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44〉'자기계발서'에 중독되면 혁신을 망친다
기계수선공이 있다. 격무에 시달렸다. 근무시간을 낮추거나 인력을 충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상사는 어떻게 했을까.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 대신 부장이라는 직함과 개인사무실을 줬다. 그는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열심히 일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가. 데일 카네기의 베스트셀러 '인간관계론'에 나오는 일화다.
누군가에게 보낼 공문을 작성해 본 적이 있는가. 첫 문장은 대개 '귀사(또는 귀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라고 공손하게 시작한다. 그런데 다음 문장에선 돌변해 요구사항을 늘어놓는다. 따르지 않으면 형사고소와 배상청구를 하겠다며 윽박지른다. 첫 문장을 그토록 가식적으로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 문장 때문에 상대방이 감격해서 요구에 따를 것 같진 않은 데 말이다. 그 첫 문장의 유래도 카네기의 조언에서 나왔다.
그는 많은 가르침을 줬다. 꿀을 구하려면 벌통을 걷어차지 마라. 상대방의 욕구를 자극하라.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게 만들라. 좋은 인상을 주고 이름을 기억하고 관심을 끌라. 논쟁을 피하고 적을 만들지 말라. 상대방의 장점과 나의 단점을 먼저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하라. 자신의 잘못을 먼저 말하라. 명령하거나 가르치듯 하지 말라. 상대방의 체면을 존중해라. 나그네의 두꺼운 외투를 벗기는 임무를 맡았다고 하자. 옷을 벗으라는 거친 말과 행동은 효과가 없다. 날씨가 덥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외투를 입는 것이 어색한 연회장, 거실 느낌이 나는 환경을 조성한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틀렸다고 말하지 말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 상대방이 신나서 말을 하게 만들고 자주 공감을 표해야 한다. 중요한 아이디어는 상대방이 먼저 생각해 냈다고 느끼게 하라. 논리를 갖춰 상대방을 100% 압도하면 그 설득은 실패한다. 논리로는 납득되지만 그 자체가 기분 나쁘다. 70%만 설득하면 된다. 나머진 상대방이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해낸 듯 넘어와야 한다. 카네기는 생존경쟁의 도구로서 자기계발을 강조하여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실천하는데 책값을 제외하곤 비용이 들지 않는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의 보편적인 충고이니 부담도 없다.
학교와 직장에서 충고를 들으면 왠지 거북하다. 충고가 옳은 말이어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인 평가나 선입견을 깔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급여 등 보상과 직결되면 최악이다. 충고가 불편한 이유가 뭘까. 학교(선생님)와 회사(상사)가 나를 위한다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신뢰 없는 사회에선 실질보다 형식이 중요하다. '스펙' 쌓기에 몰린다. 동료평가를 받기 위해 윗사람에겐 아부하고 아랫사람에겐 친절하다. '시달리고 피곤한 자아'의 시대다. 자기계발서는 개인을 조직에 종속시키고 경쟁자를 교묘하게 추월하는 법을 가르친다. 옳고 그름을 가르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데, 그것을 소홀하게 만들고 시류에 영합하게 한다. No를 하라고 하지만 실제는 Yes를 하는 법을 가르친다. 황당함, 뜬금없음, 특이함을 배척한다. 성공한 사람의 창의를 본받으라고 하면서 결국은 모방을 부추긴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충고조차 결과는 같은 생각과 행동에 이르게 한다. 형식적인 자기계발은 심리적 위안을 주지만 결국은 시간과 인생을 허비하고 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치열한 사회일수록 나만의 굳건한 자아와 생각을 만들고 지켜야 한다 나만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가치를 찾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물론 자기계발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조직과 사람에 대한 신뢰, 배려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것이 없으면 이기주의와 처세술에 그치고, 개인을 넘어 조직과 세상을 멍들고 병들게 한다.
내가 기계수선공이면 어떻게 할까. 부장 직함과 개인사무실에 넘어가지 않는다. 진심이 보이지 않아서다. 자기계발은 신뢰, 배려, 믿음을 핵심자산으로 해야 혁신의 지름길이 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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