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문학, 인간을 잇는 실"
이념·나이·빈부 넘어서
타인의 삶 품는 힘으로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튿날 매일경제에 그의 인터뷰가 실렸다. "문학이라는 것이 원래 연결의 힘을 가지고 있지요. 소설은 우리를 연결하는 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우리는 문학, 특히 소설을 읽으며 타인의 삶을 경험한다.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그의 고통에 연민을 느낀다. 그가 대변하는 사람들의 세상과 연결된다.
그 연결은 분열의 시기에 더욱 소중하다. 이념·나이·빈부에 따라 찢겨 타인의 삶을 공감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문학은 우리를 이어주는 실이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속한 세상의 경계를 넘어 잠시나마 타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타인의 시점에서 세상을 본다. 그가 속한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다. 다수가 그런 경험을 하면 세상 자체가 바뀐다.
인류의 '전쟁관'이 그런 변화의 대표적인 예다. 20세기 초만 해도 당대의 지성까지도 전쟁을 찬양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전쟁은 사람들의 마음을 넓히고 인격을 향상시킨다"고 했고, 영국의 평론가 존 러스킨은 "전쟁은 인간의 모든 미덕의 근본"이라고 했으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전쟁은 사회 경직과 정체로부터 국가를 구원한다"고 했다.
이런 전쟁관이 바뀌는 데에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나온 반전 소설이 큰 역할을 했다. 에리히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그중 하나다. 주인공은 담임 교사의 선동으로 동급생들과 함께 자원 입대한 18세 청년 파울 보이머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그의 시선에서 전쟁을 본다. 동급생들이 한 명씩 죽어 나가는 전쟁의 비참함을 경험한다. "내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악마가 돼 달리고 또 달리며 살인을 저지른다"는 보이머와 동행하며 전쟁의 잔인함을 목격한다. 하지만 보이머는 그 지옥에서도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칼에 찔린 적군을 어떻게든 구하고자 한다. 그 병사가 아내·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자, 그 가족의 고통을 느낀다. 그를 살릴 수 있다면 자기 목숨에서 20년은 포기할 수 있다고 한다. 연민과 공감으로 적에 대한 두려움을 지운 것이다. 그는 바로 그게 "인간성이 파탄난 공포의 세월을 보상할 만한 앞으로의 삶의 과제가 아닐까"라고 자문한다. 소설을 읽는 우리 역시 그 과제에 깊이 공감한다.
한강의 작품 역시 그런 힘이 있다. 노벨상위원회는 그의 작품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했다. 소설 '소년이 온다'의 다음 구절은 그 평가에 들어맞는 듯하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화자는 1980년 5월 전남도청으로 몰려온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은 소년 동호를 기억한다. 도청에 남겠다는 동호를 끌고 나오지 못한 자신의 삶을 고통스러운 장례식에 비유했다. 하지만 동호 역시 계엄군의 총에 맞은 친구의 손을 놓쳐버린 죄책감에 도청에 끝까지 남은 것이다. 이처럼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지독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이제 나는 이미 '민주화운동'으로 역사책에 기록된 그날을 모독하는 건 절대 못 할 것이다. 비록 간접 경험이지만 그들에게 공감하며 그들의 세상과 연결됐기 때문이다.
사실, 공감 능력 자체는 쥐에게도 있다. 쥐가 손잡이를 누르면, 먹이를 주면서 이웃 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한 실험이 있었다. 잠시 후 쥐는 더는 손잡이를 누르지 않았다. 이웃의 고통 대신 자신의 배고픔을 선택한 것이다. 인간의 공감이 쥐와 다른 건 '이웃'이라는 협소한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문학은 타인과 우리를 이어줌으로써 공감의 범위를 넓힌다. 그게 바로 문학의 힘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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