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 득표' 회장도 반년만에 탄핵…의협 '쇄신없는 교체' 언제까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회장의 탄핵을 계기로 의협도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유일한 법정 단체로 의료계 '단일 창구'를 주장하지만 얕은 인적 인프라와 서투른 운영으로 의사들마저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1일 의협은 전날 열린 임시대의원총회(임총)에서 임현택 회장의 불신임(탄핵)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구성 등 두 개의 안건을 모두 가결했다. 탄핵은 재적 대의원 246명 중 224명이 출석해 찬성 170표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됐다. 비대위 설치는 총투표자 169명 중 절반 이상인 106표의 찬성을 받아 역시 가결됐다.
임 회장은 지난 5월 취임 당시 역대 최고 투표율과 득표수를 기록했다. 결선 투표 기준 전체 선거인단 5만681명 중 3만3084명(65.28%)이 투표에 참여했고, 2만1646표(65.43%)를 얻었다.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정부와 대치 상황에 '강경 투쟁'을 천명하며 의사들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SNS(소셜미디어)에 막말과 실언을 반복하고 간호법 통과, 2025년 의대 증원 저지 실패 등에 책임론이 부각되며 의협 역사상 최단기간 탄핵 회장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의협 120년 역사상 회장이 탄핵당한 것은 2014년 노환규 전 회장에 이어 두 번째다. 다만, 의협 회장의 탄핵 '시도'는 수 없이 반복돼 왔다. 노 전 회장 이후로 10년간 7차례나 있었다. 추무진, 최대집 전 회장은 각각 2차례, 직전 이필수 전 회장은 한차례 탄핵을 위한 임총에 직면했다. 회원 투표로 대표자를 선출하고도 "수틀리면" 끌어내리는 일을 반복하는 셈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의협 회원인 개원의, 봉직의, 대학교수, 전공의 등은 직역 간, 세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다는 점이다. 한정된 자원(건강보험 재정)으로 모든 직역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보니 쉽게 파벌이 갈리고 갈등에 빠진다. 심지어 '의사 대표'라는 의협 회장조차 자신의 지지기반 외에 세력을 포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임 회장의 퇴진에는 전공의와의 대립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차기 의협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은 최근 자신의 SNS에 의대 교수로 정부와 대화를 추진했던 서울의대 강희경 비대위원장을 '꼭두각시'라 비유하며 질타했다. 상호 소통이 원활했다면 보기 힘든 장면이다.
일부 의사는 대의원회에 '탄핵 권력'이 집중됐다는 점도 문제로 본다. 임현택 회장의 탄핵안이 상정되자 의료 커뮤니티에는 "내가 뽑은 회장을 대의원 몇백명이 투표로 끌어내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독단적으로 정부와 합의한 최대집 전 회장도 불신임받지 않았다" 등 신뢰성·투명성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대의원회는 의협의 최고 의결기구로 대학 교수 중심의 대한의학회, 개원의·전공의 등 협의회, 시·도의사회에서 선출된다. 보통 시·도의사회 소속이 다수인데 내·외부적으로 이렇다 할 견제 세력이 없다. 의협 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은 SNS에 "의협 회장 선거는 무의미하다"며 "대의원을 대표하는 의장이 대표자이고 언제든 의협 회장을 갈아치울 수 있는 시도의사회장들이 주인"이라며 회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주 출범할 의협 비대위나 향후 들어설 새 집행부는 소통에 중점을 두고 법정단체로서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보건의료노조는 11일 입장문을 내고 "모든 직역과의 연계·협력을 이끌어가는 의협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탄핵을 쇄신의 계기로 삼아달라고 주문했다. 내부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조금씩은 감지된다. 의협 대의원회는 향후 정부 협상을 의대생, 전공의와 협의해야 한다는 점을 결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은 SNS를 통해 "의협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는데 비대위원장이 회장 출마를 위한 '선거용' 직책이어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의료 현안 해결과 내부 쇄신을 이끌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임 회장은 선출 전부터 거친 언행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려 의사 회원들의 우려를 샀는데, 그런데도 뽑힌 건 '회장감'이 그만큼 없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 의협 회원은 "수능과 전공의 모집을 앞두고 있어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모두를 포용하면서 정치력·협상력을 갖춘 '대표'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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