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등급 상승했지만 '사고 반복 중', 몸집 커진 HDC현산의 이면
3년 전 철거 현장 붕괴 사고
영업정지 대신 과징금으로 대체
ESG 평가 개선된 건 사실이지만
최근 2년 사망 사고 연이어 터져
모두 공사비 50억원 이상 현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되는 대상
“손해 있더라도 약속 지키겠다”
정몽규 HDC 회장 약속 지킬까
2021년과 2022년 잇따라 대형사고에 휘말린 HDC현대산업개발. 업계에선 HDC현산의 수주액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고 이후 수주액도, 매출도 증가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영업정지를 피하고, ESG 경영을 펼치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결과다. 그렇다면 HDC현산은 정말 달라졌을까. 아니다. HDC현산의 현장에선 매년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발표한 올 3분기 잠정 성적표에선 2년 전 터졌던 대형 사고의 여파를 찾아보기 어렵다. 영업이익이 줄긴 했지만 매출은 계속해서 증가했기 때문이다. 3분기 실적을 요약해보자. 3분기 잠정 매출(이하 연결 기준)은 1조886억원으로 전년(1조332억원) 대비 5.3% 늘었다.
2021년 6월 광주광역시 학동 철거현장 붕괴, 2022년 1월 광주광역시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등 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수주액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답을 하나씩 찾아보자.
■ 몸집 커진 이유❶ 영업정지 사실상 면죄부 = 실제로 HDC현산은 두 사고 후에도 도시정비사업을 무리 없이 수주했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신아파트 주택재건축(3438억원ㆍ2022년), 노원구 상계1구역 재건축(2929억원ㆍ2022년), 안양시 안양관양현대 재건축(2174억원ㆍ2022년)을 수주한 게 대표적이다. HDC현산으로선 서울ㆍ경기도 일대에서 재건축 사업을 연달아 수주한 셈인데, 이는 '영업정지 처분'을 피한 덕분에 가능했다.
먼저 2021년 6월 학동 철거현장 붕괴 건부터 보자. 서울시는 당시 총 16개월의 영업정지처분을 내렸다. 부실시공을 이유로 영업정지 8개월,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으로 영업정지 8개월이었다.
하지만 전자는 HDC현산의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유야무야됐다. 후자는 '시공 관련 문제가 아니라면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80조 1항)을 근거로 4억원의 과징금(하도급 금액의 8%)을 내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렇다면 2022년 1월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건은 어떻게 됐을까. 이 사건은 아직 형사재판이 끝나지 않았다. 올해 하반기께 1심 판결이 나오면 서울시가 이를 근거로 처분을 내릴 순 있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몸집 커진 이유❷ 긍정적 배경들 = 이런 상황에서 HDC현산은 역설적으로 몸집을 키우는 데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만한 '배경'을 만들어냈다. ESG 평가에서 매년 나아진 성적표를 받으면서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HDC현산의 ESG 종합등급은 2022년 C등급, 2023년 B+등급, 2024년 A등급으로 상향조정됐다. 특히, 올해엔 환경(Envi 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 nce) 부문에서 각각 A, A+, A등급을 받으면서 2년 만에 종합 등급이 C등급에서 A등급으로 개선됐다.
비영리사단법인인 한국ESG기준원은 모범규준을 통해 기업의 ESG 등급을 산정한다. 사회 분야에서는 운영과 성과를 판단할 땐 크게 6가지 분야로 나눈다. 인권, 노동, 공정운영관행, 지속가능한 소비, 정보보호, 지역사회 참여 및 개발이다. 이중 올해 평가에서 HDC현산이 좋은 점수를 받은 항목은 인권, 공정운영 관행, 지역사회 참여, 노동이다. 특히 노동 분야에서는 안전관리 IT 플랫폼을 고도화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HDC현산 관계자는 "협력회사 행동규범을 제정해 공급망 지속가능성을 강화했고 임직원ㆍ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인권영향평가 및 인권보호정책 수립해 인권경영체계를 구축했다"며 "지역사회와 상생하기 위해 사회공헌활동을 지속해서 확대함과 동시에 안전관리 IT 플랫폼을 고도화해 안전한 사업장 구축을 위한 사고 예방 활동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사고에 따른 영업정지는 피했지만, ESG 시스템을 탄탄하게 구축해 '안전관리'에 힘을 쏟은 게 안정적인 매출 증가의 배경이 됐다는 거다.
■ 몸집 커진 이유❸ 이면의 이야기 = 그런데 여기엔 불편한 이면이 숨어 있다. ESG 등급이 상향조정되는 와중에도 HDC현산의 현장에선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ESG등급이 C에서 B+로 오른 2023년 10월엔 경북 경산에서 건물 외벽에 방수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ESG 등급이 A등급으로 상향된 올해 2월에도 경기도 평택 건설 현장에서 자재가 노동자를 덮치면서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치는 사고가 터졌다. 모두 공사비 50억원 이상의 현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HDC현산 관계자는 "사고 이후 안전 관리 대책을 보강하고 재발 방지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HDC현산은 지난 2월 사고 이후 안전관리대책을 보강했다. 대표적인 건 HDC SAFETY-I ACADEMY 세이프티 아카데미 교육이다. 이는 안전보건 시스템ㆍ재해 예방을 위한 전문화 과정인데, 대상은 안전관리자를 포함한 경영진, 현장 소장, 관리감독자, 협력회사 대표ㆍ안전 관계자들이다.
안전ㆍ보건 스마트 통합플랫폼 I-SAFETY 2.0의 활용폭을 넓힌 것도 HDC현산이 추진한 안전관리대책 중 하나다. I-SAFETY는 위험성 평가, 작업계획서, 사전작업허가서, 안전교육 등 시스템 업무를 위한 전산화 프로그램이다. 2.0 버전엔 중대재해처벌과 관련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이 HDC현산의 구멍 뚫린 안전 시스템을 얼마나 메워줄 수 있을진 알 수 없다. 정몽규 HDC 회장은 2022년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 당시 이런 말을 남겼다. "안전에 신뢰가 없어진다면 회사에 손해가 있더라도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겠다." 정 회장의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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