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갈등 ‘고래고기 사건’ 2차전…총경 출신 로펌 사무장, 왜 법정 섰나

주성미 기자 2024. 11. 1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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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 뒤 ‘경찰 모셔가기’
‘싹쓸이’ 법무법인 YK 어떤 곳이길래
검찰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올해 초 한 남성이 울산지방검찰청 문을 두드렸다. 국외 원정도박으로 옥살이를 막 마치고 나온 ㄱ씨였다. 그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했다.

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정도박을 벌인 ㄱ씨는 당시 외국환거래법 위반, 도박 방조 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담당 수사팀은 울산경찰청 광역수사대. 경찰의 수사가 조여오자 그는 경찰 인맥이 있다는 박아무개(40대·구속)씨를 통해 대형 로펌의 사무장 변아무개(60대·구속)씨를 소개받았다. ㄱ씨는 변씨가 울산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을 지낸 총경 출신이라, 수사팀에 줄을 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구속’을 피하고 싶었던 ㄱ씨는 이 로펌에 사건을 맡겼다. 그리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수임료 등으로 수억원을 내놨다. 하지만 결국 구속됐고,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ㄱ씨가 검찰을 찾은 이유다.

한겨레 자료사진

총경 출신 로펌 사무장은 왜 법정에 섰나

지난 10월2일 울산지방법원 형사1부(재판장 이대로) 심리로 2차 공판이 열린 301호 법정. 카키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선 변씨와 박씨는 피고인석에 앉을 때까지 단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엇갈린 눈빛처럼 이들의 입장도 갈라졌다. 이들은 3개월 전, ㄱ씨가 불구속 수사를 받게 해줄 것처럼 행세해 부당하게 금품을 챙긴 혐의(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울산지검으로부터 구속 기소됐다.

박씨는 수사 청탁의 ‘브로커’ 역할을 하며 돈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 등)를 모두 인정했다. 박씨의 변호인은 “범행을 자백했고, 반성하고 있으며 검찰 수사에도 적극 협조했다”고 말했다.

반면 총경 출신인 변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변씨의 변호인은 “수사에 부당한 청탁을 한 사실이 없고, 통상적인 사건 수임 활동을 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금품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로펌이 계약을 통해 수임료를 받았고, 나는 회사로부터 인센티브를 받았다”고 밝혔다.

검찰이 변씨에게 적용한 변호사법 위반 조항은 벌칙인 110조와 111조다. 110조는 ‘재판·수사기관 공무원에게 제공하거나 그 공무원과 교제한단 명목으로 금품 등을 받는 행위’와 이를 명목으로 ‘변호사 선임료·성공사례금에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는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111조에는 ‘공무원이 취급하는 사건에 청탁 또는 알선 명목으로 금품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한 자’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녹음파일 11개를 포함해 140여개의 증거를 제출했다. 또 브로커인 박씨와 사건 피해자 등 4명을 증인으로 신청해, 11월22일 3차 공판부터 차례로 불러 신문하기로 했다.

2018년 1월18일 울산지방검찰청 앞에서 동물보호단체인 핫핑크돌핀스와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회원들이 일명 ‘고래고기 환부사건’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래고기 환부사건’에서 검찰 잡던 경찰

이번 사건의 중심에 선 변씨는 2021년 6월 명예퇴직하면서 총경으로 경찰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전국에 지점을 둔 대형 로펌 ‘법무법인 와이케이(YK)’의 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은 변씨가 오랜 경찰 생활로 쌓은 인맥을 부적절하게 이용해 이득을 취한 ‘전관예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변씨는 ‘검찰 전관’ 의혹의 대표적 사건인 일명 ‘고래고기 환부사건’을 수사했던 인물이다.

‘고래고기 환부사건’은 2016년 4월 경찰이 불법 포획 증거물로 압수한 고래고기 27톤 중 21톤(시가 30억원 상당)을 검찰이 유통업자들에게 되돌려준 사건이다. 이듬해 9월 해양환경단체가 환부를 지휘한 당시 울산지검 황아무개 검사 등을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 혐의로 울산경찰청에 고발하면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특히 유통업자들이 선임한 변호사가 울산지검 해양환경 분야 검사 출신이라 ‘전관’ 의혹이 불거졌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당시 유통업자들이 압수품을 돌려받기 위해 허위 유통증명서 수십장을 검찰에 제출한 사실을 밝혀냈다. 유통업자들이 거액을 주고 ‘전관’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진술과 정황도 확보했다. 하지만 통신기록과 계좌 추적에 필요한 압수수색 영장이 대부분 기각되면서 핵심 사안에는 다가가지 못했다. 경찰은 결국 수사 3년 만인 2020년 7월 환부 지휘 검사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지어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이 사건은 검경 수사권 갈등의 대표 사례로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으며 수사권 조정 논의에 불을 지폈다. 당시 울산경찰청장은 경찰 수사권 독립의 아이콘이던 황운하 현 조국혁신당 의원이었고, 변씨는 이 수사를 맡은 울산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이었다. 변씨는 당시 언론 브리핑 등에서 수차례 검찰의 ‘전관’ 의혹을 강하게 비판하고, 압수물 환부 지휘권을 비롯해 영장 청구권 등을 독점한 검찰의 ‘무소불위’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은 1차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2019년 대전 중구 시민대학 식장산홀에서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출간 기념 북 콘서트를 연 황운하 현 조국혁신당 의원. 연합뉴스

‘심기불편’ 검찰의 반격?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고래고기 환부사건 2라운드’로 보기도 한다. 당시 자존심을 크게 다친 검찰이, 자신들에게 날을 세웠던 전현직 경찰관에게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게 아니냐는 거다. 공교롭게도 압수수색으로 검찰에 휴대전화 등을 빼앗긴 현직 경찰관 2명도 변씨와 함께 ‘고래고기 환부사건’을 수사했던 이들이다.

변씨가 몸담은 법무법인 와이케이도 관심사다. 법무법인 와이케이는 국내 로펌 중 경찰 출신 인력 채용에 가장 적극적이다. 와이케이는 서울에 주사무소를, 전국 30여곳에 분사무소를 두고 네트워크 영업 방식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분사무소에는 소수의 인원만 상주해 ‘영업 활동’에 집중하고, 선임된 변호인은 전국 법원을 뛰어다니며 재판만 맡는 형태다. ‘전관’을 내세운 로펌으로 유명하다. 법무법인 와이케이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개인 일탈로, 변씨는 올해 초 퇴사처리 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 적극적이다. 지난 9월10일 울산경찰청 형사기동대(옛 광역수사대)를 압수수색하고, 원정도박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등의 휴대전화와 사건 자료 등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강아무개 경감이 피의자 신분으로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는 당시 원정도박 사건 수사선에 있지는 않았지만, 브로커 박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수사했던 공공·부패범죄전담부(형사5부) 박보영 검사가 공판에까지 참여하면서 공소 유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울산지검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한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면서도 “어떤 의도나 배경 없이 수사는 원칙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로부터 수사 개시 통보를 받은 울산경찰청은 최근 강씨를 수사업무에서 배제했다. 별도의 대기발령이나 직위해제 등 조처는 하지 않았다. 울산경찰청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수사 결과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며 “유착 방지를 위해 직원들을 상대로 특별 교육과 점검 등 예방 시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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