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톡톡] “환율 오르면 식품업계 운다”... 옛날 공식된 까닭은
판매가 바로 올릴 수 없어 식품업계엔 악재였지만
식품회사들 수출 비중 높아져
삼양식품은 매출의 70%가 수출
“환율 올라도 수출로 수익 더 낼 수도”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 하락) 내수주, 특히 식품주는 죽는다.”
이는 10년 전만 해도 일종의 공식 같은 말이었습니다. 해외에서 밀가루의 원료가 되는 원맥, 설탕의 원료가 되는 원당을 수입해서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을 식품회사의 주 업무라고 생각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환율이 오르면 달러로 거래되는 원맥과 원당의 조달 가격도 오릅니다. 라면, 빵, 과자 등의 원가가 오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식품회사들은 바로 소비자 가격을 올리기는 어렵습니다. 물가 관리를 하는 정부 눈치도 봐야 하고 경쟁사 움직임도 살펴야 하는 탓입니다.
소비자들도 가격에 민감합니다. 50원, 100원 차이로 소비자가 손에 집었다가 내려놓는 상품이 바로 라면이나 과자, 빵과 같은 식품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판매가격을 올리면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식품사의 목표주가를 바로 올리곤 합니다. 경영적 측면에서 봤을 때 조달가 상승을 드디어 가격에 전가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2021년 7월 말, 농심이 2016년 12월 이후 5년 만에 제품 가격을 6.8% 올리자 증권가는 목표주가를 올려서 제시했습니다. 당시 심은주 하나금융투자(현 하나증권) 연구원은 “농심의 판매가격 인상은 원맥·팜유·박스 등 주요 원부재료 부담 가중(환율 상승)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연간 매출액은 기존 전망치 대비 3.3%, 영업이익은 35%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환율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하지만 ‘환율이 오르면 식품업계에는 악재’라는 건 옛 공식에 불과합니다. 내수용으로 생각했던 라면이 케이(K)-푸드를 대표하는 수출품목이 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식품사들의 수출 비중은 높아졌습니다. 대표적인 회사가 삼양식품입니다. 삼양식품은 대표 상품인 불닭볶음면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 작년 전체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을 약 70% 수준까지 올렸습니다.
게다가 삼양식품은 아직 해외 공장이 없습니다. 전량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한다는 뜻입니다. 환율이 오르면 원가 부담은 커지지만, 수출로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삼양식품의 경쟁사인 농심도 작년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액의 40% 수준에 달합니다. 영업이익의 절반을 해외에서 벌어들입니다.
농심은 라면을 앞세워 해외시장 진출을 시작한 원조 중의 원조입니다. 국내 대부분 식품기업이 내수시장에만 집중하던 1971년부터 농심은 소고기라면을 앞세워 미국 수출을 시작했습니다. 농심의 신라면은 2022년 해외 매출 1조원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다만 해외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오뚜기는 아직 환율 상승에 대한 부담이 있는 편입니다. 오뚜기의 매출 해외 비중이 아직 10% 수준인 탓입니다. 아직은 식품 수출기업으로 보기 어렵고 내수시장에 주력하는 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뚜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미 달러화 대비 환율이 10% 오르면 세전이익 감소액은 118억원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오뚜기도 해외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성과를 거둘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오뚜기는 해외 시장 개척의 효율성을 더하기 위해 주요 직책을 가족에게 맡겼습니다.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작년 11월 함영준 회장의 사돈인 김경호 전 LG전자 부사장을 영입해 글로벌사업본부 수장직을 맡겼습니다. 함 회장의 장녀 함연지씨도 오뚜기의 미국법인인 오뚜기아메리카에 입사해 사업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오뚜기까지 해외 시장에 안착하면 ‘식품회사는 내수기업’이라며 ‘국부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편견을 싹 없앴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환율이 오르면 식품업계는 울상이라는 말도 정말 옛말이 될 것입니다. 오뚜기는 오는 2028년까지 글로벌 매출 1조원을 달성할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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