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대통령의 골프 외교
미국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골프를 즐겼다. 그중에서도 우드로 윌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은 ‘백악관에 없으면 골프장에 있다’는 말이 나온 대통령이었다. 외국 정상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골프가 빠지지 않았다. 상대국 정상에게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세계 최강국 대통령과의 긴 시간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였다. 2014년 1월 당시 존 키 뉴질랜드 총리는 하와이에서 오바마와 골프 회동을 했는데, 후일 “5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다. 골프 한 게임을 한 것이 양자회담을 10년 한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고 9일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뉴욕 트럼프타워를 찾아가 1000만원이 넘는 일본제 혼마 골프 드라이버를 전달했다. ‘골프광’ 트럼프에게는 ‘취향 저격’ 선물인 셈이다. 두 사람은 이듬해 2월 첫 미·일 정상회담 후 전용기를 함께 타고 플로리다로 가서 5차례나 골프 라운딩을 하며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지난 6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 각국이 트럼프 2기 시대 대비에 분주해졌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아베와 비교됐다. 특히 이시바와 트럼프 당선인 간 통화 시간이 5분에 그치자, 일본 언론에선 고교 시절 골프부에서 활동했던 이시바가 10여년간 사실상 끊었던 골프채를 다시 잡을지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골프 연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검사 시절에는 종종 친 골프를 2016년 박근혜·최순실 특검 이후부턴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곧바로 윤 대통령이 별다른 인연이 없는 트럼프와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보려고 아베 사례를 벤치마킹한다는 말이 나왔다.
트럼프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잘 알려면 점심식사를 함께하는 것보다 함께 골프를 치는 것이 낫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런 트럼프를 상대하는 데 골프가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1기 때 경험했듯 그에게 공짜란 없다. 아베도 트럼프에 대규모 선물 보따리를 풀어 ‘조공 외교’라는 비판을 들었다. 재집권한 트럼프를 상대하는 윤 대통령의 대비책이 골프만은 아닐 것이다. 외교의 힘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는 점도 명심하길 바란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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