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먹는 하마’가 발명된 미래…인간은 왜 더 불행해졌지?

한겨레 2024. 11. 1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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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42) ‘기후변화 이후의 삶’ 1
영화 ‘에브리띵 윌 체인지’의 한 장면. 플레어 필름(Flare Film) 제공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 위험을 평가하는 최고의 과학자 조직 ‘기후변화에 관한정부간 패널’(IPCC)은 구체적인 삶의 세계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시뮬레이션한 1.5도, 2도, 3도 등 시나리오 세계의 보이지 않는 지하에는 꿈틀거리는 여러 주체의 욕망과 소망 그리고 우연의 법칙이 작동합니다. 부자 나라와 거대 기업의 이윤 추구, 가난한 나라와 사회적 약자의 저항 그리고 비인간 동물의 적응과 행동을 계산해 넣지 않은 거죠.

2020년대는 가장 결정적인 기간이었습니다. 그때의 생각과 운동과 정치와 외교와 결정이 평행 세계의 분기점이 되었으니까요. 행복과 연대, 함께 헤쳐나감 혹은 욕심과 무시, 양극화된 삶의 평행세계들이 분기된 갈림길이었습니다.

지금은 2100년 가을입니다.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진즉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왓슨 요원의 손주인 왓슨 4세는 무한하게 분화한 평행 세계 중 가운데 두 개의 세계에 살았습니다. 먼저 2100년에 사는 왓슨 4세가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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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 1.5도 오른 미래

나는 왓슨 4세입니다. 인류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기후에서 살고 있죠.

오늘은 동네 주민센터에 갔습니다. 주민센터는 지상 5층의 거대한 쇼핑몰입니다. 아니, 쇼핑몰에 조그마한 주민센터가 붙어 있다고 해야 맞겠군요. 그리고 그 쇼핑몰에는 하마처럼 큰, 5층짜리 선풍기가 달려 있습니다.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저장하는 기계입니다. 바로 ‘탄소 먹는 하마’입니다. 100년 전에 인류 멸종을 피해 화성 이주단을 비밀리에 보내려다 실패한 일론 마스크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이 탄소 먹는 하마의 상용화에 쏟아부었습니다. 각국으로부터 기후 기술 개발 지원금을 받은 것도 한몫했지요.

우리나라의 모든 주민센터는 대형 쇼핑몰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탄소 먹는 하마가 달려있습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 모든 나라도 마찬가지고요.

오늘은 105번째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105)가 개막하는 날입니다. 쇼핑몰 광장에 들어서자, 대형 LED 화면에서 일론 마스크 4세가 나와 연설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탄소중립을 이뤘습니다. 동네마다 설치된 탄소 먹는 하마, 지구 궤도에서 태양복사에너지를 반사하는 우주 거울, 북극에서 시작되는 해류를 작동 불능 상태로 빠지지 않도록 한 빙하 댐 덕분입니다. 이 모든 시설을 개발하여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앞장섰던 우주의 슈퍼맨 ‘스페이스 에스(S)’가 이번에는 북극에서 메탄하이드레이트를 채굴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화석연료 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메탄하이드레이트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량은 과거 우리가 쓰던 석탄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반에 지나지 않습니다. 온도가 올라갈 걱정은 없습니다. 탄소 먹는 하마가 다 흡수해 줄 테니까요. 우주 거울의 태양에너지 반사량도 올릴 예정입니다."

스페이스 S는 세계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탄소 먹는 하마는 한국은 물론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등 이른바 선진국의 동네마다 세워졌고요. 2015년 체결된 파리협정에서 세계는 이렇게 합의했지요.

‘산업화 이전 수준(1850~1900년)과 비교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를 2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 85년 동안 인류는 한때 1.5도를 넘어섰지만, 탄소 먹는 하마 덕에 다시 1.5도를 수성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형 탄소 먹는 하마를 설치해 과거에 배출했던 이산화탄소를 상당 부분 빨아들일 수 있었던 거죠.

21세기 초반부터 잦아지던 기상이변에는 잘 적응했습니다. 모든 자동차와 열차, 항공기가 전기화되었고, 항구 도시는 방파제를 쌓았고, 행정가들은 폭염과 호우에 견디도록 건축 기준을 강화했고, 에어컨과 히터를 살 돈이 없는 빈곤층,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된 지역민은 ‘기후적응 아파트’에 입주했습니다.

대형 LED 화면에서는 뉴스 진행자와 기자를 스튜디오에 불러 이번 총회 전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영화 ‘에브리띵 윌 체인지’의 한 장면. 플레어 필름(Flare Film) 제공

저개발국·저소득층은 더 가난해졌다

“이 자리에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를 취재하고 있는 ‘고난도 일 4세’ 기자를 모셨습니다. 고 기자, 내년 106번째 총회를 끝으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끝나는데요. 이에 앞서 올해 105회 총회에서 실타래를 풀어야 할 게 있죠?”

“네. 그렇습니다. 바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저개발국에 대기 중 탄소 포집 시설인 ‘탄소 먹는 하마’를 설치하는 문제인데요.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선진국은 올해까지 설치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이 나라들을 압박하고 있고, 반면 저개발국 그룹은 선진국이 설치비의 절반을 부담해야 한다며 버티는 상황입니다.”

“고 기자, 탄소 먹는 하마를 설치하는 데 큰 비용이 듭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작사인 스페이스 S가 신형 모델을 내놓으면서 가격이 두 배로 뛰었습니다. 저개발국 그룹은 하마 운영비 또한 만만치 않다고 토로합니다. 전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에 자동 연계되어 운영되는 탄소 먹는 하마는 스페이스 S가 중앙에서 조정, 관리하는 시스템입니다. 이 때문에 하마 운영자는 스페이스 S에 매달 구독료(관리비)를 내야 하는데, 이 또한 스페이스 S가 지속해서 가격을 올리면서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홈스와 왓슨 할아버지는 세계를 여행하며 행성의 위기를 조사했다고 들었습니다. 2100년에 사는 우리 세대는 여행이 뭔지 잘 모릅니다. 평소에도 밖에 나가지 않거든요. 대신 안구에 장착된 가상현실 글라스로 대체 경험을 하죠. 노인 세대는 우리를 ‘실내 세대’(Indoor generation)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뭔지 모르는, 첫 세대이기도 하죠.

산과 들 그리고 논밭은 죄다 태양열과 풍력 발전단지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바닷가에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촘촘히 들어섰습니다. 숲은 사라졌습니다. 동물이 쫓겨났지요. 많은 땅을 소유한 사람들은 발전소에 땅을 팔고 큰돈을 챙겼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쥐꼬리만 한 돈을 받아 날리고 점차 가난해졌어요. 농촌과 어촌 문화도 사라졌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먹는 식량은 전량 수입됩니다. 부자들은 소량 생산되어 비싼 값에 판매되는 유기농 국내산 쌀과 채소, 과일을 먹지만요.

저는 멸종한 생물의 사진, 문건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잘 알고 지내는 홈스 2세 할아버지가 건넨 기린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우아하고 개성적인 동물이 살았다니! 나는 그들을 모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탄소 먹는 하마 쇼핑몰은 북극곰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박제 밑에는 ‘우리가 북극곰을 살렸다’고 쓰여 있죠. 북극 바다얼음의 감소세가 줄어들면서, 북극곰 개체수는 늘어나는 경향입니다. 하지만, 육상과 해상에서 각종 개발 사업은 줄어들지 않았어요. ‘우리에겐 탄소 먹는 하마가 있다’며 오히려 마구잡이 난개발이 이뤄진 거죠. 홈스 2세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기린, 제왕나비, 바다거북, 아델리펭귄, 고리무늬물범…그들은 기후변화 시대에 살아남으려는 인간 때문에 사라졌지. 사람들은 동물의 기억을 지웠단다. 우리 자신이 불편했기 때문에 빨리 잊은 것이지.”

홈스와 왓슨 할아버지가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에서 기후변화와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말할 수 없는 자들의 정치적 항의를 대변했다고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인류는 마지노선인 1.5도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더 가난해졌고 더 예민해졌으며 더 공격적입니다.

*마튼 페지엘 감독의 영화 ‘에브리띵 윌 체인지’(2021)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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