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발견하면 폭격도 멈췄다지

한겨레21 2024. 11. 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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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임의 산들산들]한겨울에도 황금빛 도는 녹색 자랑…북유럽에선 나무 아래서 싸움 멈춰
겨울에 익는 겨우살이 열매는 앵두만 하다.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는 열매 한 알에도 꽉 차 있다. 속이 환히 비치도록 맑아서 그 안에 든 씨앗이 다 보인다. 시마네현과그주변야생식물포털(wildplantsshimane.jp)

우살이는 다른 나무에 뿌리 내리고 사는 기생식물이다. 기생식물이지만 나무다. 그것도 상록수다. 나무 꼭대기에 있으니 주변 식물과의 빛 경쟁에서 대체로 앞서는 편이다. 스스로 광합성을 하고 양분을 만든다. 그래서 겨우살이를 정확하게는 반(半)기생식물이라 부른다. 한겨울에도 겨우살이는 황금빛이 감도는 녹색을 자랑한다. 그건 지상의 색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다른 행성에서 되쏘는 빛의 파장 같다.

가지 아래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겨우살이는 볼수록 신비로운 데가 있다. 유럽에서는 이 나무를 신성시하는 전통이 있다. 하늘땅 사이에 매달려 상록으로 생명의 영속성을 말하는 식물이라는 것이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가 그러하듯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들은 겨우살이로부터 자주 영감을 받았다. 켈트 다신교의 성직자 드루이드가 겨우살이를 숭배하던 그 시절, 사람들은 겨우살이가 기생식물이 아니라 신령한 나무에만 돋는 일종의 사마귀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신화는 오늘까지 이어져 서양에서는 이 나무를 행운의 상징이자 액운을 무찌르는 부적과도 같다고 여긴다. 겨우살이를 연인의 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가지 아래에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입을 맞추게 된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새해에 겨우살이 가지를 나눠주며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지구에는 1천 종이 넘는 겨우살이 종류가 번성해서 산다. 극한 환경을 제외하고는 지구의 거의 모든 곳에 있다. 숙주가 있는 한 겨우살이는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을 것이다. 생물학적인 구분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에는 네 종류의 겨우살이가 있다. 겨우살이, 꼬리겨우살이, 참나무겨우살이, 동백나무겨우살이인데, 그들 모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 널리 퍼져 살아간다. 그중 겨우살이와 꼬리겨우살이는 우리나라 전역 깊은 산지에, 참나무겨우살이와 동백나무겨우살이는 겨울이 비교적 따뜻한 남부지방에 산다. 전국에 가장 널리 분포하는 건 겨우살이다.

갈잎나무가 무성하게 잎을 달고 있을 때는 겨우살이가 잘 안 보인다. 그 나무가 잎을 잃기 시작해야 겨우살이는 서서히 노출된다. 제대로 덩치를 키운 겨우살이의 모양과 크기는 까치의 둥지를 닮았다. 뽕나무류, 참나무류, 팽나무류 구분하지 않고 기주 나무에 의지해서 한 해에 한 마디씩, 겨우살이는 천천히 성장한다. 덕분에 겨우살이 마디를 세면 나이를 알 수 있다. 가지가 가지를 치고 또 치는 방식으로 동글한 체구를 이루기까지 20년 이상 걸린다. 기생의 삶은 만만하지 않다. 대담하지만 신중하고, 치밀하면서도 집요하다.

느티나무, 참나무 등 활엽낙엽수에서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는 반기생식물 겨우살이의 전체모습. 시마네현과그주변야생식물포털(wildplantsshimane.jp)

한 나무에만 치우쳐 기생하지 않아

그 출발은 한 톨의 씨앗에서부터다. 겨울에 익는 겨우살이 열매는 앵두만 하다.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는 열매 한 알에도 꽉 차 있다. 속이 환히 비치도록 맑아서 그 안에 든 씨앗이 다 보이므로. 얇은 껍질 안쪽에 투명하고도 끈적끈적한 속살이 한 개의 씨앗을 싸고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겨우살이는 열매가 대부분 황금색이다. 드물게 붉은색이 있고(그걸 붉은겨우살이라고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노랑과 빨강이 섞인 경우도 있다(유럽겨우살이는 흰색이다). 겨우살이 열매는 새들의 겨울 식량이다. 특별한 단맛과 달라붙는 질감과 영롱한 색감의 그 열매를 새들은 사랑한다. 먹을 것 구하기 힘든 계절에 탐스럽게 익어서 더 그럴 것이다. 새들은 겨우살이 씨앗을 먹고 얼마간 날아가서 배변하는 방식으로 씨앗을 퍼뜨린다. 부리나 깃털에 씨앗이 붙어 가기도 한다. 겨우살이가 자손을 멀리 내보내고 싶어 하면 이때 새들은 훌륭한 조력자가 되는 셈이다. 개똥지빠귀와 직박구리와 황여새와 같은 조류에게 겨우살이는 자기 열매를 넉넉하게 내준다. 종자를 퍼뜨리는 건 자손을 많이 보겠다는 목적도 있지만 기주 나무를 덜 힘들게 하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골고루 분산시켜 어느 한 나무에만 치우쳐 기생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것이다. 기생의 삶은 결코 숙주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는다.

깊은 산에 조사하러 갔다가 나뭇가지에 붙은 겨우살이에 또 다른 겨우살이가 세 들어 사는 걸 볼 때가 있다. 겨우살이가 이미 사는 자리에 새똥이 겹쳐 떨어진 것일 터. 운좋게도 그러한 겨우살이 사슬을 만나면 여기가 새들이 똥오줌 누기 좋은 자리구나, 나는 반가워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한겨울에도 황금빛 감도는 녹색 뽐내는 겨우살이. 일러스트레이션 차지우

새들의 내장을 통과한 씨앗은 훼손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배출된다. 그건 씨앗을 감싸고 있는 과육의 끈적거리는 섬유질 덕분이다. 그 접착성 물질이 비스신(Viscin)이다. 끈끈한 정도가 아주 강해서 옛사람들은 그걸 나무에 잔뜩 묻히는 방식으로 새를 잡았다. 잘 붙고 방수와 재생 능력을 두루 갖춰서 비스신은 상처 난 데 붙이는 밴드처럼 쓸 수도 있다.

겨우살이의 투명한 열매는 어떻게든 터진다. 새가 부리로 쫄 때 생기는 외력으로, 높은 데서 아래로 떨어지는 중력으로, 열매 저 혼자 수분이 응축해서 팡 폭발하는 압력으로. 그래야 발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열매를 탈출한 씨앗은 끈끈한 섬유질을 두른 채 이 나무, 저 나무 안 가리고 척척 들러붙는다. 땅에 떨어지면 낭패다. 반드시 숙주가 되어줄 나무에 안착해야 한다. 수피의 갈라진 틈을 비집고 나무 내부로 가느다란 뿌리를 내리면, 흡착 능력이 있는 뿌리는 금세 체관부와 물관부로 뻗는다. 그렇게 숙주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겨우살이는 빨아들인다.

암 환자 치료하고 비장·월경 질환에도 효능

새들한테 먹히지 않는다면 열매는 꽃이 필 때까지 그대로 달려 있기도 한다. 꽃 피지 않고 열매가 어찌 존재할까. 겨우살이는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나무에서 피는 암수딴그루다. 나무가 적어도 4~5년 커야 첫 꽃이 핀다. 봄에 핀다. 꽃이 작아도 너무 작고, 꽃과 잎과 가지가 다 비슷한 색깔이라 꽃이 피어도 망막에 비친 바로는 그게 꽃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향기는 확실하다. 오렌지와 사과가 한데 섞여 농익는다면 겨우살이 꽃향기로 피어날 것이다. 자연에서 겨우살이는 수그루보다 암그루가 적어도 두 배 이상 많다. 수그루의 향기가 더 짙은 편이다. 개미와 꿀벌, 파리 같은 작은 곤충들이 서둘러 찾아와 수꽃이 빚은 꽃가루를 암꽃의 암술머리에 갖다 묻힌다. 곤충의 방문이 없어도 겨우살이 꽃가루는 바람에 실려 이 꽃과 저 꽃을 경계 없이 넘나든다.

겨우살이의 영어 이름은 ‘미슬토’(Mistletoe)다. 똥을 뜻하는 미슬(mistle)과 나뭇가지라는 뜻의 탠(tan)이 합쳐진, 앵글로색슨족의 단어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미슬토는 요즘 의학계에서 유명하다. 암 환자를 대상으로 가장 널리 연구된 대체요법 중 하나가 미슬토 처방이라서 그럴 것이다. 20세기 초 인지학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와 스위스 의사 이타 베그만이 미슬토 주사 항암요법을 처음 제안한 이래 100여 년 동안 유럽의 많은 병원에서 겨우살이로 암 환자들을 치료해왔다고 들었다. 실제로 사람을 구하는 데 겨우살이를 사용한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기원전 히포크라테스는 비장과 월경과 관련된 질환을 치료하는 데 겨우살이를 쓴다고 기록했고 2세기에 활동했던 플라톤학파 켈수스는 부기와 종양에 겨우살이를 사용한다고 썼다. 16세기에 이르러 겨우살이는 유럽의 여러 문헌에 등장하며 각종 질환에 대한 약효를 설명한다. 오늘날 약으로 주로 쓰는 건 유럽겨우살이와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아시아에 사는 겨우살이다. 한방에서는 같은 종의 겨우살이라도 기주 나무에 따라 구분해서 불렀다. 뽕나무에 살면 상기생(桑寄生), 밤나무에 살면 율기생(栗寄生), 느릅나무에 살면 유기생(楡寄生), 참나무에 살면 곡기생(槲寄生)으로.

고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영국은 12월1일을 국가 겨우살이의 날(National Mistletoe Day)로 지정해서 기념한다. 영국 우스터셔주 북서쪽에 있는 도시 텐버리웰스는 겨우살이 무역의 중심지다. 그 도시 사람들은 오래된 사과나무와 라임나무 과수원에서 겨우살이를 키운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도시는 겨우살이를 비롯해 호랑가시나무와 포인세티아와 같은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식물 경매 시장이 열려 분주하다. 새로운 땅을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이들 사이에서도 겨우살이를 특별한 식물로 여기는 관습은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역사는 겨우살이로 기록된 것도 같다. 역사에서 겨우살이는 전쟁을 멈추게도 했다. 과거 북유럽 사람들은 그들이 숭배한 겨우살이가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한다. 적들이 겨우살이가 사는 나무 아래에서 마주치면 반드시 싸움을 멈춰야 했다는 유럽의 옛 문헌을 읽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제2차 세계대전 후반에 독일이 개발한 폭격기 이름은 모순되게도 겨우살이를 뜻하는 독일어 미스텔(Mistel)이다. 전투기 아래에 폭발물이 든 무인기를 장착한 모습이 나무 위에 사는 겨우살이 같다고. 그 무기는 침공에 유리하게 차츰 더 작아지고 가벼워졌다. 지금 전쟁이 치열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에도 겨우살이는 드넓게 산다. 그곳에서 드론이 하늘을 날면서 폭격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겨우살이를 발견하고 평화의 깃발을 펼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럽겨우살이의 전체모습.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

잎 떨구고 수형 드러내는 겨울이 왔다

올해는 가을이 유독 더디게 도착한 것 같다. 이러다 가을이 사라지는 거 아니냐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근심 따위 아랑곳없다는 듯 갈잎나무는 어김없이 제 몸에서 물든 잎을 뚝뚝 떨군다. 나는 기후위기와 전쟁과 같은 말이 몰고 오는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가을이 깊어가는 것과 겨울이 머지않은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무는 잎을 모조리 잃고서야 진짜 수형을 드러낼 테지. 나목은 무장도, 꾸밈도, 감춤도 없을 테지. 그러니 나목은 제 것이 아닌 걸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겠지.

그 평화로운 모습을 관찰하기 좋은 시기가 왔다. 단단히 채비하고 우리 되도록 멀고 높고 깊은 산으로 나서보자. 민가 주변이나 야트막한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겨우살이가 사는 곳에 가닿을지도 모를 일이니. 황금 녹색의 생명체가 둥글게 둥글게 모여 사는 그 외경의 풍경을 직접 본다면, 그 전과 후의 삶은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허태임 식물분류학자·‘나의 초록목록’ 저자

*식물학자가 산과 들에서 식물을 통해 보고 듣고 받아 적은, 익숙하지만 정작 제대로 몰랐던 우리 식물 이야기.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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