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가장 귀한 가치, 물
경제학에서는 가장 먼저 재화의 분류를 배운다. 그중 자유재란 희소성이 없어 경제적 가치에서 자유로운 재화로써, 햇빛이나 공기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 희소성을 가져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재화를 경제재라고 한다.
그러나 경제재 중에서도 우리가 마치 자유재처럼 여기고 사용하는 것이 있다. 바로 물이다. 물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희소하고 가치 있는 자원이다. 하지만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것이 물이기에, 우리는 종종 그 중요성과 가치를 잊곤 한다. 이는 산업 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AI 산업의 급성장으로 전력 공급망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지만, 물 공급망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듯하다. AI 산업에 있어서 반도체가 중요한 만큼, 반도체 산업에 물은 그 근간이 되는 필수 요소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매일 엄청난 양의 물을 사용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일반적인 물이 아닌 '초순수'(UPW, Ultra Pure Water)를 사용한다. 초순수는 물속의 무기질, 미립자는 물론, 이온, 염소, 이산화규소까지 제거된 고도로 정제된 물이다. 즉, 순수하게 수소와 산소로만 이루어진 물이다. 이온이 제거되었기에 연구실험실에서는 주로 DI 워터(Deionized Water)라고도 부른다.
반도체 공정에서 초순수는 웨이퍼 제조부터 패키징까지 이른바 '8대 공정'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주요 용도는 세정 작업으로, 식각공정 후 웨이퍼에 남은 불순물 제거나 이온주입공정 후 잔여 이온 세척에 활용된다. 또한 웨이퍼 절단과 연마, 제조 과정에서 가스 정화, 클린룸의 온습도 조절 등에도 쓰인다. 특히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는 수 나노미터(nm) 수준의 초미세 공정 기술이 요구되므로, 얼마나 깨끗한 물을 사용하느냐가 생산 효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통상 6인치 크기의 반도체 웨이퍼를 제조하는 데 약 1톤 이상의 초순수가 필요하다. 2022년 기준, 국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는 일평균 약 34.4만 톤의 물을 사용한다. 같은 해 국내 1인당 일 평균 물 사용량이 약 306리터임을 고려하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에 소비하는 물은 약 112만 명이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향후 국내에 세계 최대 규모의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가 구축될 경우, 일 평균 용수 수요는 약 170만 톤에 이를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의 막대한 물 사용으로 인해, 가뭄과 폭우로 인한 단수는 반도체 사업장에 실질적인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 2021년, 대만은 1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 당시 대만 정부는 물 부족 적색 경보를 발령하고 중부 산업단지의 물 공급량을 15% 가량 줄이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에 대한 용수 공급은 예외로 두었다. 위기 상황에서도 반도체 공장으로의 물 공급만큼은 줄일 수 없었던 것이다.
국내 반도체 공장의 주요 취수원은 한강 유역의 팔당 수자원과 소양강댐, 충주댐, 횡성댐 등이다. 그러나 2030년까지 국내 반도체 사업장의 용수 수요가 현재의 2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기존 취수원만으로는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각 기업은 용수 사용 효율성 향상과 담수. 폐수의 재활용 등을 통해 물 재이용률을 극대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특정 산업에서 희소한 광물이나 자원을 전략 자산으로 여기고, 이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적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어떤 자원은 너무 흔하게 사용해 그 가치와 중요성을 간과하곤 한다. 마치 일상에서 물을 너무 쉽게 접할 수 있어 그 중요성을 잊고 사는 것과 같다. 물은 반도체 산업은 물론이고 AI 산업의 근간이 되는 필수적인 요소다.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 근간을 이루는 요소에 대한 관심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우리 눈앞의 흔한 물 한 방울이 미래 산업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희소 자원이 될 수 있다. 박근엽 한국원자력연구원 기술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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