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배승열 기자] 한국농구의 뿌리가 되는 중·고교 아마농구를 찾아가는 코너다. 2024년 여덟 번째로 찾은 학교는 2025년이면 개교 120주년이 되는 명문사학 양정고다. 1905년 개교한 양정고는 1931년 농구부를 창단했다. 1900년대 중반까지 명성을 날린 양정고 농구부는 한동안 침체에 빠졌으나, 최근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11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蒙以養正 養心正己 몽이양정 양심정기, 양정고의 시작 을사조약이 있던 해, 고종 42년 1905년 2월 11일 춘정 엄주익이 양정의숙을 설립하고 초대 숙장으로 취임했다. 4월 정식 설립 인가를 받아 개교했고, 교명은 창학 이념 蒙以養正, 養心正己(몽이양정 양심정기)에서 따왔다. 창학 이념은 ‘깨우쳐서 바름을 기르고 심신을 길러 자신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의 영향을 받은 양정고는 1930년 럭비부가 창단했다. 럭비부는 창단 이후 지금까지 배재고와 함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농구부는 럭비부보다 1년 늦은 1931년, 9명의 선수로 창단됐다. 농구부는 1934년 조선농구 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강호로 자리 잡았고 1960년대를 시작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 침체에 빠졌고 이후 지금까지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양정고 농구부는 최근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울 종로구 도렴동, 중구 만리동을 거친 양정고 교사는 1988년 지금의 위치인 목동으로 옮겼다. 양정고 체육관은 별도의 이름이 없었으나 2015년, 창학 110주년을 기해 손기정기념체육관으로 명명했다. 이곳에서 농구부는 훈련하고 연습경기를 하며 깨우치고 심신을 기르며 농구부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비(非)모교 출신 지도자, 젊은 지도자의 투지와 패기 현재 양정고 농구부는 김창모 코치가 이끌고 있다. 김창모 코치는 지난 2022년 정식 코치로 부임했다. 부산 성남초-대연중-중앙고를 나와 연세대를 졸업 후 2013년 원주 동부(현 DB)에 입단했다. 이후 2020년 DB에서 KCC로 이적 후 2021년 은퇴했다.
김창모 코치는 “프로 은퇴 후 제안을 받고 아마농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양정고 A코치로 오게 됐다. 농구를 하면서 지도자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은퇴 후 다양한 기로 앞에 있었는데, 해오던 농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1991년생 김창모 코치는 현재 아마 농구에서 젊은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가장 어린 고교 지도자는 배재고 김준성(1992년생) 코치다. 하지만 열정과 패기로 어린 나이와 짧은 경력을 극복하며 지도자 생활을 배워 나가고 있다.
김 코치는 “A코치로 있을 때는 선수들 훈련을 도와주고 알려주는 것에 집중하면 됐다. 하지만 정식 코치가 된 후에는 신경써야할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팀 성적은 물론이고 선수 수급과 고등학교 3학년 선수의 대학 진학까지, A코치 때는 걱정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정식 코치를 시작하면서 많아졌다.
김창모 코치는 “한 울타리에 있는, 양정중에서 연계로 선수를 잘 보내주고 있다. 양정중 진상원 코치님 덕분에 선수 수급에 있어서 걱정과 고민을 덜 수 있었다”며 “3학년 선수들의 대학 진학, 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팀 성적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경험이 없이 시작하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경기 중 임기응변도 부족했다.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여러 상황을 겪고 많은 생각을 하니 지금은 조금 여유가 생겼다. 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조금씩 자신의 색깔을 어린 선수들에게 입힌 김창모 코치의 양정고는 그렇게 변화가 시작됐다. 상대 팀들에게 까다로운, 상대하기 쉽지 않은 팀으로 거듭났다. 2024년 상주에서 열린 제54회 추계 연맹전에서는 1, 2학년 선수 위주로 참가, 3위에 입상하는 힘을 보여줬다. 김창모 코치는 “현장에서 다른 지도자 선배님들을 가까이서 보면, 많은 노하우뿐 아니라 한국농구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처음 보는 것도 있고, 대부분의 선배님들이 알게 모르게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느꼈다. 여전히 한국농구의 미래는 경쟁력이 있다”며 “내가 원하는 농구도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지만,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우리 팀이 다른 팀과 비교했을 때 기량 차이가 있을지라도 상대가 우리를 불편하게, 편하지 않게 생각하는 상황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추계 연맹전 당시 임시 주장이었던 2학년 박지원 또한 “코치님은 농구에 대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많이 강조한다. 팀이 지더라도 상대에게 져서는 안된다고 전투적으로, 강하게, 남자답게 코트 위에서 경기하라고 알려 주신다”고 했다. 김창모 코치의 양정고 색깔이 물들어 가고 있다.
김 코치는 “사실 내 경험이다. 프로에서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한 경험에서 나온 것을 말해주고 조언해 주고 있다.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쁜 농구보다 전투적으로 싸우고 깨지고 하는 터프한 농구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필리핀, 일본처럼 코트 안에서 공격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오렌지군단, 주황색 유니폼, 양정고의 브랜드 120년 전통과 역사를 앞둔 명문사학 양정고. 2011년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했다. 총동문회는 물론이고 양정고 농구 OB에서도 꾸준히 농구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후원회의 활발한 활동을 자랑한다.
김창모 코치는 “연습, 전지훈련, 대회 등 1년에 농구부가 움직이는 모든 것이 돈이다. 밥 한 끼도 신발도 공짜가 아닌데, 물질적인 부분에서 OB분들이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다. 최근 양정중, 고등학교 농구부에 유니폼, 운동복, 양말(1000켤레)을 지원해주셨다. 모교 출신 지도자가 아님에도 총동문회와 농구 OB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든든한 지원 속에 ‘오렌지군단’ 양정고는 2025년, 120주년을 맞는 해 농구부의 부활이 기대된다.
이어 김창모 코치는 양정고의 브랜드를 말했다. 그는 “사실 과거와 지금 어린 선수들의 정서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이런 정서를 이해하고 바꾸기에 앞서 운동할 시간이 과거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 수업도 중요하지만, 운동이 메인인 학생 선수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형 사립고로 내신의 불편함도 있다. 농구를 시작하고 대학에 가는 것이 끝은 아니지만, 최근 양정고 출신 선수들이 상위 대학에 진학하면서 외부에서 연락도 받는다. 오고 싶어 하는 선수들이 하나, 둘 생기는 상황에서 양정고 농구를 더욱 브랜드화 시키고 싶다. 양정고에서 농구를 해도 충분히 경쟁력 있고 나아갈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고 싶다”고 했다. 끝으로 개인적인 목표도 밝혔다.
김 코치는 “어떤 목표를 길게 가지고 있지만, 첫 번째 목표는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충실하려고 한다. 또 짧은 시간이 될 수도 있고 10년, 20년 긴 시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승 팀 지도자의 타이틀을 얻고 싶다”고 전했다. 젊은 지도자의 꿈이 이뤄질지 다가올 양정고의 미래가 기대된다.
양정고 주장 구승채 “학교뿐 아니라 농구부 역사도 오랜 전통이 있다. 동문뿐 아니라 OB 선배님들도 많이 챙겨주신다. 프로에도 유명한 선배가 많은 학교다. 올해 대회 성적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는데, 마지막 대회에서 후배들이 4강에 올라서 뿌듯했다. 후배들에게 좋은 주장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는데,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1년 동안 너무 잘해주고 따라줘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