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국서 민주는 고소득자, 공화는 저소득층이 찍는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소득이 적은 유권자가 공화당에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지지기반이 이탈하면서 민주당이 중대한 정체성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현지시간) ‘가난한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모여들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심층 분석한 내용을 보도했다.
“민주당, 더는 저소득층 아닌 고소득층의 정당”
FT에 따르면 2020년 대선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 소득수준이 연간 5만달러(약 7000만원) 이하인 가구와 저소득층 대부분은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을 뽑았다. 반대로 소득수준이 연간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 이상인 유권자는 과반이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했다.
FT가 분석한 표를 보면 소득 하위 3분의 1 구간 유권자 사이에선 2010년 대선을 기점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줄어들다가 양당의 편차가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반면 소득 상위 3분의1 구간 유권자 사이에선 민주당이 20%포인트 넘게 밀리다가 같은 시기를 기점으로 민주당이 더 많은 지지를 얻는 추세가 나타났다.
FT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이 소득 상위 3분의 1 구간 유권자에게서 소득이 더 적은 구간의 유권자에게서 보다 더 많은 표를 얻은 것”이라며 “민주당은 이제 저소득층이 아닌 고소득층 유권자의 당인 듯하다”고 평가했다.
저학력·라틴계 ‘트럼프 쏠림’ 뚜렷…향후 선거에도 영향
10개 주를 대상으로 한 NBC방송 출구조사에선 대학교 학위가 없는 유권자 중 거의 3분의 2가 트럼프 당선인을 찍은 것으로 집계됐다. FT는 “소득이 적고 교육을 덜 받은 유권자들은 이제 공화당이 자신을 더 잘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12년 전과 비교하면 반대”라고 설명했다.
FT는 라틴계와 비백인 유권자 역시 트럼프 당선인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예컨대 핵심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의 필라델피아처럼 진보 색채가 뚜렷한 지역에서도 히스패닉 밀집 지역은 트럼프 당선인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히스패닉 인구가 96% 이상을 차지하는 멕시코와의 국경 지역 텍사스주 스타 카운티에선 트럼프 당선인에 대해 큰 지지를 보였다.
트럼프 당선인은 히스패닉계의 지지를 업고 1988년 이후 플로리다의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선거구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FT는 히스패닉계 유권자의 경우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집단인 만큼 앞으로 선거에 꾸준히 영향을 주는 요인일 수 있다고 짚었다.
“엘리트 정당 됐다” 정체성 위기 직면한 민주당
이러한 변화는 민주당에 전면적 정체성 위기를 불러왔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폴리티코는 당직자 등 민주당 관계자 16명을 인터뷰한 결과 당내 중도파와 진보파 모두에게서 당 정체성의 핵심이었던 노동자 계층과의 소통이 중단됐다는 공통의 진단을 얻었다고 전했다. 민주당 진보코커스 의장인 프라밀라 자야팔 하원의원은 “민주당은 재건돼야 한다”며 “우리가 노동자 계층을 버렸든, 그들이 우리를 버렸든 복합적 결과든 우리는 엘리트 정당이 됐다”고 말했다.
‘진보의 아이콘’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 역시 앞서 “노동자들을 버린 민주당이 노동자들에게 버림받은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민주당 내에선 트럼프 당선인이 노동자 계층의 좌절감을 자연스럽게 자극한 반면, 민주당은 이들이 폄하받는다고 느끼게 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폴리티코는 대통령 재임 시절 탄핵 위기, 의회 난입 사태, 중범죄 기소 등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을 비교적 쉽게 탈환하면서 민주당 내에선 이제 당 이미지가 훼손된 정도가 아니라 부서져 버렸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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