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간 드론 아래서 잠을 청했던 기자, 학살을 기록하다

김예리 기자 2024. 11. 1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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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집단학살 1년 인터뷰 ②] 유세프 함마쉬 팔레스타인 영상기자
힌츠페터국제보도상수상..."언론인 집단 살해 침묵하면 언론 아냐"
"인질 4명 구출에 300명 살해, 서구언론은 팔레스타인 비인간화"
"모두가 이스라엘 폭격 외면하는 가운데 공포영화 속을 살고 있다"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지난해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살상을 영상 보도한 유세프 함마쉬 기자·영화감독. 사진=김예리 기자

“이스라엘이 가자에 전쟁을 선포한 10월7일 이후 나는 민주주의, 인권, 언론의 자유 같은 말을 믿지 않게 됐다. 이제 세계의 어느 언론인도 영웅이 될 수 없다.”

지난해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살상이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국제인권법 전문가들은 “인류 역사상 첫 생중계 스트리밍되는 집단학살”이라 규정한다. 13개월 간 사망자 4만3391명. 가자지구 주민 53명 중 1명 꼴로 숨졌다. UN은 사망자 중 4~9세가 가장 많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하고 전기, 연료, 물, 식량, 의약품, 생필품 등 구호물자 진입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지난 5월까지 가자지구에 투하된 폭탄은 세계 2차대전 당시 드레스덴·함부르크·런던에 사용된 총량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은 “목격자 없는 전쟁”(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을 자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봉쇄한 가자지구에 취재 접근을 금지하는 한편, 안으로는 언론인 표적 살상을 이어간다. 팔레스타인언론인연합(PJS)에 따르면 지난해 10월7일부터 지난 7일까지 최소 168명의 언론인이 숨졌다. 국제언론인단체 집계 이래 최대 수치다. 이 기자는 “교전 중 사망한 기자는 한 명도 없다”고 말한다. 모두 이스라엘의 일방 폭격 또는 저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의미이다.

유세프 함마쉬(Yousef Hammash·32세) 팔레스타인 기자는 그 현장의 피해자이자 목격자, 기록자다. 그는 지난해 10월10일, 가자지구가 이스라엘의 포화에 휩싸인 현장을 처음 해외 보도로 알렸다. 영상 속에서 그는 “우리는 어디로 피해야 할지도 모른 채 달린다”고 말한다. 전 세계에 보내는 '개입 요청'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목숨 걸고 촬영하고 또 전송하는 건 결국 세계가 이 문제에 개입해 막아서라고 압박하기 위해서다. 이런 가혹한 현실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그라운드홀에서 만난 함마쉬 기자는 이제 스스로를 기자라 부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안하지만 당신 역시 기자임을 자랑스러워할 수 없다. 가자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서 저널리즘이라는 업이 자랑스러울 수 없다. 우리는 너무나도 비인간화됐으며 국제 사회가 우리를 그렇게 내버려뒀다.”

함마쉬 기자는 지난 4월 가자지구 남쪽 라파 국경을 통해 이집트로 나왔고, 지난 2일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수여하는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자로 초청돼 한국을 찾았다. 그의 보도를 방영한 영국 '채널4'는 에미상 저널리즘 부문과 영국 아카데미(바프타·BAFTA) 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0월10일 유세프 함마쉬 기자·영화감독이 촬영, 제작하고 영국 채널4가 방영한 '지금 가자에서(Inside Gaza)' 보도 갈무리

함마쉬 기자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10월7일 곧장 카메라를 들었다. “가자 주민들은 경험에 비춰 이스라엘이 압도적으로, 불비례하게 대응할 거라고 확신했다. 모든 걸 파괴할 거라고. 먼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기록하기 위해 촬영을 시작했다. 더 중요한 건 가자지구 밖에 있는 이들에게 책임을 촉구하는 일이었다.”

보도가 하루 만에 100만 번 넘게 재생된 날 밤, 함마쉬 기자는 50통 넘는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를 받았다. 가자 주민들에게 발신자 표시 없는 전화는 이스라엘군(IDF) 전화로 알려져 있다. 함마쉬 기자는 통화 상대방이 “내가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말하거나 서툰 아랍어로 욕설을 쏟아냈다고 했다.

“첫 주에 모든 것을 잃었다.” 보도 이틀 뒤인 10월12일, 자발리야 난민촌에 있던 그의 집이 이스라엘에 의해 폭격 당했다. 사흘 뒤엔 그의 새 집, 하루 뒤엔 그의 부모가 사는 집이 폭격을 당해 사라졌다. 그는 “열세 달 동안 가족의 절반과 친구들 90%가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됐다”고 말했다.

지난 3일 한국에 도착한 그는 가족의 사망 소식을 끊임없이 접하고 있다. “어제는 사촌 5명이 살해당했다. 전날엔 삼촌 두 분이었다. 모두 집이 이스라엘에 의해 폭격 당했다. 한국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가족 7명이 죽었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남아 있는 세 명의 자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모두가 외면하는 가운데 공포영화 속을 살고 있다”고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차별 폭격과 함께 통신 차단도 겪고 있다. 이스라엘이 '블랙아웃'을 적용하면 가자 전역에 전기와 인터넷이 모두 차단된다. 전화도 사용할 수 없다. 구급대도 구조하러 가지 못한다. 이런 조치는 기약 없이 수일까지 이어진다. 함마쉬 기자는 “이 때 폭격은 단지 계속되지 않는다. 더 심해진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우린 블랙아웃이 벌어지면 대대적 공격이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의 주거 단지. 유세프 함마쉬 기자·영화감독 제공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소리만 듣고도 이스라엘 무기 종류를 구별하게 됐다. 이는 10월7일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다. “가자 주민들은 소리만 듣고도 전차 포격인지, F-16 전투기인지, F-35 미 전투기인지, 드론이라면 그 종류는 무엇인지 안다.” 그는 가자를 나온 지금도 잠을 청할 때 드론 비행 소리를 재생한다.

“내가 열두 살이던 2004년부터 이스라엘이 드론을 띄우기 시작했다. 이제는 24시간 내내 띄우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소리는 삶의 일부가 됐다. 지난 4월 가자지구를 떠나 이집트에서 며칠 간은 드론 소리가 없어 잠에 들지 못했다. 20년 간 드론 아래에서 잠을 잤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지금도 그렇다. 잠에 못 들 때 휴대폰으로 드론 소리를 튼다. 우리는 이제 200만 명의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됐다.”

그는 “가자지구의 기자들을 버티게 하는 건 책임감”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을 겪고 정신이 멀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어제 내 사촌들이 죽었는데 지금 당신 앞에 앉아 인터뷰하고 있지 않나. 나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럴 시간이 없을 뿐이다.” 그는 “전쟁이 끝나면 내게 개인적으로 닥칠 후폭풍을 그때 가서 처리할 것”이라며 “그 때에야 위험이 찾아올 거다. 이 일이 끝나고 나면 얼마나 힘들지가 두렵다”고 했다.

▲지난해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살상을 영상 보도한 유세프 함마쉬 기자·영화감독. 사진=김예리 기자

1992년생인 함마쉬 기자는 가자지구 자발리야 난민촌에서 나고 자랐다. 이스라엘은 그가 열네 살이던 2006년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그는 서안지구도, 예루살렘도 가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팔레스타인의 마즈달이라는 마을에 살았다. 카펫 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은 1948년 '나크바'로 인해 가자지구로 내몰려 난민이 됐다. 나크바는 이스라엘 시오니스트 세력이 1만5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고 최소 75만 명을 기존 팔레스타인 땅에서 몰아낸 사건이다.

지난 8월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B'Tselem)의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수용시설에 갇힌 팔레스타인인은 최소 9623명이다. 지난해 10월7일 이전 5200명에서 크게 늘었다. 이중 절반가량은 수사, 기소 절차도 거치지 않는 '행정구금'이다. 함마쉬 기자는 “이는 이스라엘에서만 있는 제도이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제도”라며 “서구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치 이스라엘이 하면 괜찮다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구 주류 미디어의 '팔레스타인인 비인간화'가 고질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6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중부에서 인질로 잡혔던 이스라엘인 4명을 구출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수놓았고, 이스라엘이 이 과정에서 '공중 엄호'를 이유로 인근 누세이랏 난민촌을 공습해 난민 300여명이 숨진 사건은 밀려났다는 것. 당시 CNN 기사 제목은 <이스라엘이 인질 4명을 구출하다, 가자 당국자가 200명을 죽였다고 말하는 작전에서>였다. 알자지라가 <누세이랏: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해부> 제목으로 심층보도한 사건이기도 하다.

언론은 이스라엘의 '인간 방패' 주장도 검증 없이 받아썼다. 지난해 10월부터 민간인 살상 비판에 휩싸인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민간인을 방패로 쓴다'고 주장해왔다. 함마쉬 기자는 “나는 이스라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이 안전하다고 주장한) 가자 남부로 갔다. 그리고 학살을 연속으로 목격했다”고 했다. “(미국 정부와 서구 언론이) 희생자 숫자를 의심하기에 나는 카메라로 모든 시신을 찍는다. 하마스 대원은 없었다. 어제 살해당한 내 사촌들은 집에서 가족들과 있다가 폭격 당했다. 거기에도 하마스 대원은 없었다. 도대체 학교나 병원을 폭격하면서 어떻게 하마스가 인간 방패를 썼다고 주장할 수 있나?”

▲지난 5일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 등이 개최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별 행사에서 유세프 함마쉬 기자·영화감독이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 1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내 살상이 집단학살에 해당할 여지를 인정하면서 이스라엘에 즉각 집단학살 방지 조처를 명령했다. 지난 7월엔 팔레스타인 영토 불법점령 중단을 명령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카림 칸 검사장은 지난 5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살상과 미국의 무기 지원이 계속되는 가운데, 서구 언론은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당국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함마쉬 기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체를 파괴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고 계속하려면 그들의 논리를 떠들어댈 사람이 필요하다. 서구 언론은 그 수단이며, 단순히 방관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연루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우리를 완전히 비인간화했다.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 초 단위로 죽음을 맞이하고, 매일같이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있는데, 전 세계는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고 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의 기자 사망 통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181명의 언론인들이 살해됐다. 하지만 전 세계 언론도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동료 언론인이 음식과 물 없이 매일같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언론인으로서 자랑스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 목소리를 내지도,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는 언론이 언론인가? 그렇다면 나는 그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인간적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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