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정년 연장에 앞서…
대한노인회 이중근 신임 회장은 현재 65세인 노인 기준을 75세로 상향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앞서 행정안전부와 대구광역시가 공무직 근로자의 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하면서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는 분위기다. 우리 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나이, 즉 적절한 정년은 몇 살일까?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3.4%로 역대 최고로 나타났다. 고령자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중장년층이 일할 기회를 확대하는 것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의 정년 연장 움직임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년 연장의 근본적인 원인은 의료기술 발달에 이은 기대수명 증가와 함께, 흔히 노인이라 생각하는 연령에 대한 인식 변화, 현재 만 60세인 정년과 국민연금, 공무원 연금의 지급 개시 연령 불일치로 인한 소득 공백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일할 수 있는 나이를 어디까지로 정의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수십 년 전 60세를 바라보는 시각과 아직도 일하기엔 팔팔한 나이라는 현재의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뚜렷하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추세에 따라 주요 선진국들은 정년 기준을 상향하거나 폐지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이미 정년제를 폐지했고, 독일과 프랑스는 정년을 각각 67세와 64세로 상향하면서 연금 수급 개시 연령에 맞춰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노인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이들 국가의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에 일치할 필요가 있다.
이미 제조업 생산 현장에서는 정년 연장이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육체적인 노동력이 필요한 중소 제조기업에서는 정년이라는 용어가 무색한 경우가 많다. 기업의 인적자원은 퇴직 인력에 대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하나, 외국인 근로자를 제외하면 내국인 생산직 근로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인지 오래다. 청년들을 고용하기 어려운 제조기업과 국민연금 외 별도의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중장년층에게서 정년 연장은 필수 불가결 요소가 되었다. 기업들은 숙련 근로자의 높은 생산성을, 퇴직 근로자들은 재고용을 통한 고용 안정과 소득 공백 최소화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어떤 방식으로 정년을 이어갈 것인가'로 쏠린다. 노동계는 모든 근로자에 대한 '일률적인 법정 정년 연장'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재계는 '퇴직 후 재고용'에 무게를 두고 있는 형국이다.
필자 역시 근로자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지만,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노동 경직성이 높아 정년 연장을 법제화할 경우, 기업에 생산성 하락과 인건비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또한, 양질의 일자리를 찾는 취업준비생들에게마저 취업의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산업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정년 연장에 앞서 연공급 임금체계를 직무와 숙련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등의 노동시장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이유기도 하다.
정년 연장 방법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은 엇갈리겠지만, 최소한 3가지 요소가 고려되었으면 한다.
첫째, 법정 정년 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과 같은 방식으로 노사 합의에 의한 선택의 기회를 먼저 제공하는 것이다. 퇴직 후 재고용은 정년 연장 법제화보다 사회적 혼란과 세대 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고, 차후 법정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그때 법제화해도 늦지 않다. 일본은 2007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아직도 법적 정년은 60세로 대기업 80% 이상이 재고용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일본은 기업에 정년 연장과 정년 폐지, 재고용 같은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기업 부담을 최소화했고, 국가 전체 일자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둘째, 정년 연장 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취업준비생들의 취업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지난 2016~2017년 취업시장과 비교해 앞으로 몇 년 뒤 졸업하게 될 사회초년생의 숫자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줄어들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취업 기회 감소라는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국한되어 있고, 청년들이 목표한 우수기업과 공공부문 등에 입사 지원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면, 이들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뀔 수 있다.
셋째, 정년 연장 방식이 결정되기까지 노동계와 재계, 청년층과 중장년층 등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합의에 이르도록 충분한 토론과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의 연공급 임금체계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하는 한편, 정년 연장으로 인한 피해 계층이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정년 나이를 일치시켜, 소득 공백으로 인한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대수명 증가와 학령인구 감소, 노년층의 사회적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정년 연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은 사회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정년 연장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퇴직 후 재고용과 같은 노사 합의제와 사회초년생들에 대한 충분한 일자리 기회 제공, 사회 구성원 모두의 합의가 필요하다. 정년 연장이 우리 노동시장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정태희 대전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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