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질 남자나무, 미끈한 여자나무 [김민철의 꽃이야기]

김민철 기자 2024. 11. 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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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회]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특이하게도 보디빌더처럼 근육질 몸매를 뽐내는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서어나무입니다. 지난 주말 설악산에 갔다가 아주 근사한 서어나무를 만났습니다. 제가 본 서어나무 중에서 가장 근육이 발달한, 그러니까 ‘미스터 코리아’ 서어나무였습니다.

설악산 서어나무.

◇숲에서 근육질 뽐내는 보디빌더, 서어나무

서어나무는 줄기가 매끈하면서도 울퉁불퉁 근육질 모양을 하고 있어서 멀리서 보아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주로 전국 숲의 계곡 근처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줄기가 근육질이고 잎이 타원형이면서 끝이 꼬리처럼 길게 뾰족하면 확실히 서어나무입니다.

서어나무라는 이름은 한자어가 ‘서목(西木)인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서목이라고 부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서쪽이 음양오행에서 음(陰)을 상징하고, 햇빛이 덜 드는 음지에서도 잘 살아가는 나무라고 그렇게 부른 것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나무’라고도 부릅니다.

서어나무는 숲의 천이 단계에서 더 이상 크게 변하지 않는 안정된 상태인 ‘극상림(極相林)’을 이루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서어나무가 있는 곳은 비교적 숲의 나이가 많고 생태적으로 안정된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나무 줄기가 울룩불룩한 탓에 줄기를 잘라놓고 보면 제멋대로여서 쓸모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합니다.

개서어나무도 서어나무와 비슷하게 근육질 나무기둥을 갖고 있습니다. 두 나무는 아주 비슷하게 생겼는데, 서어나무는 잎 끝이 꼬리처럼 길지만 개서어나무 잎 끝은 그렇지 않고 차츰 뾰족해지는 형태입니다. 요즘 서어나무 종류들은 원통형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작은 잎처럼 생긴 포가 열매를 감싸며 줄줄이 달린 형태입니다. 이 포를 보면 서어나무는 열매 양쪽에 날개가 나고 개서어나무는 한쪽으로만 날개가 나서 구분 포인트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서어나무(오른쪽)와 개서어나무. 홍릉숲.

서어나무는 전국에서 만날 수 있지만, 개서어나무는 제주도를 포함해 경상도와 전라도 등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홍릉숲·인천수목원 등에는 비교할 수 있게 서어나무와 개서어나무를 나란히 심어 놓았습니다. 서어나무는 좀 비스듬히 휘어져 자라고, 개서어나무는 비교적 똑바로 자라는 것 같습니다. 까치박달, 소사나무도 서어나무와 같은 속(屬)으로 원통형 열매 모양이 비슷합니다.

◇미끈한 피부, 사람주나무

또 하나 수피가 사람 피부 같은 나무가 있는데 바로 사람주나무입니다. 수피가 하얀 것이 멀리서도 눈에 띄고, 줄기가 뻗다가 두 줄기로 갈라지는 것이 사람의 벗은 몸처럼 매끈해 보이는 나무입니다. 설악산 신흥사로 가는 입구, 외설악에서는 사람주나무를 아주 흔하게, 그야말로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사람주나무는 난대성 수종이라 주로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지만 서해안은 황해도 이남까지, 동해안은 설악산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설악산 사람주나무.

서어나무 수피가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남성적인 느낌이라면, 사람주나무 수피는 미끈해서 여성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서어나무를 남자나무, 사람주나무를 여자나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같은 사람주나무여도 단풍색이 노랑부터 빨강까지 아주 다양했습니다. 특히 한 잎의 일부는 노랗고 일부는 빨간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미끈한 회백색 수피와 함께 가을 단풍이 부끄러워하는 여인의 얼굴빛을 닮은 것도 여자나무라고 부르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합니다.

설악산 사람주나무 단풍.

봄에 피는 사람주나무 꽃은 손가락 모양의 길쭉한 꽃차례에 달립니다. 꽃차례는 가지 끝에서 위를 향해 꼿꼿하게 서는데 위쪽에 수꽃이 달리고 밑 부분에 암꽃이 달립니다. 색깔이 황록색이라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남해안에서 보는 예덕나무 꽃차례와 비슷합니다. 예덕나무는 사람주나무와 같은 대극과 나무입니다. 대극과 식물은 잎이나 가지에 상처를 내면 흰 유액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나무 이름을 단 푯말을 처음 보았을 때 한참 나무를 보면서 왜 이런 이름을 가졌을까 궁금했습니다. 사람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어디가 사람처럼 보여서 이런 이름을 가진 것일까 한참을 살펴보았습니다. 식물 이름 유래는 다양합니다. 어떤 것은 잎의 특징 때문에, 어떤 것은 꽃이나 열매 특징 때문에, 어떤 것은 나무의 쓸모를 보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람주나무도 분명히 직관적으로, 사람처럼 보이는 뭔가가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책 ‘우리나무 이름사전’에서 “이 나무는 특히 밤에 보면 사람이 기둥처럼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라며 “그래서 ‘사람이 서 있는 기둥(柱) 모습의 나무’란 뜻으로 사람주나무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습니다. 낙엽이 들면 사람의 홍조와 비슷하다고 붉은 주(朱주)자를 써서 사람주나무라는 설도 있지만, 역시 확실치는 않습니다. 어떻든 사람주나무는 이름도 독특하고, 수피도 예쁘고, 단풍도 예쁜 개성만점인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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