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자꾸 박찬호를 '오리엔탈 특급'이래? [이상희의 메이저리그 피플]

이상희 기자 2024. 11. 1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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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일이다.

신 박사의 선한 영향을 받은 기자 또한 '오리엔탈'이란 표현이 눈에 들어오면 나름 이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개인적으로 신 박사를 존경했던 기자는 해당기업에 이메일을 보내 신 박사의 의정활동을 소개했고, 해당제품의 영문표기인 '오리엔탈'을 '아시안'으로 대체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고인이 된 신 박사의 귀한 노력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박찬호를 더 이상 '오리엔탈 특급'이라고 표현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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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시절의 박찬호)

(MHN스포츠 애리조나(美) 이상희 기자) 오래 전의 일이다. 기자 초년생으로 경찰청 출입기자로 지낼 당시에 사적인 자리에서 신호범 박사를 만난 일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신 박사는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전쟁고아였다. 미군부대에서 잡일을 하던 그는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었고, 훗날 미 대학교수는 물론 하원과 상원의원을 모두 경험한 몇 안되는 정치인으로 변신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신 박사는 오래전 기자와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기자, 왜 자꾸 한국기자들이 박찬호 투수를 '오리엔탈 특급'이라고 표현하는 걸까요?"라며 아쉬움을 털어 놓은 적이 있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는 1997년부터 당시 소속팀이었던 LA 다저스의 실제적인 '에이스' 역할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해 14승을 거둔 박찬호는 이후 '15-13-18-15승'을 거두며 5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뒀다. 그의 전성기였다. 박찬호를 가리켜 '오리엔탈 특급'이란 표현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주로 한국언론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고인이 된 신호범 전 워싱턴주 상원의원)

당시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이었던 신 박사는 미국 내에서 '오리엔탈'이란 단어를 공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의정활동을 하고 있었다. '오리엔탈'의 단순한 사전적 의미는 '동양의', '동양인의' 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실상은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현지에서 '오리엔탈'이 갖는 실질적인 의미는 한국인을 비롯 아시아인을 싸잡아 비하 하는 뜻으로 쓰인다. 쉽게 이야기해 흑인들을 가리켜 'Nxxxx'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오리엔탈'이란 표현을 가지고 고군분투했던 신 박사의 노력은 결과를 맺었다. 맨 처음 워싱턴주는 신 박사의 생각에 공감해 교육기관을 포함 모든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공문서 등에 '오리엔탈'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정했다. 대신 아시아(Asia) 또는 아시아인(Asian) 이란 표현을 사용하도록 했다.

(박찬호는 다저스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텍사스로 이적했다)

신 박사의 수 년간에 걸친 노력은 현재 미국 50개 주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교육기관에서 '오리엔탈이란 표현은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신 박사의 선한 영향을 받은 기자 또한 '오리엔탈'이란 표현이 눈에 들어오면 나름 이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K-드라마, K-팝 등으로 표현되는 한류의 영향으로 지금은 미국 내에서 다양한 한국음식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인기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대형 소매점에서 한국라면은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해졌다.

하지만 불과 십 수년 전만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가장 인기가 좋았던 대다수 한국 즉석라면에 적혀 있던 영어표현은 '오리엔탈 스타일 인스턴트 누들(Oriental Style Instant Noodle)'이었다. '동양식 즉석면'이란 뜻으로 사용했을 듯 싶다.

개인적으로 신 박사를 존경했던 기자는 해당기업에 이메일을 보내 신 박사의 의정활동을 소개했고, 해당제품의 영문표기인 '오리엔탈'을 '아시안'으로 대체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해당기업은 흔쾌히 '아시안 스타일…(Asian Style Instant Noodle)'로 영문표기를 수정했다. 최근에는 한층 더 발전해 '코리안 스타일'로 변경했다.

(라면을 만드는 한국 대기업에서 기자의 제안을 흔쾌히 승락했다)

지금도 메이저리그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미국 내 출장을 다니다 보면 이따금 한국식당이나 식료품점 간판에 '오리엔탈'이란 영문표기가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동시에 살아 생전 신 박사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환환 미소도 함께 떠오른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게 된다,

"신 박사님, 또 영업하러 갑니다. '오리엔탈' 대신 '아시안'으로 표기를 바꿔달라고 제안해 보겠습니다~"

고인이 된 신 박사의 귀한 노력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박찬호를 더 이상 '오리엔탈 특급'이라고 표현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진=MHN스포츠 DB, 다저스 구단 홍보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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