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건축가 김원의 세상 이야기(16) 백두산 기행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20년 전 평양 방문기를 지난번 칼럼에 이어 연재한다. 이번에는 방문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던 백두산 기행을 전한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삼지연공항까지는 480㎞, 4발의 낡은 프로펠러기로도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삼지연이 해발 1천800m라니까 백두 정상 2천700m까지는
800m가 남았는데 2차선으로 난 길을 한 시간 20분 달려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꼭대기까지 닿는다.
아직 잔설이 남아 있지만 길은 녹아 있어서 이렇게 쉽게 올라온다. 눈이 쌓였을 때 쓴다는 '잉크라'(아마도 삭도를 말하는 incline인 듯)를 군인들이 수리하고 있다. 차에서 내리면 남은 거리는 장군봉 정상까지 200∼300m뿐이다. 또는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천지 연못 물가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
이곳에 이렇게 길이 잘 닦여 있어 쉽게 백두산을 오를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초겨울 날씨쯤 되리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맑은 햇볕이 뜨거워서 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 이곳 사람들이 모두 이 쾌청한 날씨를 가리켜 우리의 큰 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떤 사람은 구름이 잔뜩 끼어서 천지 구경을 못 하고 삼지연까지 내려갔다가 너무 억울해서 다시 올라왔다고 한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도 못 보고 다시 내려갔다가 또 올라오기를 네 번이나 반복하고도 결국 며칠 만에 그냥 돌아간 일도 있었단다.
그러니 정말로 우리는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물론 이 높은 산정의 일기란 변화무쌍한 것을 나도 알만한 경험이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참을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뭐라고 도무지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감개가 복받쳐 올라왔다. 삼지연을 떠나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지나온 침엽수의 원시림, 그리고 시야가 확 트이면서 펼쳐지던 고산지대 특유의 한 방향으로만 자란 향나무들, 그다음에 다시 시작되는 야생화의 끝없는 벌판, 그 넓은 꽃밭이 끝나자 거의 달 표면처럼 삭막한 화산 암석과 모래의 능선이 펼쳐졌다.
이것이 한 편의 영화처럼, 하나의 사진첩처럼, 광각 카메라에 잡힌 파노라마처럼, 눈을 통하여 뇌리에, 그리고 '심장에' 와 닿는 듯하다.
일 년 내내 흰 눈에 덮여 있던 정상의 눈이 녹은 지는 얼마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곳곳에 녹다 남은 눈덩이가 여러 곳에 산을 이루고 있다. 천지의 물도 바로 사흘 전까지도 얼어붙었다가 이제야 녹았다는데 그래서인지 호수 위에는 얼음덩이가 아직 떠다니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지나온 야생화의 벌판은 방문 당시 6월 중순에 바야흐로 봄꽃을 피우는 계절을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곧 또 8월이면 추위가 닥쳐와 등산이 금지된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사시장철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백두산의 이름을 실감케 한다.
우리 아버지가 이곳에 올라와 감격한 나머지 열 살, 여섯 살의 두 딸에게 이 광경을 그려 그림엽서로 보냈다던 시절이 지금부터 80년 전이다. 그리고 그 이후 그 긴긴 세월 동안, 이 영험한 산과 호수의 광경은 남쪽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막혀 있었다. 내가 삼십여 년 전에 입수해 간직해온 백두산 천지의 큰 흑백사진 액자에서 눈으로만 익혀온 이 엄청난 파노라마는 그러나 지금 현실로, 꿈이 아닌 생시의 모습으로 내 발아래 펼쳐져 있다. 아마도 그 사진들은 인화된 기술로 보아 적어도 80 내지 100년 전쯤에 찍혔을 터나 이 자연의 위대한 조화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
지금 이곳은 대체로 군인이 장악하고 있어 일반 민간의 출입은 통제된 듯하다. 하기야 이곳이 중국과 국경이 닿은 곳이니 그들은 국경 수비를 맡아 있는 셈이고 민간인이 함부로 국경 근처를 오고 갈 수도 없을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한 예쁘게 생긴 여군 안내원이 핸드 마이크를 어깨에 메고 나와 장황하게 설명한다. 이 사람은 특히 우리가 방문한 날이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4년째라는 점을 크게 강조하며 조국 통일의 열망을 반복해 이야기한다.
사실 햇볕정책과 6·15를 깎아내리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내가 이곳에 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
산 높이와 호수 둘레와 깊이와 화산의 생성과 그리고 더 나아가 호수의 어류에 이르기까지, 10년 전에 100마리를 방류한 산천어의 치어(稚魚)가 지금은 75㎝로 자라 위대한 지도자 동지에게 선물한 이야기까지 강의를 잘 듣는다.
그러고 보니 가장 눈에 뜨이는 암벽 위에 '민족혁명의 성산, 김정일'이라고 크게 새겨놓은 글씨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설명에 따르면 화산 분출은 쥐라기(약 6억년 전)에 시작, 신생대 3, 4기까지 계속돼 약 5천350㎢의 드넓은 용암지대가 형성되었고, 약 200만 년 전부터 화산 활동이 약화하면서 지금의 산세가 이뤄졌다.
최근에는 1597년, 1668년, 1702년에 작은 분출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도 정상 주변 50㎞ 내외에 진도 2∼3의 약진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드넓은 용암지대는 화산재, 화산탄, 화산모래로 형성돼있고, 연중 230일 정도는 겨울 날씨가 지속되므로 상층부에는 백리향, 시로미(제주 방언으로 '시룽게'일 것이다), 바위구절초, 만병초, 들쭉나무(유명한 백두산 들쭉술의 재료다) 등 낮게 깔리는 한대성 식물만 자란다.
더 내려오면 백두산자작나무, 가문비나무, 잎갈나무 등 화산 피해를 보기 전부터 있던 나무들이 정일봉과 일부 지역에 분포해 있다.
천지는 말 그대로 하늘의 연못이다. 호수 면적이 9천200㎢, 최대 수심은 384m라고 한다. 저절로 신성하다고 느끼게 하는 검푸른 물이 달의 표면처럼 거칠고 황량한 바위산으로 병풍 쳐져 있다.
한라산의 백록담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크기도 그렇고, 색깔도 그렇고, 우선 숨이 차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없는 고산 증세가 특별한 느낌을 준다. 대체 2천700m 고지의 거대한 호수는 빗물이 고여서 된 것 같지 않고, 어떤 거대한 힘이 지하수를 밀어 올려 만들어 놓은 게 아닐까?
많은 사람은 바로 이런 광경을 일컬어 '태고의 신비'라고 하더라. 과연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성산이라고 경배해온 이유가 있고도 남는다.
우리 한반도는 여기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사람의 등뼈처럼 축을 이루어 그 줄기가 남쪽으로, 서쪽으로 삼천리를 뻗어 내린다. 여기서 두만강과 압록강 두 강이 발원하여 조선·중국(朝中) 국경을 이룬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함경북도를 량강도(兩江道)라고 바꾸어 부르고 있다.
중국 쪽으로는 장백폭포가 돼 얼다오바이강(二道白河)에 떨어져 쑹화강(松花江)에 이른다.
1712년(숙종 38년)에 청나라와 합의된 정계비가 서 있다.
안내원은 이 곳 대부분이 중국 땅이었던 것을 북측에서 모두 수복하였다고 말한다. 우리는 정상에 모두 모여 6·15 선언의 4주년을 기념하여 통일을 기원하는 묵념을 올리고 만세를 불렀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아주 먼 곳에서 천둥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비바람이 몰려올는지도 모른다고 안내원 동무들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하산을 재촉한다. 그래 어쩔 수 없이 우리 일행은 이 성스러운 산정과 호수에 이별을 고하고 차에 올랐다.
내가 언제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이 이곳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까? 그런 상념들에 생각이 미치자 조금 슬픈 기분에 빠졌다. 그래서인지 일행은 모두 조용해진 듯 가라앉은 분위기이다.
발밑에 깔린 화산암의 조약돌을 각각 다른 크기, 다른 모양으로 골라 세 개를 집어서 카메라 백에 넣고, 기념으로 남쪽에 가져갈 생각을 한 건 매우 잘한 일이다. 돌멩이를 줍다가 옆에 떨어진 담배꽁초와 빈 커피 깡통들을 발견하고 청소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잘한 일이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안내원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세계축구 경기(2002 한일 월드컵) 때 보니 그 많은 군중이 모두 청소를 참 잘하더군요."
내려오는 길은 아까와는 다른 도로가 뚫려 있다. 두 시간 전에 감격하며 지났던 벌판과 풍경이 비슷한 야생화의 꽃밭에 차를 세우고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뚜껑에 고려호텔이라고 쓰인 것이 우리로 치면 신라호텔 도시락 정도 되는 고급 음식이다.
우리는 이름 모를 산꽃들을 깔고 앉은 채 맛있는 점심을 황홀경 속에서 즐겼다. 흰색 가까운 노랑꽃들은 만병초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가장 흔하고 예쁘다. 일명 '들쭉'이라 하여 북한 관광 중 가장 인기 있는 '백두산 들쭉술'의 원료이기도 하다.
붉은 꽃은 산철쭉이라는데 믿어지지 않는다. 공부를 해야 할 대목이다. 오히려 한라산 1천500m 이상 고지에서 보는 '시룽게'(북쪽 사람들이 '시로미'라고 하는 이것이 제주방언 '시룽게'가 아닐까)를 닮은 가시덤불이 나에게는 더 익숙하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가오리연을 날렸다. 세찬 산바람이 그 연들을 하늘 높이 띄워 올렸다. 맑은 하늘 햇빛에 눈이 부셨지만, 또다시 먼 천둥소리가 들리며 동쪽 능선 너머로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다시 차에 올라 하산을 시작하자마자 빗방울이 흩뿌리기 시작하고 이내 이것이 우박으로 변해 강풍과 천둥·번개가 함께 차창을 두들겨 댄다. 길가에는 금세 우박 덩어리가 수북이 쌓인다. 연중 강풍일 수가 270일이고 최대풍속 초당 40m의 강풍이 보통이며 용권(龍捲)이라는 돌개바람도 자주 있다니 이 정도 우박은 놀랄 일이 못 된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는 백두폭포, 사기문폭포, 형제폭포, 밀영폭포 등 여러 개의 폭포가 눈에 뜨인다. 하나하나가 모두 엄청난 관광자원들이다.
빗속에 소위 '백두산 밀영'에 도착했다. 밀영(密營)이란 '비밀의 병영'이란 뜻일 텐데 김일성이 독립군을 조직해 귀국한 후 비밀리에 군대를 훈련하고 조직을 정비, 전투에 대비한 기간 이곳에 숨어 지냈단다. 특히 그 기간에 아내 김정숙이 김정일을 낳았다고 해, 이들이 성지로 생각하는 곳이다.
너무 추운 곳에 식량도 의복도 부족한 때이어서 군인들이 그들의 속옷에서 한 톨씩 솜을 뽑아 모아 아기의 포대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며, 그 '포대기'는 이곳에 전시돼있다.
아름다운 풍광에도 불구하고 밀영 뒤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에 거대한 붉은 글씨로 정일봉(正一峰)이라 새겨 놓은 게 눈에 거슬린다.
그러고는 다시 삼지연으로 돌아왔다. 삼지연에는 공항만 있는 게 아니고 실은 또 하나의 '공화국' 성지가 만들어져 있다. 이 1천800m 고지대에 세 개의 호수가 연결된 아름다운 경관이다.
김일성은 밀영에서 훈련된 부대를 이끌고 이곳 삼지연에 와서 그 유명한 '보천보 전투'를 준비했고 대승을 거두었다는데 그 때문에 독립운동의 성지로 개발을 한 것이다. 아마도 평양의 김일성 동상 다음으로 크다는 거대한 동상을 세우고 주변에 군인들과 인민들의 군상을 조각하여 둘러 세웠다.
조각은 'Social Realism'의 전형이나, 기본기가 탁월한 솜씨로, 작가는 김일성 생전에 크게 칭찬받고 무슨 인민공훈작가인가로 추대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삼지연에 공항을 만든 것은 '주석의 성지'를 순례하고 백두산 등정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이중의 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삼지연 근처 숲속에 삼각형의 뾰족지붕을 한 별장식 건물들이 수십 또는 수백 동 지어지고 있다. 군인 막사도 아닌데 군인들이 일을 하고 있다.
궁금해서 안내원에게 물으니 "글쎄요. 잘 모르갔는데요, 아마 농민들을 어디에서 이주시키려나요?"라고만 했으니 그건 거짓말 같았다.
그건 아마도 내 생각에 삼지연과 백두산 관광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때 대비한 관광객 숙소용 방갈로 건설사업인 것 같다.
하기야 이쯤 거리에서 잠을 자야 일찍 떠나면 백두산 정상의 일출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관광을 할 수 있는 날이 가까운 장래에 다시 오기를 마음속 깊이 바랄 뿐이다.
만일 북한 사람이 우리의 이번 여행을 앞으로 계획하는 대규모 남한 관광단 유치에 대비한 연습 게임으로 시도하고 반응을 살피려 했다면 그 시도는 성공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깊이 감동하였고, 그들은 나름대로 남측 주요 인사들에게 자기들의 성지들을 보여주어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고 상부에 보고해도 좋을 만했다.
안내원 동지들이 워낙 열심히 설명해 주는 바람에 매번 설명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의례적으로 손뼉을 쳤지만, 그들 눈에는 감격의 박수로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어쨌든 중국을 통해 어렵게 백두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남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편안한 당일치기 백두산행은 비용과 관계없이 크게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낡은 구소련제 일류신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이지만 정기편이 아닌 특별기가 우리만을 위해 이 공항 활주로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미상불 고마운 일이다.
*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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