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돋보기] '한글 점자'와 '문화유산 복지'

2024. 11. 1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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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에 의해 1824년 현대 점자인 6점자가 발명된 이래 우리나라에서 점자 개발의 필요성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미국인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이다.

1890년 조선에서 활동하던 여의사 홀은 미국에서 배운 4점 점자인 '뉴욕 점자'를 바탕으로 '조선훈맹점자'를 만들어 시각 장애인 교육에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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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학예연구사

프랑스인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에 의해 1824년 현대 점자인 6점자가 발명된 이래 우리나라에서 점자 개발의 필요성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미국인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이다. 1890년 조선에서 활동하던 여의사 홀은 미국에서 배운 4점 점자인 '뉴욕 점자'를 바탕으로 '조선훈맹점자'를 만들어 시각 장애인 교육에 사용했다. 그후 조선총독부 내 제생원 맹아부 교사인 박두성(1888-1963) 선생에 의해 브라이유의 6점식 점자를 토대로 한 한글점자 '훈맹정음'이 만들어졌다. '한글 점자의 날'도 훈맹정음이 반포된 1926년 11월 4일을 기념해 같은 날로 지정된 것이다.

1920년부터 점자 연구에 착수한 박두성 선생은 제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했다. 훈맹정음을 반포한 1926년에는 육화사(六花社)라는 간판을 내걸고 점자연구와 점자통신 교육을 시작했다. 여기서 '육화'는 한글 점자에 사용된 여섯 개의 점을 여섯 송이의 꽃에 비유한 것이다. 신체적 장애가 사회적 어려움이 되지 않게 삶이 꽃처럼 활짝 피길 바라는 박두성 선생의 바람이 담겨있는 이름이다.

지난 2020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 4건 48점 안에는 박두성 선생의 '훈맹정음' 제작 시 관련 자료와 이후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인 '맹사일지'가 포함돼 있다. 맹사일지는 수기 기록과 함께 여러 관련 자료를 스크랩의 형태로 모아 놓은 책이다. 훈맹정음 제작을 위한 기계의 차용증과 사용 방법, 인쇄 업체의 팜플렛, 맹인협회를 조직하고 회원을 모집하는 공고문의 친필 초안, 그 당시 한글 정책과 관련한 신문기사 등 다양한 기록을 한데 모아 엮었다.

훈맹정음을 만든 이후 기록 중에는 1952년 4월 전쟁을 피해 서울에 남아 있는 점자 기계를 부산으로 옮기기 위한 철도 이용 승인 요청 문서도 포함돼 있다. 1958년 목사에게 보낸 청원서에 대한 답장도 확인되는데, 출판자금을 얻기 위해 미국의 맹인 전도 협회에 알아보겠다는 대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시대적 위기와 재정의 곤란을 겪으면서도 박두성 선생은 사재를 기꺼이 다 내며 역사서, 소설, 고서 등 76종의 시각 장애인 교육자료를 점역으로 출간했다.

박두성 선생은 맹인협회 회원 모집 글에서 장애가 있어도 끊임없이 배워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마치 28자의 한글을 만들며 백성의 생각과 뜻을 글로 나타내고 펼칠 수 있게 하려 한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 담았듯 말이다. 그의 활동은 시각 장애인의 자립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사회에 배출하게 하는 밑바탕이 됐다. 박두성 선생을 일컬어 '시각 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칭하는 이유다.

오늘날 국가유산청에선 장애인들이 문화유산 관련 보고서와 연구 자료를 누릴 수 있도록 촉각그림과 정보무늬(QR코드)로 영상과 수어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맹사일지'를 비롯한 장애인과 관련된 문화유산의 과학적 보존처리도 국가유산청이 공을 들이는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맹사일지 한 권의 책장을 한 장 한 장 보존처리하면서 나는 기대한다. 박두성 선생이 맹사일지를 제작하면서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꿈꾸었듯 이제보다 더 많은 이들의 문화유산 향유를 위해 '문화유산 복지'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확장되기를. 정희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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