든 포육(脯肉)이라는 말이다. “해포는 서울에서 만들 것이 못되어 해변 마을에서 하나니, 한쪽은 주홍 같고 한쪽은 백설 같으니 두드려 반듯하게 잘라 넣되 살이 부푸는 일 없이 부서지기 쉬우니 (물에) 축여 두드리거라”라고 했다. 이렇게 두드린 다음에 “반건(半乾)이 좋고”라고 적었다. 반쯤 말리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윤씨음식법’의 저자는 “맛이 극히 아름답고 빛이 주황색 같아 황홀하니라”라고 적었다.

김려 역시 “색깔이 선홍빛이라 보기 좋고 맛도 달콤하고 부드러운데, 정말로 진귀한 음식이다”라고 했으니 마치 두 사람이 함께 먹고 같은 미식평을 적은 듯하다.

1970년대초 일본의 수산업자가 명태살로 대게살의 맛과 모양을 흉내 낸 ‘카니카마(かにかま)’라는 제품을 개발했다. 이를 1980년대초 한국의 한 수산업체가 국내에서 생산·판매하며 ‘게맛살’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 후 게맛살은 김밥·산적·전 등 한식의 핵심 재료로 자리 잡았다.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 유형을 정리한 ‘식품공전’에는 게맛살·맛살·크래미란 제품이 없다. 모두 어육가공품류의 어묵에 속한다. 비록 일본인이 게맛살을 개발했지만 2010년대부터 세계 각국에서 유통되는 제품 대부분은 한국산이다. 실제 게의 다리살은 반쯤 말려도 바닷물이 약간 배어 있어 짭짤하다. 맛도 달면서 부드럽다. 만약 조상들이 지금의 게맛살을 맛본다면 그 평가가 어떨지 궁금하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음식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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