쩍쩍 갈라진 흙에 겨우 짰는데…대홍수에 빠진 '황금 액체'
<앵커>
전 세계적으로 물가나 금리가 조금씩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지만, 주요 농산물의 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이상 기후로, 전에 없던 날씨가 이어지면서 일부 농작물 생산량이 줄어든 게 한 이유로 꼽힙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심각성을 짚어보는 연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가뭄과 폭우 같은 극단적 기후에 영향받는 작물은 어떤 건지, 또 지구촌의 어떤 지역에서 이런 문제가 집중되고 있고, 끝으로 그 대응방법은 뭔지 오늘(11일)부터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순서로 올 들어 올리브유 가격이 급등한 이유를 박예린 기자가 스페인 현지에서 취재했습니다.
<기자>
하루에 수백 그릇 파스타를 만드는 이 식당, 매일 8ℓ의 올리브 오일을 씁니다.
[김재준/14년차 셰프 : 처음에 (파스타 만들 때) 넣는 게 20g 넣고 그리고 또 마지막 터치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두르거든요.]
그런데 올 들어 78%나 급등한 올리브유 가격, 이유는 70%를 수입하는 스페인에 있었습니다.
스페인은 세대 최대 올리브유 생산국입니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는데, 상황은 어떤지 직접 산지로 찾아가 보겠습니다.
지난달 스페인 남동쪽 발렌시아, 올리브밭에 들어서자, 갈라지고 말라버린 흙이 눈에 띕니다.
[루이스 홀리안/올리브 농장주 : 건조하고, 물이 없습니다.]
겨우 맺힌 열매는 표면이 마르거나 썩었습니다.
[루이스 홀리안/올리브 농장주 : (물이 부족해서) 올리브 나무가 열매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나무에 맺혀 있는 올리브 열매도 있지만, 땅에 떨어진 올리브 열매가 더 많습니다.]
크기도 기름을 짜기에는 턱없이 작습니다.
평소엔 나무 한 그루 당 50kg 나오는 열매가 7kg밖에 안됩니다.
올리브 열매에서 기름을 짜내는 이 공장은 기계를 거의 돌리지 못할 정도였고, 국제 가격도 톤당 1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호아킨 산타나/올리브유 공장 관계자 :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2년 전에는 30만에서 40만 kg까지 기름을 짰었는데, 현재는 15만 kg까지 감소했습니다. 매년 200명의 농부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스페인은 올해 들어 계속 기온이 40도를 웃돌았고, 몇 년째 비가 없는 가뭄이 이어졌습니다.
인근 저수지는 계속 물을 끌어 쓰다 보니 담수량은 절반 이하, 이 지역은 오렌지 주산지이기도 한데 역시 생산량이 15% 줄면서 주스 원액 가격이 58% 급등했습니다.
[호세 안토니오/오렌지 농장주 : (오렌지) 수확량도 평년에 비해 4분의 1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최악 가뭄에 시달리던 이곳, 불과 한 달 새 대홍수로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현지에서 취재했던 농부를 다시 연락했습니다.
말라버렸던 밭에 물이 너무 들어차, 나무는 아예 보이지도 않습니다.
[호세 안토니오/오렌지 농장주 : (당분간) 밭에 물을 줄 수가 없어요. 관개시설이 손상돼 복구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 것입니다.]
가뭄이 지중해 해수 온도를 높이고 이는 대홍수를 야기하는, 전형적 기상 이변입니다.
내년 가격은 더 오를 거라는 전망에 현지 주민들은 올리브유를 '황금 액체'라고 부릅니다.
[파우 베르낫/스페인 소비자 : 올리브 오일은 우리 요리의 기본 재료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는 올리브 오일 가격이 최대 3배까지 폭등하는 걸 경험했습니다.]
[미세르꼬르디아 게레로/스페인 소비자 : 최근에는 (올리브 오일) 한 병에 50유로 (7만 5천 원)가 들어요.]
비옥한 토양과 높은 일조량, 채소, 과일이 고루 나 '축복의 땅'이라 불렸던 곳도, 종잡을 수 없는 기후의 위협에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이용한·윤형, 영상편집 : 오영택, 디자인 : 이준호·조수인)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박예린 기자 yea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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