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통상본부장들 "트럼프 정부와 신속히 협상해야"
"트럼프 1기 때보다 높아진 韓 위상 고려해 기회 만들어야"
[아이뉴스24 권용삼 기자]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세계 경제의 대격변이 예고되는 가운데, 역대 통상교섭본부장들이 모여 "우리 정부가 신속하게 협상에 임한다면 관세 면제 등 국내 산업계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 등의 법안을 폐기할 가능성보다는 이를 유지하는 대신 지원 범위를 축소하거나 독소조항을 추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미국의 '핵심 파트너 국가'로써 양국이 상호 이익을 누릴 수 있도록 '협상 패키지'를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11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미국 新정부 출범, 한국 경제 준비됐는가'라는 주제로 좌담회에 열고 역대 통상교섭본부장들을 초청해 트럼프 2기 행정부 통상정책 전망과 한국 경제계의 대응 전략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모두 미국과의 직접 협상 경험은 물론,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의 주요 정책 대응에 관여했던 인사들이다.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現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예상과 달리 레드 웨이브를 몰고 오며 낙승함에 따라, 2기 행정부의 경제통상 아젠다는 취임 100일 이내에 강력하고 속도감있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트럼프 2기 정부는 무역적자 축소, 제조업 부흥, 미중 패권경쟁 우위 확보라는 3대 목표 하에 관세 등 통상정책을 핵심수단으로 사용해 '아메리카 퍼스트' 비전 실현을 위한 드라이브를 걸 전망"이라며 "이에 대비한 민관의 위기 대응 시스템을 기민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보조금을, 공화당은 세제 감면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중 패권 경쟁이 기술 경쟁으로 확전되면서 반도체, 배터리 부문에서 미국이 중국에 (기술 추격을) 허용하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면서 "트럼프 당선인 성격상 보조금을 주되, 거기서 좀 더 우리 기업에게서 얻으려 한다던가 추가 투자를 요청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여 전 본부장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 상무관으로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무역확장법 232조 등을 직접 대응한 경험을 예로 들며 "1기 당시에 비해 한국 기업의 투자 등 위상이 8년 전에 비해 높아진 만큼, 충분히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6년 한미 FTA 협상의 수석대표로 활약했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19대 국회의원)은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들과 FTA를 체결한 상태"라며 "보편 관세 도입 등을 통해 기존의 FTA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는 건 대외관계 전반과 미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미국이라도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개정 협상을 하게 된다면 양측의 이익이 균형 있게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IRA는 폐기 보다는 보조금 축소 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며 "IRA 혜택의 80% 공화당 (주지사로 있는) 주에서 발생하고 있고, 18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올해 초 IRA 폐기에 반대하는 서한을 보낸 만큼 전면 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1기 정부의 경우 '오바마케어'의 일부분을 폐지하는 '스키니 리필(일부폐기)'를 추진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며 "IRA를 폐지한 다음 공화당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법안을 만들어 의회를 통과시키는 방법 등도 예상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 전 본부장은 트럼프1기 통상정책의 키맨이었던 라이트하이저와의 협상 경험을 공유하며 "당시 트럼프 정부가 양자관계를 판단하는 척도는 '무역적자'였다"며 "무역적자국 8위인 한국이 트럼프 정부의 1순위 고려대상은 아니겠지만, 중국, 멕시코 등 일부 국가에 이어 타겟 국가가 될 수 있다 차분하면서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역수지 적자 해소 수단인 동시에 협상을 위한 레버리지"라며 "미국의 일방 조치에도 우리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협상에 나선다면, 관세 면제나 우리 요구사항 반영이 가능할 수 있다 정부 협상팀에게 도전이자 기회"라고 언급했다.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現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보편 관세가 실제 한국에도 적용된다면 한미 FTA 협정의 상호관세 철폐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며 "트럼프 2기 정부는 바이든 정부가 취했던 중국 견제조치는 그대로 두면서 중국 수입품에 대해 최대 60% 관세를 부과하는 등 추가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다만 트럼프 1기 후반에 했던 것처럼 중국과 대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또 미국 정부의 무역적자 해소와 제조업 강국 회귀 목표에 부합하면서도 우리나라 정부·기업이 동시에 윈윈할 수 있는 '협상 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우리 정부와 기업이 충분히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훈 전 본부장은 "미국이 혼자 인공지능(AI) 시대를 감내할 모든 칩을 설계·제조·공급하는 게 불가능해 협업이 필수"라며 "우리나라는 미국이 갖지 못한 핵심 제조 경쟁력을 갖고 있어 이를 활용하면 미국의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미무역 흑자품목 특히 완성차가 타겟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 한국 업체들은 전기차 내 배터리 외에도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의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사업 재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태호 전 본부장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IRA, 반도체법의 보조금 등 혜택이 줄어들까 봐 우려되더라도 위축될 필요 없다"며 "오히려 대미 투자를 더 늘리는 등 기업 차원에서 과감한 활동을 하면 돌파구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2020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후보에 입후보하기도 했던 유명희 전 본부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WTO의 미래에 대해 "WTO 출범 30년 중 가장 큰 위기"라고 진단하며 "이미 8년 전 트럼프의 등장으로 WTO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지난 4년 간 바이든 체제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다시 돌아온 트럼프 정부는 더욱 확신을 갖고 WTO 체제를 벗어난 통상정책을 구사할 것"이라 전망했다.
이어 "WTO가 철저한 개혁을 통해 거듭나지 않는다면, 이제 규범에 기반한 다자무역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권용삼 기자(dragonbuy@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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