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군제에 조용히 ‘쇼핑 채팅방’ 나가는 사람들

박은하 기자 2024. 11. 1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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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광군제에 쇼핑 플랫폼 타오바오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커머스 방송. /화면 캡처

시장 규모가 5조위안(약 968조원)에 달하는 중국 라이브 커머스(실시간 소통 판매) 시장이 조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라이브 커머스 시장을 이끄는 ‘왕홍’들의 올해 판매 실적이 예년만 못하다고 집계됐다. 젊은층 사이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온라인 판촉 이벤트에 염증을 느끼는 ‘탈쇼핑’ 흐름도 감지된다.

11일 펑파이신문에 따르면 린린은 지난 2월부터 라이브 커머스 생방송 시청을 중단했다. 그는 “심심할 때 생방송을 보며 주문한다. 하룻밤에 6~7개씩 주문했다 다음날 일어나 후회하고 취소하는 일을 반복했다”며 “올해는 생방송을 보며 어떠한 구매도 하지 않을 것”이라 전했다.

린린이 가입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지 마’ 그룹에는 충동구매했다 후회한 경험이나 쇼핑 플랫폼의 마케팅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관한 조언 등이 올라온다. “빅데이터가 내 취향에 따라 계속 추천해준다. 무조건 ‘아니오’를 계속 누르고 ‘옷 안 사요’ 같은 검색어를 입력해야 한다. 나중에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쇼핑 중독으로 한때 안구건조증까지 걸렸던 류민은 올해 광군제는 “휴전”이라며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전했다. 그는 2019년 쇼핑앱에서 라이브 커머스를 처음 접했고 2020년 좋아하는 진행자가 생겨 그가 추천하는 물품을 계속 구매했지만 값싸고 질 낮은 물건에 질렸다고 전했다.

중국 연례 최대 쇼핑 축제인 광군제가 시작됐지만 과거와 같은 쇼핑 붐을 일으킬지도 미지수이다. 광군제는 중국 쇼핑몰 알리바바가 11월 11일을 ‘싱글들을 위한 날’이라며 2009년 할인 행사를 하면서 처음 시작됐다. 올해는 내수부진을 타개한다며 10월 초부터 할인행사가 시작됐다.

쇼핑 열기 자체는 여전히 뜨겁다. 중국 증권가에 따르면 중국 라이브 커머스 시장의 규모는 5조위안에 달한다. 소비자들은 라이브 생방송 단체 채팅방에 입장해 방송을 보며 구매한다. 플랫폼 콰이쇼우에는 10월 12~28일 광군제 이벤트 기간 거래가 100만건이 넘는 생방송 채팅방 수가 1300개를 넘어섰다. 왕홍으로 불리는 인기 라이브 커머스 스트리머(진행자)들도 높은 판매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몇몇 슈퍼스타를 제외하면 왕홍들의 실적은 예전만 못하다고 보고되고 있다. 유명 진행자 치얼은 지난 10월 11일 15시간 연속 생방송으로 7500만~1억 위안의 판매를 달성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벌어들인 5000만~1억7500만위안에 못 미친다. 유명 왕홍 동위휘도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30%에 해당하는 1억위안 이상 감소했다.

왕홍 경제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당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2월 말 라이브 스트리머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1508만명인데 이 숫자는 2025년 1941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몇몇 라이브 스트리머가 고소득을 올리면서 청년실업의 돌파구로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라이브 스트리머의 80% 이상이 월 평균 수입은 8000위안(155만원) 미만이다.

펑파이신문은 전문가를 인용해 왕훙 경제가 성장국면에서 정체국면으로 나아가 수축국면에서의 경쟁이 벌어지고 진단했다.

허위·과장광고 등으로 신뢰에 타격이 생긴 것도 라이브 커머스 열기가 다소 주춤해진 이유로 꼽힌다. 지난 9월 중추절을 앞두고 터진 ‘홍콩 메이성 월병’ 사건이 대표적이다. 홍콩 브랜드를 내세우며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큰 인기를 얻던 이 월병 회사는 알고 보니 광둥성 업체라는 사실이 밝혀져 소비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알리바바 그룹은 매년 광군제 기간의 ‘대박’ 매출액을 공개하다가 2022년부터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내수 부진에 중국 젊은이들의 소비 패턴이 변화하는 등 여러 요인이 겹쳐 광군제 기간의 소비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자 비공개로 전환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광군제와 더불어 양대 쇼핑 축제인 지난 상반기 ‘618’ 쇼핑축제의 매출액이 사상 처음 감소한 바 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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