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타 김 '사모곡'…"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전국 유일 단독 전시"
소장가 대여 회화 58점·사진 아카이브등 160점 전시
이이남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도 공개 눈길
고흥군 천경자 기념관 추진 일환…12월31일까지
[고흥=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화가 천경자(1924~2015)의 딸 수미타 김(본명 김정희·70)의 사모곡이 전남 고흥군을 울리고 있다.
11일 故 천경자 작가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전남 고흥군 고흥분청문화박물관과 고흥아트센터에서 개막했다.
'찬란한 전설, 천경자'를 주제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회화 58점과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의 미디어아트, 유품·아카이브로 선보였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 ▲만선 ▲화혼 ▲굴비를 든 남자 ▲길례언니 II ▲정 ▲파리시절 유화 등 채색화 29점, 드로잉 23점, 화선지에 먹 6점,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워싱턴천경자재단 아카이브 100여점 등 총 160여 점을 소개한다. 천경자의 사진, 친필편지 등 다양한 자료 뿐 아니라 다양한 시대의 작품을 통해 천경자의 삶과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지난 2015년 91세로 미국서 세상을 떠난 '천경자의 특별전'은 시골 고향에서 조촐하게 열리는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의 100주년 전시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전시 총감독을 맡은 수미타 김이 "이 전시는 천경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국 유일의 단독 전시"라고 말할 정도로 천경자의 존재감이 가라앉았다.
반면 딸의 영혼을 갈아 넣은 전시이기도 하다. 미국 몽고메리칼리지 교수로 전시 기획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지난해 고흥군과 '천경자 도로' 추진과 관련 기념 사업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천경자 기념관'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서 만난 수미타 김은 "고흥군에서 기념관에 앞서 전시를 먼저 하자고 의견이 모아져 역할이 주어졌다"며 "대학교를 휴직하고 한국에 들어와 이번 일에 매달렸다"고 했다. 2달 만에 추진된 전시는 시간과 예산이 넉넉지 않아 학술 연구는 언강생심이었다. '박물관에서 미술 전시냐'는 반응도 있지만 항온·항습이 되어 있는 전시 공간은 이 곳, 분청문화박물관이 유일했다.
천경자의 고향인 고흥은 '천경자 미술관의 슬픈 전설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 있는 지역이다. 2010년 '천경자 미술관'을 추진하다 무산된 바 있다. 당시 27억 원을 들여 고흥읍 호형리에 전시실과 연구실, 수장고를 갖춘 2층 규모로 지을 예정이었다. 채색화 1점과 드로잉 작품 200점 기증 협약도 맺었다. 하지만 천경자의 큰 딸이 미술관 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그림을 모두 가져가면서 미술관 건립 계획은 백지화됐다.
그림 한 점 남아있지 않은 고흥군에서 둘째 딸인 수미타 김의 전시 기획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천경자 상설관'이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은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 58점은 권미성, 김생기, 천호준, 프리마컬렉션 소장가들과 전남도립미술관, 부국문화재단 등이 대여해줬다.
역경은 발굴의 기쁨도 맛보게 했다. 수미타 김은 "어머니의 작품이 기증 된 서울시립미술관에 대표작이 많은데, 이번 전시에 반출이 안돼 무척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됐다"면서 "그 작품들이 한 점도 안 왔기 때문에 특이한 소장품들을 구하는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 전시에는 그간 자주 보지 못했던 천경자의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1950년대에 그려진 '제주도 풍경'이라는 대작(100호) '섬의 인상' 그림도 그 중 하나다. 세련되고 대담한 색감 사용이 특징으로 1950년 대 천경자 작품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발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신문기사에 국전평을 한 이봉상 화가는 천경자를 ‘칼라리스트’라 부르며, ‘도전하는 제작정신’을 보여주는 이 그림을 그 해 ‘국전의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꼽았다.
수미타 김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그림은 수십 년 만에 처음 전시되는 것"이라며 "자료를 구해 찾아보다 1956년에 5회 국전에 출품됐고 당신 신문에 조그만 사진이 있었다. 어머니 작업이라고 확신이 들었고 1956년도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주도 풍경을 그린 50년대의 화풍으로 색깔을 쓰는 기법, 색의 이해 색의 하모니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서양화가이고 서양화를 가르치지만 기초 색깔 사용에 대한 강조하는 점이 다 들어 있더라. 너무 감명 깊었다." 이 작품은 뮤지엄 산 한솔재단 소장품으로 그동안 한번도 전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찾아 떠난 여행,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만난 여러 개인 소장자, 문화재단의 대표들은 이 특별전의 중요성에 깊이 동감하며 아끼는 소장품의 출품을 흔쾌히 결정해주었습니다. 그 바탕엔 어머니 천경자에 대한 경의와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이전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딸이 어머니를 그리는 사모곡이겠고. 전남 고흥군 차원에서는 고흥군이 고흥이 낳은 딸, 화가 천경자라는 귀중한 문화자산을 보듬고 자랑스레 기리는 행사이지만 또한 미술품 소장자들의 의미 있는 기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이기도 합니다."(천경자 딸 수미타 김)이번 전시는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미타 김이 밀어붙인 이유는 "어머니를 위해서다." 그는 "명분이 없지 않나. (반대)그게 무서워서 못한다면 중간에 몇 번 포기했다"면서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모델이었다. 6개월 간 내 인생을 바쳐도 되겠다고 시작한 전시다. 어머니가 이 전시를 본다면 '애 썼다'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만큼 딸은 이번 전시에 어머니에 대한 믿음을 그대로 따랐다. "그동안 도록에서 본 적이 없는 작품은 전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어머니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며 보여주는 작품에도 가짜인 경우가 있었다"며 "가슴이 아파서 아무 말을 안하고 돌아 온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긴 공방끝에 2016년 검찰이 진품이라고 판단한 '미인도'에 대해 여전히 위작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수미타 김은 이번 전시가 고흥군이 추진하는 '천경자 기념관'의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기념관은 미술관하고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유품과 아카이브 등 60~70점 이상이면 시작할 수 있다"는 수미타 김은 "고흥군 공영민 군수의 천경자 도로·생가 복원 등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대단하다"며 기념관 추진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현재 고흥군은 천경자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천경자 화백의 생가가 있던 옥상마을 앞 길 약 851m 구간을 '천경자 예술길'로 지정하는 등 '천경자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화가 천경자'는 독창적인 화풍과 솔직한 글, 그리고 용기 있는 삶으로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 선구자적 예술가였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에게 그리움을 남기고 떠났다. 이 특별전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슴에 간직한 그리움과 아쉬움에 대한 응답이다."이번 전시에 온 힘을 다 바친 둘째 딸인 수미타 김은 "내년은 작고 10주기지만 아직 전시 계획은 없다"고 했다. 다만 미국에 돌아가 "올 연말 '제1회 천경자 미술상' 시상식을 개최할 것"이라고 했다. 천경자 탄생 100주년을 맞아 문화적 자산을 기리고 이어나가기 위해 지난 4월 미국에서 비영리재단 '천경자재단'을 발족했다. '미인도' 위작 논란에 가려진 천경자 화백을 재조명한다는 취지도 있다. 영문(한글)도록도 제작, 세계적인 작가로 천경자를 알리겠다는 목표다.
1924년 11월11일 전라남도 남단 고흥에서 태어난 천경자(본명 천옥자)는 전시 피란 수도 부산에서 그린 '생태'라는 뱀 그림으로 일약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어릴 적부터 도화에 큰 소질을 보였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현 동경여자미술대학)로 유학, 1944년에 졸업했다. 유학 중이던 1943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로 입선했고, 1944년 외할머니를 그린 ‘노부’로 다시 한번 입선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1955년 제7회 미협전람회에 ‘정精’을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70여 년의 세월을 화업에 바친 그는 독보적인 화풍을 확립했다. 자전적인 주제와 한국의 정서를 화려한 채색과 밀도 있는 질감의 표현으로 ‘영혼의 화가’, ‘색채의 마술사’, ‘고독과 한의 작가’라 불린다. 독창성, 용기, 진정성으로 예술과 삶에 있어서 타협할 줄 몰랐던 예술가이자 주체적인 여성으로 당차게 살아낸 화가다.
박물관 입구를 장식하며 시크하고 고독하게 나부끼는 포스터는 천경자스럽다. 작품 제목은 '탱고가 흐르는 황혼'. 보랏빛 셔츠에 푸른 장미를 꽂고 틀어 올린 머리는 만개한 꽃 같기도 하고 똬리를 튼 뱀 같기도 하다. 푸른색 네일아트를 한 가느다란 손가락에 보랏빛 담배가 물린 여인의 포스가 강렬하다.
수미타 김은 "사실 저 모습은 어머니의 얼굴은 아니다"면서 "당시 어머니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커피 한잔 드시고 작업을 시작하면 저녁 4~5시면 끝내는데 작가가 가장 행복한 것은 작업실을 떠날 때라는 헤밍웨이 말처럼 어머니도 그날 작업을 마치고 책장에 그림을 기대어 놓고 담배 한대 물고 내일을 구상을 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의 모습이 응축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이 작품은 2019년 6월 서울옥션 152회 경매에서 8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천경자가 이 그림을 그려낸 때는 1978년 52세. 4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련되고 독보적이다. '시대를 앞서간 여인의 위대한 초상'이 100년 전 탄생한 고흥군에서 다시 '천경자 부활'을 알리고 있다. 전시는 12월31일까지.
"이 특별전은 고흥군과 전시팀, 소속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염원이 모아진 결과입니다. 특별전을 위해 열정과 노고를 아끼지 않은 고흥군 군수님 이하 고흥 군청의 여러분들, 그리고 군민들의 응집력은 감동이었습니다. 이 전시회는 천경자라는 독보적인 예술가의 미술사적 중요성을 조명하되, 그의 인간성과 삶을 알아가는 친밀하고 차별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 특별전은 고흥이 낳은 예술가, 천경자를 자랑하고 기리는 꾸준한 사업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도 생가복원, ‘천경자 예술의 길’ 명명, 기념관 설립 등 여러 헌정 사업이 계속될 예정입니다."(수미타 김 찬란한 전설: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예술총감독)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머리에 축구공 맞고 '구토'…40대男 전신마비, 무슨 일?
- '다만세' 떼창…소시 유리, 탄핵집회 김밥 쏜다
- "중학교 때 가사도우미 일도" 김성은, 父 사업실패 '반지하 생활' 고백
- 정우성, 양다리 의혹 진실은…"문가비 사랑한적 없어"
- '송지은♥' 박위, 결혼 2개월 만에 안타까운 근황…무슨 일이
- "너무 예뻐"…이동국 딸, 미스코리아 엄마 닮았네
- 김대호 "온가족 모여 1400포기 김장"…전현무 "결혼 접어라"
- '7번 임신' 본능부부 아내, 악플에 발끈 "뭔 상관이냐"
- "지온 안녕"…엄태웅·윤혜진, 안타까운 소식 전했다
- 장나라 "위궤양에 장천공…간수치도 비정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