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문학과 애국심
일종의 블랙홀이 갑자기 등장해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한국 사회가 한 달간 요동을 쳤다. 수많은 의견과 축하의 메시지가 쏟아져 나왔다. 나 역시 그가 가장 유명한 상을 타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사회의 열렬한 반응을 냉정하게 평가할 공간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문제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지나친 국가와 국적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현직 대통령은 ‘국가적 경사’라고 규정했고 많은 사람은 자신이 ‘한국인’인 게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노벨 문학상 보유국’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노벨상은 개별 작가에게 주는 것이지 ‘국가대표’ 문인에게 수여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타국과의, 특히 일본과의 비교도 흔한 반응이었다. 오에 겐자부로 등 두 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에 견주어 이제 한국문학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자부심과 그것에 기초한 애국심이 대단하다.
‘글쎄 과연 그럴까?’라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존경하는 어떤 문학평론가는 “수상을 계기로 우리 문학은 세계적 위상을 굳건히 하고 인류 문화의 발전을 선도해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한국문학이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얘기인데 공감이 가질 않는다. 더구나 ‘인류 문화의 발전을 선도’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문학에서 ‘선도’라는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내가 읽은 한강은 이런 단어나 발언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는 작가다.
최근에 나온 한 기사도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간 ‘낙차’가 없다고 주장하며 “이제 온 세계가 한국문학을 쳐다보는 상황이 됐다고 단언한다. 내게는 이런 말이 한국축구가 세계축구와 격차가 없고 이제 온통 한국축구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주장과 유사하게 들린다. 애국심을 넘어서 민족적 나르시시즘에 함몰되어 있는 듯하다.
사실 어떤 결론을 분명하게 내리거나 자기성찰 없이 자화자찬에 함몰되는 것, 그리고 이념적 좌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좋은 문학과 충돌한다. 문학의 본령은 쉼 없이 회의하고 질문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한강이 자신을 포함한 ‘한국문학’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이룩한 문학적 성취는 한국이라는 경계를 넘어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미 몇 사람이 지적한 것처럼 한강의 작품은 K문학이라는 규정에 순응할 수 없는 경향이 강하다. K팝과 김민기 등의 포크 음악 혹은 황병기의 가야금 음악이나 김영동의 불교 음악이 다르듯이 한강도 다른 작가들과 매우 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문학’을 한 덩어리로 보고 국가경쟁력, 국력, 국익 확대의 관점에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문학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한강 작가의 작품 한 편이라도 읽어낸 사람이라면 그가 그런 개념들과는 전혀 관련 없는 영역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물론 민족적 자부심과 애국심은 근대 민족국가 중심 체제에서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또한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에는 그것은 선진국 콤플렉스로부터 탈출하는 데 그리고 집단적 심리 치료하는 데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국수주의나 징고이즘으로 발전하면 독이 된다. 타민족에 대한 배타심과 우월감은 강해지고 내부의 구성원들을 하나의 동질적 집단으로 묶어버리며 거기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모순 등을 억압, 은폐하게 된다. 건강한 문학은 그런 감정이나 이념이 독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경고한다.
한국문학은 꾸준히 진화해왔고 그 정점에 (물론 잠정적일 수 있다) 한강 등 여러 명이 서 있는데 문제는 다른 한편으론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다수의 한국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강을 읽는 것에 관심 있는 독자가 아니기에 관성대로 반응하는 경향이 강하다. 즉 한강이 자신들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공유하고 있지 않다. 대신 애국심은 대다수가 이미 지니고 있어서 즉각적 반응이 나온다. 노벨상을 탄 작가와 국적이 일치한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해한다.
1964년에 장폴 사르트르는 노벨 문학상을 최초로 거부하며 그 이유를 대략 설명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작가가 특권적인 상을 받고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는 순간 독립성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의 발언을 응용해 한마디 남기자면, 한강은 이렇게 속으로 말할 듯하다. “나는 작가 한강이지 ‘노벨상을 수상한 한국인 작가 한강’이 아니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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