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in] "그날의 악몽 치유되길" 원폭 피해자 찾은 日 의료진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사실 한국에 오기 전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인인 저를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했는데, 오히려 고마워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행정 상담을 진행하던 일본 나가사키현 원폭피폭지원호과 소속 다니구치 유이치씨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11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저 역시 어머니가 원폭 피해자라서 어렸을 때부터 당시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한국인 역시 일본인과 똑같이 원폭으로 인한 피해가 크기 때문에 의료비 등을 지원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부산진구 대한적십자사 부산지부에서는 일본적십자사 나가사키원폭병원·나가사키대학병원 소속 피폭 전문 의료진과 나가사키현 공무원 등이 부산, 울산, 양산, 김해에 있는 원폭 피해자 227명에 대해 건강상담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2005년 시작된 것으로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된 후 귀국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지원한다.
3년마다 열리며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다가 6년 만에 재개했다.
지정 의료원에서 미리 건강검진을 받은 원폭 피해자들은 현장에서 일본 의료진에게 자세한 건강, 의료비 지원 상담 등을 받은 뒤 간단한 체조를 배웠다.
이곳을 찾은 원폭 피해자들의 평균 나이는 84세.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날의 악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45년 당시 11살이었던 공기연씨는 "등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공습경보가 내려져 7남매, 어머니와 함께 마당에 있던 방공호에 들어갔다. 강제노역으로 끌려왔던 아버지도 당시 방공호 건설 현장에 있어서 몸을 피할 수 있었다"며 "폭탄이 떨어진 뒤 거리에 나왔는데, 모든 세상이 재로 변하고 화상을 입은 이웃이 즉사해 길에 널려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듬해 가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산항을 통해 조선에 들어왔는데, 그때 감나무에 노랗게 익은 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2살 때 히로시마에 살았던 류병문씨는 "원자폭탄이 떨어져 삼촌과 당숙이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께서 시신이라도 찾겠다며 승용차 한 대 값을 주고 빌린 자전거로 온 동네를 한 달 동안 돌아다녔다"며 "원폭 영향으로 몸이 계속 가려웠고 지금은 피부암을 앓고 있어 신체 일부가 내 살이 아닌 것 같이 감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원폭 피해를 겪은 당사자에게만 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들의 자손인 2세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가사키에 살았던 80대 김광자씨는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으로부터 불과 2㎞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유일하게 우리 가족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며 "이층집이 한순간에 폭삭 주저앉았고, 깨진 유리창이 몸 곳곳에 박힌 어머니는 평생 지팡이를 짚다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일본인 의료진들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성의껏 들으며 쾌차를 기원했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우호를 기원하며 직접 적은 종이학과 함께 엽서를 선물하기도 했다.
방사선영향연구소 의사 이마이즈미 미사씨는 "한국인과 일본인 원폭 피해자 모두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며 "질병을 앓지 않는 피해자조차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원폭 영향이 아닌지 우려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 피해자들의 불편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가사키시 원폭피해대책부에서 보건사로 근무하는 곤도 나오코씨는 "원폭 피해자들이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고생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다"며 "무릎, 허리, 어깨를 많이 아파하는데 오늘 배운 체조로 집에서도 잘 관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상은 대한적십자사 원폭피해자·사할린동포지원본부 과장은 "원폭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기억 속에 잊히는 것을 슬퍼한다"며 "멀리서도 찾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누군가는 꼭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psj1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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