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대신 ‘달 흙’...서방에 손짓하는 中시진핑 이번엔 ‘달 토양’ 외교
러시아·프랑스 이어 달 토양 선물
’판다 외교’ 이어 외교 무대 선물로 등장
중국이 이탈리아에 지난 2020년 달 탐사선 창어5호가 달 표면에서 가져온 흙 샘플을 선물했다. 중국은 이탈리아가 유럽 국가 최초로 ‘일대일로(一帶一路·육로와 해상 실크로드)’에 참여했다가 지난해 철수한 것과 관련해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오랜 소프트 파워 외교에 사용된 자이언트 판다처럼 달 토양 샘플을 새 외교 수단으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앞서 러시아와 프랑스에도 달 토양 샘플을 선물했다.
11일 중국중앙TV(CCTV)와 이탈리아 안사(ANSA)통신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9일 중국을 방문한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에게 연구 목적으로 달에서 가져온 토양 샘플 0.3마이크로그램(㎍)을 선물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지난 7일부터 약 6일간 일정으로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 2019년 주요7국(G7) 국가 중 유일하게 중국이 추진하는 대외 팽창정책인 일대일로 프로그램에 가입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중국의 확장에 대해 견제에 나서면서 압박을 받아오다 지난해 12월 결국 탈퇴했다.
하지만 올 들어 이탈리아가 다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두 나라 관계는 다시 훈풍이 불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 지난 7월 기업인들과 중국을 방문해 양국의 기술 협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제협정을 맺었다.
이번 회담에서도 양국 정상은 역사 유물의 불법 판매 방지 협정을 통해 이탈리아가 반환한 중국 문화 유물을 함께 시찰했다. 이탈리아는 정상 회담에 앞서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 협력의 일환으로,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 56점을 중국에 반환했다. 반환된 물품엔 중국 고대 마자야오 문화의 채색 토기와 한나라, 당나라, 원나라 왕조의 유물이 포함됐다. 중국이 이탈리아에 연구용 달 샘플을 제공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시 주석은 달 토양 샘플을 제공하는 자리에서 중세 베네치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를 언급하며 양국이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13세기에 위대한 이탈리아 여행가는 중국을 편견 없이 인식하고 묘사함으로써 서양 세계가 중국을 배우는 문을 열었다”며 “고대 문명인 중국과 이탈리아는 개방성과 포용성의 전통을 계승하고 국제 사회가 대화를 통해 차이점을 해결하고 협력을 통해 갈등을 극복하도록 조화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타렐라 대통령도 “중국은 이탈리아에 중요한 파트너이며 과학기술과 무역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문화 협력을 통해 양국 우정을 강화하고 공존을 위한 견고한 기반을 마련하자”고 말했다.
중국은 한때 우방과 주요 전략적 파트너 국가에 자국 상징인 자이언트 판다를 선물로 주다가 지난 1984년부터는 대여 방식으로 전환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20개국에 66마리를 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달에서 독자적으로 가져온 토양 샘플을 외교 무대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4월 중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창어5호가 지구로 가져온 달 먼지 샘플 1.5g을 선물했다. 앞서 2022년에는 중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중국을 방문한 후 1.5g의 창어5호의 달 토양 샘플을 선물로 받았다. 푸틴 대통령은 선물에 대한 화답으로 지난 3월 시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1970년 소련의 루나16호 임무에서 얻은 1.5g의 달 토양을 선물로 받았다.
중국이 달 토양 샘플을 외교에 활용하는 배경은 판다처럼 샘플이 가진 희소성의 가치가 그만큼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달 토양 샘플은 한때 미국과 러시아만이 보유한 희귀품이었다. 미국은 1969년부터 1972년 6차례 걸쳐 유인 달 탐사선 아폴로 우주선의 우주인들이 달 표면에서 직접 채취해온 토양 샘플 382㎏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도 당시 우방은 물론 중국에 친선의 표시로 제공한 바 있다. 러시아도 1976년 루나 16호를 통해 달 토양 샘플을 가져왔다.
중국은 지난 2020년 11월말 달 탐사선 창어5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면서 달 샘플을 자유롭게 활용할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 창어5호는 같은 해 12월 약 한 달여 탐사를 마치고 44년 만에 달 토양 샘플 1.731㎏을 채취해 돌아왔다. 올해 5월에는 달 뒷면에 창어6호를 보내 달 토양 샘플을 가져왔다. 달 뒷면은 아직까지 미국이나 러시아를 포함해 어느 나라도 탐사선을 보내지 못했다. 중국의 달 토양 샘플은 인류가 지구로 가져온 샘플 가운데 가장 최근에 가져왔다는 점에서 각국 연구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국은 달 토양 샘플을 과학 외교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중국 국가우주국(CNSA)은 지난해 창어5호 달 샘플을 연구하고 싶은 해외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았다. 현재까지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파키스탄 과학자들이 현재까지 참여 신청을 했다.
중국은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미국에도 달 토양 샘플을 대여하고 대신 아폴로 우주선이 가져온 달 샘플을 빌려 달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1978년 미국은 두 나라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전날 호의의 표시로 중국에 아폴로17호가 가져온 달 토양 샘플 1g을 선물했다.
하지만 미국 측은 아직까지 중국의 요청에 별다른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 2011년부터 의회의 특별 승인을 받지 않는 한 우주 프로젝트에서 양국의 직접 협력을 금지한 울프 개정안의 제한을 받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미국이 중국의 이번 제안을 받아들일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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