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앞두고 유럽 연대 과시하는 영·프 정상
영국 총리로서는 1944년 윈스턴 처칠 이후 처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임이 확정된 지 5일 만에 영국과 프랑스 정상이 만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미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마주하는 두 정상은 유럽 결속력 과시에 집중한다.
10일(현지시간) 영국 총리실은 홈페이지를 통해 키어 스타머 총리가 11일 파리에서 열리는 1918년 (세계 1차대전) 정전 106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영국 총리가 이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1944년 윈스턴 처칠 수상 이후 처음이다.
총리실은 “이번 참석은 영국과 프랑스의 긴밀하고 지속적인 우정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정상은 제1·2차 세계대전의 최전선에서 싸운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희생으로 만들어지고 공고해진 양국의 긴밀한 유대를 회고할 예정”이라고 했다.
스타머 총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하고, 지난 9월 취임한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총리와도 만난다. 회담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상황 등 주요 외교 정책 현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총리실은 밝혔다.
지난 5일 치러진 미국 대선이 끝난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영국과 프랑스 정상이 ‘피를 나눈 유럽의 연대’를 과시하는 것은 양국이 직면하게 된 고민을 드러낸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유세에서 “모든 수입품에 최대 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더 타임스는 “미국은 영국의 최대 단일 무역 상대국”으로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로 내년 영국 경제에 215억 파운드(약 38조7561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이 관측된다”고 했다. 게다가 트럼프 당선인은 여러 차례 나토 동맹국의 국방비 지출을 기존 국내총생산(GDP) 2%에서 최소 3%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내겠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방미 때마다 수백억 달러씩 받아 갔다면서 “최고의 세일즈맨”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 대륙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혀왔다. 미국이 지원을 중단한다면 양국은 더 많은 지원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킬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1180억 유로(약 176조4513억원)를 지원했으며, 미국은 850억 유로(약 127조1047억원)를 제공했다.
이 가운데 트럼프 당선인이 동맹국과 적대국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불확실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0일 트럼프 당선인은 당선 이후 각국 정상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지만, 국무부나 미국 정부의 공식 통역 지원을 거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 인수팀이 아직 미국 정부와 대통령직 인수를 위한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친분을 중시하면서 즉흥적으로 의사 결정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성향이 국제 관계에서 도드라질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국제 정세 불확실성이 더 높아지면서 유럽은 자강을 외치는 분위기다. 마크롱 대통령은 7일 헝가리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서 “영원히 미국에 안보를 위임할 수는 없다”며 “스스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하며 육식동물에 둘러싸인 초식동물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그(트럼프)는 미국인이며 미국의 국익을 수호할 것”이라며 “우리는 유럽인들의 이익을 옹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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