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39] 아주 작은 소설
1990년대 초·중반 이야기다. 한 젊은 문인이 있었다. 서울 인근 도시에서 추레한 방에 홀로 세 들어 지냈다. 시련은 몰아쳤고 무엇보다, 너무 궁핍했다. 소설을 써서 돌파구를 찾았지만 공회전만 계속됐다. 돌이켜보건대 우울증, 공황장애가 대중화되기 한참 전이라 몰랐을 뿐이지, 그 두 가지는 기본에 신경쇠약, 불면증, 강박증 등을 한 보따리로 앓고 있었다.
그는 그냥 ‘나는 미쳤다. 그리고 조만간 끝장날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감지했다. 기실 제 초라함에 대한 비관보다 더 괴로운 건 권력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이었다. 불만과 증오는 고질이 돼 낙담으로 자리 잡았다.
사흘째 수돗물만 마시며 버티던 그날 오후 그는 실성에 가까운 상태로 땡전 한 푼 없이 마을 다방에 앉아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주문한 커피를 그가 앉은 소파 앞 탁자에 내려놓고는 뭐가 바쁜지 밖에 나가 있어 실내에는 그 말고 아무도 없었다. 창가 햇살이 금싸라기 같은 먼지를 비추며 조용했다. 커다란 직사각형 어항이 있었는데, 화려한 관상어(觀賞魚) 여러 마리가 유영했다.
그때였다. 벌떡 일어난 그는 관상어 한 마리를 어항 밖으로 튕겨내듯 꺼낸 뒤 스포츠 신문으로 둘둘 싸서 다방 계단을 허겁지겁 뛰어 내려갔다. 순식간에 해치운 일이었다. 가슴에서 버둥대는 관상어를 더욱 꼭 끌어안고 그가 길을 뛰기 시작했을 때는 다방 여주인의 갈라진 외침이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동굴 같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냄비에 물과 소금과 관상어를 집어넣고 무작정 끓였다. 한데 그가 이 정도면 됐지 싶어서 냄비 뚜껑을 열어 젖히자,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고기의 살도, 물고기의 뼈도 없었다. 그냥 ‘안개 같은 액체’만 남아 있었다. 바다와 강에서 살지 않는 물고기의 실체였다. 겉으로만 커다랗고 휘황(輝煌)한 실존의 본색이었다.
순간, 그는 신병(神病)이 낫는 것처럼 ‘깨달았다.’ 만약 누구나 제 인생에서 한두 번 거듭나는 기회가 알게 모르게 오는 거라면, 그 사건이 그에게는 그러했고, 그는 그 ‘알아차림’을 천만다행으로 놓치지 않았다. 이후 그는 타인은 물론 자신에 대한 평가마저 버렸다. ‘다만’ 관상어 같은 이를 보면 관상어임을 볼 뿐이고, 자신은 어항이 아니라 강을 지나 바다로 ‘오직’ 나아갈 뿐이었다.
그의 인생은 많이 달라졌고 중년에 이르렀다. 문득 삼십 년 만에 그 지방 도시 그 다방이 있던 건물을 찾아갔다. 사죄와 배상, 그 깨달음에 대한 사례까지 하고픈 마음이 이전에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생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흘려버리고 말았더랬다.
그곳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변해 있어서 그 건물도 그 다방도 그 청년의 방황마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런 슬픔 같은 후회와 쓸쓸함도 인생이었다. 그는 오늘도 ‘관상어 인생’들을 가끔, 어쩌면 자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잘남이든 어떤 못남이든 냄비에 넣고 끓여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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