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56] 브루클린 다리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4. 11. 1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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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스텔라, 브루클린 다리: 옛 주제에 대한 변주, 1939년, 캔버스에 유채, 178.4 × 107.2 cm, 뉴욕 휘트니 미국미술관 소장.

뾰족한 고딕식 아치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는 듯한 이 그림은 중세 유럽의 대성당이 아니라 뉴욕 이스트강 동쪽의 브루클린과 맨해튼 최남단을 연결하는 브루클린 다리를 그린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 화가 조셉 스텔라(Joseph Stella·1877~1946)는 십 대에 뉴욕으로 이주해 처음 브루클린 다리를 마주한 이래, 오랫동안 여러 차례 이를 그렸다. 스텔라에게 브루클린 다리는 위대한 미국의 상징이었다.

1883년, 15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개통한 브루클린 다리는 세계 최초로 스틸 와이어를 사용한 세계 최장의 현수교였다. 기존 현수교보다 50% 이상 긴 교량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대성당을 닮은 거대한 두 개의 석탑이 우뚝 선 교각을 중심으로 수없이 많은 케이블이 마치 하프의 현처럼 우아한 곡선을 이루며 퍼져나간 아름다운 광경은 지금 봐도 찬탄을 자아낸다.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미개한 신대륙 정도로 미국을 무시하던 당시 유럽인들의 눈에 놀라운 기술과 중세 유럽의 미감이 결합된 브루클린 다리와 그 뒤로 펼쳐진 눈부신 마천루는 미래의 전령이었다. 새로운 시대엔 신(神)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고, 사람들은 종교 대신 과학기술을 신봉하게 될 터였다.

프랑스 미술가 마르셀 뒤샹의 그 유명한 1917년작 ‘샘’은 가게에서 구입한 소변기였다. 뒤샹이 소변기를 사러 갈 때 동행했던 이가 바로 조셉 스텔라다. 변기가 예술이 아니라고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뒤샹은 미국이 이제껏 이룬 위대한 문화적 성취는 오직 교량과 깨끗한 화장실뿐이라고 일갈했다. 뒤샹의 변기도, 스텔라의 브루클린 다리도 사실은 신세계 미국에 바치는 유럽 예술가들의 찬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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