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위해 3번 이사한 할머니 … KPGA 전관왕 보답한 장유빈

임정우 기자(happy23@mk.co.kr) 2024. 11. 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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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 국가대표 출신 차화자 씨
7살때부터 키우고 뒷바라지
동해서 살다가 훈련환경 좋은
양양·대전·용인으로 거주 옮겨
장, 제네시스 대상 등 싹쓸이
2009년 배상문 이후 15년만
군산CC 오픈 정상에 올라 할머니 차화자 씨(오른쪽)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장유빈. KPGA

할머니는 손자 이름을 '세상에 너그럽게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을 담아 '유빈'이라고 지었다. 손자는 할머니 바람대로 세상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제네시스 대상을 차지한 장유빈(22)과 할머니 차화자 씨(81) 이야기다. 손자를 프로골퍼로 키우기 위해 지난해까지 운전대를 잡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차씨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올바르게 커준 유빈이가 자랑스럽다"며 감격해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골프 남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장유빈은 올해 KPGA 투어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지난 10일 제주 사이프러스 골프&리조트에서 막을 내린 2024시즌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그는 2승을 포함해 톱10에 11번 들며 KPGA 투어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제네시스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금왕과 평균타수상, 다승왕까지 싹쓸이하며 전관왕을 달성했다. 장유빈은 2009년 배상문 이후 15년 만에 KPGA 투어 전관왕 달성자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장유빈의 성공 뒤에는 할머니 차씨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 장유빈은 5세 때까지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용인에서 살았다. 그러나 6세 때 할머니·할아버지가 강원도 동해로 이사를 가면서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됐다. 할머니·할아버지를 보기 위해 동해를 방문했던 어느 날 우연히 따라갔던 한 골프 연습장에서 장유빈의 골프 인생이 운명처럼 시작됐다.

공을 맞히는 재미에 푹 빠진 그는 가족에게 골프 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잠시 고민하던 차씨는 손자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차씨는 "할아버지를 따라서 몇 번 갔던 골프 연습장에서 재미를 느꼈는지 어느 날 선수가 되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공을 차거나 던지는 것을 보면 운동신경이 남다르다는 것이 느껴져 골프를 시켜 보기로 했다"며 "세 살 터울인 형을 언제나 이기려고 했는데, 승부욕이 남다른 것도 운동선수로서 자질이 있다고 생각됐다.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유빈이는 7세 때부터 동해에서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됐다"고 회상했다.

할머니 차씨와 할아버지는 각각 정구와 테니스 국가대표를 거친 체육인 출신이다. 특별한 DNA를 물려받은 장유빈은 초등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때 차씨는 손자를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시키기 위해 양양으로 이사를 갔다. 차씨는 "동해는 연습 환경이 좋지 않아 김경태, 노승열 등이 성장한 속초로 이사를 가려고 했다. 그러나 구할 수 있는 집이 없어서 양양으로 가게 됐다. 당시에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유빈이를 위해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손자를 위해 삶의 터전을 옮긴 건 한 번이 아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처럼 차씨도 장유빈을 프로골퍼로 키우기 위해 세 차례 이사했다. 중학교 때부터 대회가 전라도 지역에서 많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 차씨는 대전으로 두 번째 이사를 갔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이후에는 '골프 8학군'으로 불리는 용인에 다시 거처를 마련했다.

차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원도에서 전라도를 오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동 거리에 부담이 없는 대전에 집을 구하게 됐고 나중에는 골프장이 밀집한 용인으로 옮겼다"며 "감사하게도 이사할 때마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고 유빈이가 국가대표로 활약하게 됐다. 또 새로운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빠르게 적응한 우리 손자가 정말 기특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차씨는 손자를 위해서라면 지금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까지 15년간 직접 운전하고 대회가 열리는 전국 곳곳을 다녔지만 내가 힘든 적은 없었다. 유빈이가 골프가 잘 안 돼 속상해할 때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감사하게도 힘든 과정을 스스로 잘 이겨냈다.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골프를 하며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환절기에는 유빈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 시간마다 일어나 방 안 온도와 습도를 조절했다. 다음 날 유빈이가 행복하게 골프를 치는 것을 보면 모든 피곤함이 사라졌다. 이게 손자를 사랑하는 할머니 마음인 것 같다. 앞으로도 유빈이가 필요로 하면 어디든지 달려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씨는 어떤 역경이 찾아와도 이겨내는 단단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그는 "유빈이가 올해 잘해서 정말 기쁘지만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걱정스럽기도 하다.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는데, 잘 실천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또 할머니의 바람 중 하나인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장유빈은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할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가르침대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베푸는 삶을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임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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