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통상본부장들 "트럼프 2기,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통상환경"
역대 통상본부장들 "이론이 무색, 배운 것과 전혀 다른 상황 펼쳐져"
한국 "솟아날 구멍은 있어…첨단산업 중심 기술 발전 필요, 철저한 협상안 마련해야"
역대 통상교섭본부장들은 트럼프 정부 2기는 취임과 동시에 100일 내에 강력한 통상정책을 속도감 있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업과 정부의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또 과거 FTA와 WTO체제가 작동했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통상환경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취임 100일 이내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
한국경제인협회는 11일 역대 통상교섭본부장을 초청해 트럼프 신정부 통상정책 전망과 한국 경제계의 전략적 대응책 모색을 위한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모인 통상본부장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으로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특히 박빙 대결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면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바이든 행정부 주요 정책의 지속 여부가 불투명해졌다는 평가다.
주제발표를 맡은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2021~2022년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현지에서 화상연결을 통해 대선결과에 대한 현지 반응을 전했다.
여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예상과 달리 레드 웨이브를 몰고 오며 낙승함에 따라, 제2기 행정부의 경제통상 아젠다는 취임 100일 이내에 강력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1대1 협상을 중시한다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그는 "1월 취임 이후 보편관세안을 발표하고 발효까지 5~6개월의 시간이 있는 만큼 그 사이에 개별 국가 별로 '딜메이킹'을 하면서 예외를 해주고, 그게 잘 안되면 보편관세를 발효하는 식"일 것이라면서 그에 대응할만한 협상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0년동안 무역 업무 종사했지만 이런 환경은 처음…이론이 무색"
보편관세 적용에 대해서는 한국이 미국과 FTA 체결 국가라는 점에서 이론적으로는 어렵지만,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재량 등을 활용해 도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여한구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줄곧 얘기한 보편관세 적용에 대해 "세수 확보 차원에서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제품에 대해 가급적 넓고 크게 관세를 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60% 중국관세나 보편관세는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2011~2013년 통상교섭본부장)은 "국제 무역을 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라며 "관세맨이라고 불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보면 보편관세를 적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원장은 그러면서도 "보편관세가 실제 한국에도 적용된다면 한미 FTA 협정의 상호관세 철폐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또 "관세를 적용하게 되면 결국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때문에 4년동안 유지하기도 어렵다. 또 한다고 하더라도 예외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잘 대처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2006년 한미FTA 협상의 수석대표로 활약했던 김종훈 제19대 국회의원(2007~2011년 통상교섭본부장)도 "현업에 있을 때 미국의 통상질서와 비교하면 오늘날 모습은 아주 다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김 전 의원은 "미국은 한국은 물론 여러 나라들과 FTA를 체결한 상태이므로, 보편관세 도입 등을 통해 기존의 FTA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는 것은, 대외 관계 전반과 미국경 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미국 입장에서도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라면서도 "실제 개정협상을 하게 된다면, 양측의 이익이 균형있게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원은 또 "보편관세에 대해 대비는 하되, 덜 파는 쪽을 고민하기 보다는 미국으로부터 더 사올 수 있는 걸 고민하자"고 했다.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2019~2021년 통상교섭본부장)는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트럼프 2기 정부는 바이든 정부를 거치면서 더 강력한 통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했다.
유 교수는 "트럼프,바이든 공통 통상정책이라고 부를 정도로 미국 중심주의 기조가 확고해지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내가 맞았다, 옳았다'라는 생각을 할 것이고, 미국 국민이 원하는 것이고 양당의 콘센서스를 얻은 것이라는 확신에 찬 만큼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 교수는 "한국이 미국의 '최대 투자국'이고 '최대 일자리 창출국'이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논리지만 그것만으로 넘어갈 수 없다. 최상의 결과를 끌어내도록 하되 최악도 대비해야 한다"며 경각심을 주기도 했다.
IRA 폐기는 어렵지만 축소 예상
박 원장은 "반도체법에 대해서는 우리 기업들 투자해서 시설을 짓고 보조금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보조금이 줄어들까봐 걱정하는 것 때문에 위축되지 말고, 오히려 투자를 더 해서 트럼프 정부를 안도 시키면 되지 않을까 싶다. 주저하기보다 더 과감하게 할 필요 있다"고 덧붙였다.
유 교수 역시 IRA 폐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스키니 리필(skinny repeal, 일부폐기)' 의 형식으로 축소될 수 있음을 예상했다. 앞서 트럼프 1기 정부는 '오바마케어' 일부분을 폐지하는 스키니 리필을 추진한 바 있다.
유 교수는 "IRA를 폐지한 다음 공화당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법안을 만들어 의회를 통과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들이 투자한 지역의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우리 요구사항이 선제적으로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판세를 읽으면서 통상 외교를 해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압박 속에서도 "韓, 살아남을 방법 있어"
박태호 원장은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박 원장은 "우리 기업이 많이 나가 있으면 자동으로 수출을 많이 하게 된다"면서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 투자를 많이 하는 걸 이용해서 첨단 소부장 제품을 파는 나라로 발전시켜야 한다. 모든 세계에 파는 핵심부품을 파는 글로벌 허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 또 미국을 기술의 파트너로 삼고 R&D 같은 걸 많이 해야 한다"며 "분명히 길이 있다. 너무 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경협은 내달 워싱턴에서 '제35차 한미재계회의' 개최하고 대미 아웃리치 예정이다. 이번 좌담회를 기획한 김봉만 한경협 국제본부장은 "이번 미국 대선 결과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나, 혼란에 빠지기보다는 냉철한 판단과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트럼프 1기 행정부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통상정책 기조를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한경협은 우리 기업들과 함께 다양한 대미 아웃리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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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조태임 기자 jogiz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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