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모어 히바쿠샤” 노벨평화상 받은 일본 피단협의 외침

미야자키 소노코 2024. 11. 12.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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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수폭 피해자단체 협의회’가 202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미국과의 핵 공유’를 주장하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막 취임한 참이었다. 피폭자들은 기쁨도 잠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202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니혼 히단쿄’의 대표위원 다나카 데루미(가운데) 등이 10월12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니혼 히단쿄(일본 피단협).” 10월11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요르겐 와트네 프리드네스 위원장이 평화상 수상 단체명을 읽자, 그 소식은 순식간에 전 세계에 퍼졌다. 위원장은 가끔 원고에 눈을 떨구면서도 앞을 똑바로 응시하며, 7분 가까이 수상 이유를 읽었다. “히바쿠샤(피폭자)로도 알려진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 생존자에 의한 풀뿌리 운동이며,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과 핵무기가 두 번 다시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목격자 증언을 통해 보여왔다.”

1954년 3월 태평양 비키니 환초에서 미국이 행한 수소폭탄 실험으로 일본 참치잡이 어선이 피해를 입은 일을 계기로, 일본 국내 각지에서 원자폭탄·수소폭탄(원수폭) 금지를 호소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런 가운데 나가사키에서 열린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에서 ‘일본 원수폭 피해자단체 협의회(피단협)’가 결성됐다. 원폭 투하로부터는 11년이 지난 뒤였다.

“그 순간에 죽지 않았던 우리가 이제서야 일어나 모였다.” 결성 당시 인사말은 그런 문구로 시작한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거쳐도, 혹은 그것을 거쳐서 오히려, 핵무기 개발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피단협은 그런 세계의 현상에 대해 “우리의 체험을 통해서 인류의 위기를 구하자는 결의를 서로 맹세했다”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약 70년. 각 도도부현(都道府県·일본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구성된 일본 피단협은 원폭 피해에 대한 국가 보상 요구, 일본 정부와 유엔 및 각국 정부에 대한 핵무기 폐기 요청 행동, 피폭 체험을 국내외에서 증언하는 활동 등을 오랫동안 해왔다. 피폭자의 평균연령이 85세를 넘은 현재, 현 단위의 피단협 중에는 이미 해산된 곳도 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이러한 일본 피단협의 경과나 현황도 언급하면서 “육체적 고통이나 괴로운 기억을 평화를 향한 희망이나 노력을 키우는 데 활용하기를 선택한 모든 피폭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젊은 위원장이 우리의 운동을 제대로 이해해주고 있다. 그것에 감동했다.” 일본 피단협 대표위원 3명 중 한 사람이자 13세 때 나가사키에서 피폭된 다나카 데루미 씨(92)는 말한다. 원폭 중심지로부터 3.2㎞ 거리에서 피폭되어 친족 5명을 잃었다. 일본 피단협 결성 당시에 그는 도쿄의 대학교 1학년이었다. 우연히 귀성해 있던 나가사키에서 결성 대회에 참가했다. 도호쿠 대학에서 공학 연구자로서의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1970년경부터 일본 피단협의 활동에 참여했다. 1985년 사무국장에, 2017년 대표위원에 취임했다.

노벨평화상 발표 당일은 정부에 대한 요청 행동 등을 끝내고 사이타마현의 자택에 돌아온 직후였다. 기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소식을 처음 알았다. “노 모어 히바쿠샤(no more 被爆者, 더 이상의 피폭자는 없어야 한다)”라고 유엔에서 호소한 나가사키의 야마구치 센지 씨나 일본 국내외를 분주하게 뛰어다닌 히로시마의 이토 사카에 씨 등, 지금은 죽고 없는 피단협 선배들의 면면이 뇌리를 스쳐갔다고 한다.

약 20년 전 노벨평화상을 전한 해외 미디어의 보도에, 당시 후보에 올랐으면서도 수상을 놓친 일본 피단협에 대해 “원폭 투하에 관해서 미국에 항의를 하고 있는 단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본 이후부터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맹국이기도 한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는 미국의 눈치를 볼 것이라고 확신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의 정세가 수습될 전망이 보이지 않고, 또다시 핵무기 사용 위기가 거론되는 가운데 이루어진 노벨평화상 수상이 무겁게 느껴진다고 한다. “지금의 어려운 핵 정세 속에서 피폭자들이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노벨위원회에 있었던 게 아닐까?”

수상 소식이 보도된 다음 날인 10월12일, 다나카 대표위원은 이시바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축하를 전한 후 어릴 적에 원폭 피해를 기록한 영상을 봤으며 히로시마를 수학여행으로 방문했다고 이야기하는 이시바 총리에 대해 다나카 씨는 “그렇다면 왜 핵 억지론을 긍정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시바 총리는 “궁극적으로는 핵 폐기이지만 현실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다나카 대표위원은 노벨위원회의 발표에서 언급된 ‘핵의 금기’라는 표현이 납득되지 않는다. 수상 이유에는 “(일본 피단협 멤버의 진력으로) 서서히 핵무기 사용은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낙인을 찍는 강력한 국제규범이 만들어졌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핵 사용이 금기인 것이 아니라 핵 보유 자체가 금기시되어야 한다. 핵 억지란 ‘여차하면 사용하겠다’는 말인데 우리는 그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핵무기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경남 합천 원폭피해자복지회관 내 위령각 안에 희생자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시사IN 이명익

한반도 출신 원폭 희생자 2만~3만명 추정

일본 피단협 지도자들은 오는 12월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릴 시상식에 참석하는 쪽으로 현재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피단협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유일한 전쟁 피폭국’의 간판을 내걸면서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겨우 핵무기 금지 조약까지는 왔다. 일본 정부가 비준하도록 해야 하고 그 필요성을 일본 국민에게도 알리기 위한 기회를 얻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을 맞아 히로시마에서는 10월17일 핵 폐기를 위한 서명운동 등에서 함께 행동해온 ‘히로시마 피폭자 7단체’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성명에서 일본 정부에 이렇게 요구했다. “일본이 평화 외교력을 강화하고 (핵무기 금지) 조약에 참여해서 핵 보유국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제적 영예와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수상 이유 중에서 피폭자 가운데 한반도 출신이 많았다는 것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점이 굉장히 섭섭했다.” 한국 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의 4대 위원장이자 히로시마 피폭 2세인 권준오씨(75)는 말한다. 피폭자 지원·보호 확충이나 국가보상 실현은 일본 피단협의 사명이지만 일본인으로서 피폭되고 전후 한반도로 돌아간 사람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는 그동안 크게 뒤떨어졌다. 한반도 출신 원폭 희생자는 2만명이라고도 3만명이라고도 하지만 그 존재는 뒷전으로 밀려왔다. “주한 피폭자 문제, 재일 피폭자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형태로 끝까지 싸워온 역사가 있다. 앞으로도 이 싸움은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지난해 5월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 핵 보유국인 미국·영국 등의 정상들과 손을 맞잡고 핵 억지력을 긍정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 ‘히로시마 비전’을 발표했다. ‘유일한 전쟁 피폭국’ 일본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조기에 실현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피폭자의 마음을 계승하는 우리에게는 핵무기뿐 아니라 전쟁 그 자체, 차별과 억압, 그 어떤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단호히 부정하는 신념이 있는가. 일본 피단협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에 따라, 그 질문들이 더 엄중히 떠올랐다.

※ 본 기사는 〈시사IN〉과 기사 교류를 맺은 일본 독립 언론 〈슈칸 긴요비〉 제1494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번역·감수: 전혜원 기자

미야자키 소노코 (프리랜서 기자·전 <아사히신문>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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