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창원공장 출근길, 그 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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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가 사뭇 차가워진 날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년만에 다시 출근하는 현장을 취재하러 온 언론은 고작 두 세곳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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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기자의 시선]
[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새벽 공기가 사뭇 차가워진 날이었다. 지난 8일 창원지방검찰청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이미 서울에서 온 언론사 몇 팀이 청사 정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가 피의자 조사를 받는 날이었다. 출석 예상 시각보다 세 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기자들은 서로 일면식 있는 듯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지역 기자로서 나는 괜스레 카메라만 만지작거렸다. 출석 시간이 다가오자 검찰청은 기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그때 문득 든 생각, '서울 기자들이 이렇게 많이 온 게 대체 얼마 만인가.'
또다른 새벽 7시. 11월 첫날 창원공장 정문 앞. 머리에 이슬비를 맞으며 서 있는 사람들, 바로 이 공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날이었다. 9년 간의 투쟁에 종지부를 찍고 그토록 기다렸던 일터로 돌아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2015년 1월15일,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하청업체에 소속된 이들이 한국지엠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시작된 싸움은 쉬이 끝날 줄 몰랐다. 부평·창원·군산공장 노동자들 소송이 병합되면서 대법원까지 간 사건은 지난 7월25일에야 마침표를 찍었다. 창원공장에서는 88명이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
전국적으로는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투쟁과 더불어 대법원이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해고자를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한 드문 사례다. 그럼에도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년만에 다시 출근하는 현장을 취재하러 온 언론은 고작 두 세곳에 불과했다.
창원공장 정문 앞에서 복직을 자축하는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배성도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울음을 겨우 삼켰다. 마이크를 꼭 쥔 그가 말문을 열었다. “함께해 주신 동지들, 긴 시간 버텨주셔서 고맙다. 현장에 들어가서도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여태까지 힘들게 버텨온 만큼 더 끈질기게 제대로 끝까지 투쟁해 나가겠다.”
2019년 12월23일 창원공장에서는 '비정규직도 인간이다', '대량 해고를 철회하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한국지엠은 비정규직 노동자 585명을 해고했다. 배 씨도 585명 중 한 명이었다. 585명 대량 해고는 당시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뤘지만 그때뿐이었다. 한국지엠 살리기에 8000억을 들인 정부가 직접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는 서울 정치권까지 가닿지 못하고 금세 사그라들었다. 보수·경제지는 비정규직 불법파견 인정 판례를 들며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는 논리를 강화했다.
2020년 여름쯤 배성도 씨를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창원공장 비정규직지회장 신분으로 복직 투쟁 최전선에 있던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어차피 한국지엠도 이 불법파견 소송을 이길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대법원까지 가려면 시간이 길고, (지금 당장) 힘드신 분들은 각자 생계를 찾아갔다. 퀵 하시는 분들이 많고. (복직 투쟁은) 누군가는 해야되는 일이니까, 일단 여기저기 뛰어다녀 보고 있다. 나도 집안 사정이 더 안 좋아져서 생계를 찾아 나가야 될 수도 있다. 내 임기가 내년까지다. 그 안에 좀 잘 마무리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복직하는 동료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눈 뒤, 배 씨는 뚜벅뚜벅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머지 않아 거짓말처럼 이슬비가 그쳤다. 고단했던 시간들이 빗물에 함께 씻겨 내려가기를 바랐다. 현장의 기록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침묵의 기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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