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차량 관세 인상 대비해야···관세는 협상 지렛대여서 도전이자 기회”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 100일 이내에 속도감 있는 통상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 등이 수출하는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를 무역적자 해소 수단이자 협상 레버리지(지렛대)로 보는 만큼 한국 정부에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1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전직 통상교섭본부장들을 초청해 ‘미국 신정부 출범, 한국 경제 준비되었는가’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미 현지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트럼프 당선인이 당초 예상과 달리 ‘레드 웨이브(공화당 돌풍)’를 몰고 오며 낙승함에 따라 2기 정부의 경제통상 아젠다는 취임 100일 이내에 강력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 2기 정부는 무역적자 축소, 제조업 부흥, 미·중 패권 경쟁 우위 확보라는 3대 목표하에 관세 등 통상 정책을 핵심 수단으로 사용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비전 실현을 위한 드라이브를 걸 전망”이라고 말했다.
여 연구위원은 특히 “트럼프 1기 때 자동차에도 ‘국가안보’ 우려를 걸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하려고 했었지만 코로나19로 흐지부지됐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미국의 자동차 관세율이 너무 낮다는 인식이 있다”며 “우려되는 부분은 트럼프 2기에서 관세를 높이려는 조처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또 “트럼프 1기 때 자동차 관련 232조를 담당했던 인사들을 나중에 만나 얘기 들어보니, ‘그때 (관세부과를) 했어야 한는데 못한 것을 정말 후회한다’는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그는 “10% 선에서 보편관세가 추진된다고 가정할 때, 한국이 예외를 받을 수 있는 구체적 논리와 협상 준비를 해야 한다”며 “트럼프 1기 때 철강이 232조에서 예외를 받았던 사례를 복기해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트럼프 1기 당시에 비해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 등 위상이 8년 전에 비해 높아진 만큼, 충분히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경험에 대해 “트럼프 정부가 양자 관계를 판단하는 척도는 무역적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입장에서 무역적자국 8위인 우리는 트럼프 정부의 1순위 고려 대상은 아니겠지만 중국, 멕시코 등 일부 국가에 이어 타깃 국가가 될 수 있다”며 “차분하면서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트럼프 1기 정부 통상 정책 키맨이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협상 경험을 갖고 있다. 유 교수는 “동맹국 여부와 무관하게 무역수지 적자를 주요 기준으로 하고, 세계무역기구(WTO)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는 개의치 않고,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위한 어떤 조치도 도입하려고 하며, 협상 시 한두 달 내에 진전이 없으면 (일방적) 조치 부과도 불사하는 빠른 속도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다만 트럼프 당선인에게 관세는 무역수지 적자 해소 수단인 동시에 협상을 위한 레버리지”라며 “미국의 일방 조치에도 우리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협상에 나선다면 관세가 면제되거나 우리의 요구 사항 반영이 가능할 수 있다”며 “한국 정부 협상팀에게 도전이자 기회”라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한·미FTA가 있어 보편관세에서 면제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이하며, 이것만 가지고 방심할 수 없다”면서 “트럼프 1기 협상 후일담으로 ‘한국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해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가르치려는 태도였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면서도 한국이 원하는 것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해 패키지로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트럼프 2기 정부의 통상정책에 대해 “(미 정부의) 보편관세가 실제 한국에도 적용된다면 (한국은) 한·미 FTA 협정의 상호관세 철폐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과거 미국의 정책 추진 방식을 보면 복잡하게 정책을 설계해놓고 유예 조치를 한다”며 “중국에 대해서는 60%의 관세를 매길 것이지만 그 외 국가들에 대해서는 많은 예외 조치를 할 것이다. 우리가 잘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의 보조금 등 혜택이 줄어들까 봐 우려되더라고 위축될 필요가 없다”며 “오히려 대미 투자를 더 늘리는 등 기업 차원에서 과감한 활동을 하면 돌파구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2006년 한·미 FTA 수석대표를 지냈고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통상교섭본부장을 한 김종훈 전 의원은 트럼프 2기 정부에 대해 “미국은 한국은 물론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한 상태이므로, 보편관세 도입 등을 통해 기존의 FTA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는 것은 대외관계 전반과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미국 입장에서도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라며 “그럼에도 개정 협상을 하게 된다면 양측의 이익이 균형있게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병한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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