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태웠는데도 적자…인도네시아 진출 은행들 어쩌나
금융당국·정치권도 예의주시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시중은행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의 부실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국민은행의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인 부코핀은행(현 KB뱅크 인도네시아) 등의 경영 악화가 계속되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인도네시아 방문에 나서는 등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관심도 커지는 모습이다. 다른 은행들의 현지 법인 상황도 녹록치 않아 경영에 고삐를 죄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이날부터 15일까지 동아시아 주요 3개국(베트남·홍콩·인도네시아)을 방문한다. 금융 산업 국제화 지원과 글로벌 금융감독 현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부코핀은행을 비롯해 현지 법인들의 운영 리스크 점검 목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지난 달 국정감사에서도 부코핀은행의 대규모 손실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국민은행은 2018년 글로벌 진출 신사업의 일환으로 당시 부실은행이었던 인도네시아의 부코핀은행 지분 22%를 1131억원에 취득했다. 2020년 부코핀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자 3000억원을 투입해 지분을 67%로 늘려 최대 주주가 됐다. 이후에도 2021년 3935억원, 지난해엔 7090억원을 더 썼다. 이에 따른 누적 투자 금액만 1조5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추가 유동성 지원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비용까지 합치면 쏟아 부은 돈은 3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투자금 1조5122억원에 더해 후순위 대출로 2577억원, 기타 유동성 지원으로 8900억원 등 1조1000억원 이상을 지원한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부코핀은행이 산업은행 싱가포르 지점에서 차입한 4000억원에 대한 지급 보증 등까지 합치면 위험 노출금액이 약 3조1000억원 수준이라는 판단이다. 이는 국민은행 자기자본의 8%에 달한다.
문제는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도 경영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0년 최대 주주가 된 후 434억원 적자를 본 데 이어 2021년엔 2725억원, 2022년엔 8021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불어났다. 지난해엔 2600억원으로 적자 폭을 줄였지만, 4년간 손실만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기준 9.7%였던 고정이하여신(NPL)비율은 올해 상반기 말 11.31%로 늘었다. 2021년 말 10.66%였던 NPL비율을 2022년 6.65%까지 낮췄지만 이후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국민은행도 사정은 있다. 부실은행을 인수한 만큼 경영 정상화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엔 경영 정상화 노력에 따라 성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지난 10월 3억 달러 규모의 선순위 달러표시채권 발행에 성공해 13억5000만 달러의 투자 수요가 모였다.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차세대 전산 시스템도 출시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부코핀은행은 인수 당시 부실은행임을 인지해 긴 호흡으로 경영하고 있으며, 정상화를 위해 부실 채권 대량 매각, 부실 여신 회수를 계속 진행 중"이라며 "이에 따라 2025년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어 2026년부터 그룹 수익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장벽 뚫고 정상화 사례도 있어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시중은행들의 고전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현지 진출에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이 발간한 '은행권 해외진출 규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다른 시중은행 역시 부실 등의 문제를 겪은 바 있다. 신한은행의 신한 인도네시아는 2020년 NPL 비율이 5.77%까지 급증했다. 2022년에도 3.31% 수준의 NPL비율을 기록하며 인도네시아 상업은행의 평균 비율을 초과했다. 우리은행의 우리소다라은행은 올 상반기 순익이 10.5% 감소했다.
물론 인도네시아 시장은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의 규제로 진입 장벽부터가 높은 편이다. 외국 금융사가 현지 은행의 지분을 40% 이상 확보하기 위해선 부실은행을 추가로 인수해야 한다. 인수 후에도 현지 파견 경영진이나 주재원 수에 제한을 두는 등 경영 규제가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부코핀은행을 비롯해 국내은행의 인도네시아 법인들이 불가피한 경영 정상화 과정을 겪고 있다는 항변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반례도 있다. 2019년 인도네시아 현지 아그리스 은행과 미트라니아가 은행을 인수한 뒤 합병해 출범한 IBK기업은행의 IBK 인도네시아는 경영 정상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IBK 인도네시아 출범 당시 NPL비율은 11.68%, 연체율은 24.45%에 이를 만큼 부실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후 꾸준한 정상화 작업을 거쳐 지난해 말 NPL비율은 1.48%까지 하락했다. 연체율도 20%포인트 넘게 낮췄다. 이와 동시에 사업 규모를 키워 2년 만에 흑자 전환 한 뒤 2023년엔 전년 대비 순익이 80% 뛰었다. 이처럼 단기간에 성공적인 정상화를 이룬 사례도 있는 만큼 다른 현지 법인들도 경영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지 은행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다양한 현지 플랫폼 업체와의 제휴 등으로 효율적인 성장과 차별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카카오뱅크와 한화생명 등도 인도네시아에서의 은행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디지털 은행인 슈퍼뱅크에 대한 전략적 지분 투자로 전통적인 법인 형태와 차별화를 꾀했다. 한화생명은 현지 상업은행 노부은행 지분 인수를 위한 금융당국 인허가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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