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기예보 '파란색1' 중징계, 선거보도심의 이대로 괜찮나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 20주년 기념 세미나…"정의 모호한 공정성·형평성 위반 건수 급증, 언론사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역대 최다 중징계를 기록해 '입틀막 심의' 비판이 나온 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 이후 국내 심의제도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심의기구의 심의 신뢰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제재 적용조항의 구체성이나 공정성 심의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경제인협회 컨퍼런스센터에서 한국언론학회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가 공동으로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20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최진호 경상국립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인터넷언론 선거보도 심의결과 분석과 평가'를 발제했고 심석태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 교수가 '인터넷 선거보도의 정의와 범위'를 주제로 발제했다.
지난 22대 총선은 인터넷신문 기준 역대 총선 가운데 가장 많은 심의·의결이 이뤄진 해였다. 위반 건수가 17대 35건에서 22대 333건으로 늘었다. 21대와 비교해서도 69건이 증가했다. 최진호 교수는 “인터넷신문의 수 증가와 비례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며 “공정성·형평성 조항에 대한 위반 건수가 상당히 높아지는 걸 볼 수 있다. 반면 여론조사 보도 기준 위반은 확 꺾이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특히 22대는 공정성·형평성 조항 위반이 전체 85.3%에 이를 정도”라며 “공정성 개념은 학계, 언론계에서도 정확하게 정의내리기 어렵다. 언론사 입장에선 어떤 부분이 어떻게 위반됐는지 기준이 명확해야 납득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의 기구 안에 상이한 세부 기준을 어느 정도 합치된 방향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김천수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는 “공정성의 개념 정의가 되지 않았는데 그걸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생각을 내내 하게 됐다”며 “기준은 있지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일까. 개념에 모두가 동의하지 못하니 심의 방법이 '양적', '기계적' 균형에 맞춰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천수 교수는 “공정하지 않은데 공정한 척 하는 언론이 가장 위험하다”며 “미국처럼 차라리 특정 후보를 (지지) 선언할 수 있게 기간을 주고 선언하지 않은 언론에겐 강한 잣대를 대는 식으로 기준을 달리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앞서 22대 총선 선방위는 지난 4월 일기예보에서 '파란색 1'이 등장하는 그래픽을 사용한 MBC에 선방위 기준 최고 수위 '관계자 징계'를 의결한 바 있다. 이외에도 선방위는 정부 비판 보도를 낸 MBC, CBS 등에 거듭 중징계를 의결해 심의 기구가 정권 옹호를 위해 동원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방송심의위(선방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설치·운영한다.
정낙원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선방위에서 법정제재를 한 일기예보 건은 선거 기사도, 정치 기사도 아니었다. 일기예보였는데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중징계를 받았다”며 “이렇게 되면 선거 기간에 나오는 모든 보도가 심의 대상이 되는 건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은 또 언제로 설정해야 하는 건지 등의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모호한 기준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는 경우도 생긴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게 되면 그 피해는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돌아간다”며 “일단 최소 제재 쪽으로 가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야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고 불필요한 분란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석태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도 “일기예보 '숫자 1' 방송이 적절했냐고 물으면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품질이 아닌 규제 영역으로 가면 (제재)해선 안 되는 영역이었던 것”이라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면 모두 선거방송 심의 대상이다? 저는 그래선 안 된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스 소비의 주요 창구로 떠오른 유튜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도 나왔다. 심석태 교수는 “유튜브를 규제 체제에 넣자는 얘기는 일반인들의 표현의 자유까지 광범위하게 제약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쉽게 결론 내리지 못 한다”며 “이 문제가 가진 위헌성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선 명확한 규제 범위와 기준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유튜브를 포함시키려면 공정 보도 의무를 언론기관, 사업자 대상에만 부여하고 있는 걸 바꿔 행위 규제 위주로 바꾸는 게 필요할 것”이라며 “다만 미국에 본사를 둔 유튜브를 규제한다고 선언했을 때 정교하지 않으면 국제적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 이걸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가 보도에 대한 한국의 규제 시스템이 국제적인 기준에서 볼 때 과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미정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위원은 “빅테크 기업 주도의 디지털 플랫폼은 알고리즘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눈에 띄지 않고도 충분히 나쁜 짓을 많이 할 수 있다”면서 “플랫폼에 어느 정도의 사회적 책임을 부과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유튜브 심의를 논의해야 맞다. 선거 구도로만 좁혀 유튜브 심의를 논하는 건 심의 기구 중심의 근시안적 고민”이라고 말했다.
정미정 위원은 “전반적인 저널리즘의 문제라고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이 심의가 모자라서 생기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 뒤 “이전 시기에 비해 선거 보도가 유권자가 가지고 있는 기대를 많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그 과정에서 심의가 오히려 언론이 보도해야 하는 영역의 자유도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하는 고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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