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가 이끈 자유주의 국제질서 바뀌어… 이분법적 세계관을 버려야 기회 온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불붙고 있던 지난 5월 ‘트럼프의 귀환-위기인가 기회인가’ 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며 그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해 주목받았다. 조 전 원장은 11일 본지 인터뷰에서 ‘트럼프 현상’은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바뀌는 징후라며 우리가 이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 ‘트럼프의 귀환’에서 지금 미국의 변화는 일시적 ‘일탈’이 아니라 지속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는데.
“트럼프는 4년 전의 대선에서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한다. 터무니없는 일인데 미국 국민 절반이 이 말을 믿는다. 트럼프는 4건의 형사 소송에 휘말려 있으면서도 대통령이 됐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자유와 인권을 증진시키며 민주적 절차를 전 세계에 전파해왔는데 더 이상 그런 역할을 하기 어렵다.”
–트럼프 현상이 세계사적으로도 의의가 있나.
“그동안 세계는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하에 유지됐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사망하기 전에 ‘트럼프는 역사상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할 때 등장해 그 시대의 가식을 벗겨 내는 인물일 수 있다’라고 했는데 그의 등장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 시대가 올 만큼 온 것을 뜻한다.”
–트럼프 이후에도 이런 상황이 계속될까.
“2016년 이후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자유주의 국제질서파’와 ‘미국 우선주의파’의 한바탕 싸움이다. 2020년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승리, 미국 우선주의파와 자유주의 국제질서파가 1승 1패를 했다가 트럼프가 다시 1승을 거둬 미국 우선주의가 이겼다. 나는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의 상징적인 인물로 이 같은 분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본다.”
–트럼프 2기는 어떻게 전망하나.
"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승리 후, 미국 정치권을 완전히 자기 스타일대로 만들었다. 더욱이 이번에 승리하면서 상·하원까지 장악했다. 트럼프를 지원한 일론 머스크의 X(옛 트위터), 지지 후보를 표명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트럼프를 지원한 워싱턴포스트 등을 보면 미국 미디어도 앞으로 변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가 에어포스원을 타고 평양에가서 김정은을 다시 만나는 것도 가능할까.
“2019년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를 인터뷰하면서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질문하자 그의 첫 답변이 ‘카메라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자신의 과시욕을 충족시키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북한이라고 생각할 것이기에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감축 협상을 할 가능성도 있나.
“트럼프 측의 속내는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ICBM만 해결하면 된다는 것 아닌가. 심지어 바이든 행정부의 관계자도 ‘전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각한 상황에서 주한 미군 철수가 가능할까.
“트럼프가 남다른 점은 예측이 어렵고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데 있다. 주한 미군은 현재의 2만8500명 유지와 ‘제로’ 사이에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다. 한미 동맹의 군사적 운용 방식 변화를 예상할 수도 있다. 한국에 순환 근무하는 스트라이커 부대를 더 이상 배치하지 않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줄일 수도 있다. "
–방위비 분담 대사로 미국과 협상한 경험도 있는데.
“바이든 행정부에서 방위비 분담 협상에 합의했다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트럼프가 분명히 다시 협의하자고 할 것이다. 방위비 문제는 돈을 얼마나 더 주느냐는 면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 트럼프가 하는 얘기의 핵심은 미국이 이제 세계 경찰 노릇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스스로 방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 온 동맹 개념과 다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가.
“트럼프의 귀환을 기회로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 스스로 이분법적 세계관과 흑백논리를 버리는 것이다. 평화협정과 평화 체제, 북한 핵과 남한 핵, 북·미 관계와 북·일 관계 개선, 동북아 경제 협력, 미래 첨단 산업 협력 등 지난 수십 년 동안 논의해 온 모든 의제를 올려놓고 통 큰 거래를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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