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프랑스에 부는 바람, "내가 지젤 펠리코다"
곽상은 기자 2024. 11. 11. 11:2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재판이 진행되며,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한 성범죄 가해자들의 면모도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고 사건의 실체를 공론화하는 것을 선택한 지젤 덕분에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난 엽기적 사건'의 하나로 스쳐 지나갔을 범죄가 '무엇이 도미니크 펠리코 같은 괴물을 키워내고 여성의 학대를 방치하게 만들고 있는가?'란 문제 의식을 프랑스 사회에 던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재판이 '프랑스 남성성에 대한 재판'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에서 '영감의 원천'이 된 여성
지젤 펠리코(71세)는 올가을 프랑스 신문 사회 면에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50년을 함께 살며 3명의 자녀를 같이 낳아 키워온 남편 도미니크 펠리코(71세)로부터 충격적인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입니다. 도미니크 펠리코는 2011년부터 10년 간 지젤의 음식이나 술에 몰래 진정제 성분의 약을 넣어 의식을 잃게 만든 뒤 인터넷으로 모집한 익명의 남성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아내를 성폭행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도미니크의 의도대로 그녀를 성폭행한 50명의 남성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성범죄 피해자인 여성의 이름이 공개되고 그녀가 프랑스 사회의 유명 인사가 된 건, 이 사건의 재판이 '공개 재판'으로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검찰은 사건이 대중의 구경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공개 재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피고인들의 변호인들도 의뢰인의 '사생활 보호와 존엄성'을 이유로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지젤은 일반적인 성범죄 피해자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지젤의 변호인은 "안타깝게도 이 나라는 성범죄 사건에서 공개보다 침묵을 선호하는데, 우리는 침묵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의 의뢰인은 가능한 한 이 일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며, 수많은 피해자에게 '우리가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영감을 주길 원한다"면서, "부끄러움은 피해자가 아닌 피고인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피해자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재판은 공개로 진행되고 있고, 그녀의 전 남편 도미니크는 물론 그와 공범으로 기소된 남성들 모두 공개 재판의 피고인석에 섰습니다.
도니미크는 인터넷에서 만난 남성들에게 자신의 아내가 부끄러워 자는 척을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들의 집에 도착한 남성 중 단 두 명만이 도미니크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깨달은 뒤 현장을 떠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진 않았고, 이 남성들 사이의 추악한 비밀은 이후로도 계속 유지됐습니다. 도미니크는 2020년 슈퍼마켓에서 여성의 치마 밑을 촬영하다 적발됐고, 경찰이 이 일을 계기로 그의 전자장비를 압수해 추가 조사를 하게 된 뒤에야 이 흉악한 범죄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몰래 탄 약에 취해 의식을 잃었던 지젤도 자신이 10년 간 범죄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됐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며,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한 성범죄 가해자들의 면모도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피고인들은 26세에서 74세 사이의 남성들로, 안정적인 직업과 가정을 가진 이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재판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 중 40%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정생활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54%는 범죄 경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70%는 여전히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며, 그것이 성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했고 그녀가 동의했다는 남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여성 단체들은 그녀가 동의했다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는 가해 남성들의 주장엔 아직도 프랑스 사회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가부장적 관점이 반영돼 있다고 말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투' 바람이 불었던 2018년에도 프랑스에선 카트린 드뇌브 등 문화계 유명 여성 인사 100인이 르몽드에 '유혹할 자유를 변호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투고해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프랑스는 서구 사회에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고 사건의 실체를 공론화하는 것을 선택한 지젤 덕분에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난 엽기적 사건'의 하나로 스쳐 지나갔을 범죄가 '무엇이 도미니크 펠리코 같은 괴물을 키워내고 여성의 학대를 방치하게 만들고 있는가?'란 문제 의식을 프랑스 사회에 던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재판이 '프랑스 남성성에 대한 재판'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여성 단체들은 특히 50년을 한 남자의 아내로 살며 3명의 자녀를 성실하게 키워낸, 야한 옷을 입지도 않고 특이한 성적 취향을 보이지도 않은 '전통적인 측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도덕적인 그녀'의 면모가 성범죄 피해자에게 흔히 덧씌워지는 2차 가해의 명분조차 주지 않음으로써, 사회가 온전히 범죄 자체에 집중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어머니로부터 종종 지난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건강 상태를 염려해 병원 검사 등을 권했던 지젤의 두 아들과 딸은 현재 그녀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50년을 꾸려온 자신의 가정은 물론 삶이 통째로 기만당하는 위기 속에서도, 지젤은 모범이 되기를 원했고 '용기'를 선택했습니다. 동시에 범죄 피해자 지젤은 프랑스 사회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내가 지젤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든 수많은 시위대가 함께 하고 있고, 도미니크 성범죄의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딸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책 출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부끄러움은 피고인들의 몫이어야 한다"던 그녀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재판 결과는 이르면 다음 달 말 나올 예정입니다.
(사진=AP, 엑스(X·옛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 지젤 펠리코
지젤 펠리코(71세)는 올가을 프랑스 신문 사회 면에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50년을 함께 살며 3명의 자녀를 같이 낳아 키워온 남편 도미니크 펠리코(71세)로부터 충격적인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입니다. 도미니크 펠리코는 2011년부터 10년 간 지젤의 음식이나 술에 몰래 진정제 성분의 약을 넣어 의식을 잃게 만든 뒤 인터넷으로 모집한 익명의 남성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아내를 성폭행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도미니크의 의도대로 그녀를 성폭행한 50명의 남성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성범죄 피해자인 여성의 이름이 공개되고 그녀가 프랑스 사회의 유명 인사가 된 건, 이 사건의 재판이 '공개 재판'으로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검찰은 사건이 대중의 구경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공개 재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피고인들의 변호인들도 의뢰인의 '사생활 보호와 존엄성'을 이유로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지젤은 일반적인 성범죄 피해자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지젤의 변호인은 "안타깝게도 이 나라는 성범죄 사건에서 공개보다 침묵을 선호하는데, 우리는 침묵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의 의뢰인은 가능한 한 이 일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며, 수많은 피해자에게 '우리가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영감을 주길 원한다"면서, "부끄러움은 피해자가 아닌 피고인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피해자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재판은 공개로 진행되고 있고, 그녀의 전 남편 도미니크는 물론 그와 공범으로 기소된 남성들 모두 공개 재판의 피고인석에 섰습니다.
도니미크는 인터넷에서 만난 남성들에게 자신의 아내가 부끄러워 자는 척을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들의 집에 도착한 남성 중 단 두 명만이 도미니크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깨달은 뒤 현장을 떠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진 않았고, 이 남성들 사이의 추악한 비밀은 이후로도 계속 유지됐습니다. 도미니크는 2020년 슈퍼마켓에서 여성의 치마 밑을 촬영하다 적발됐고, 경찰이 이 일을 계기로 그의 전자장비를 압수해 추가 조사를 하게 된 뒤에야 이 흉악한 범죄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몰래 탄 약에 취해 의식을 잃었던 지젤도 자신이 10년 간 범죄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됐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며,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한 성범죄 가해자들의 면모도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피고인들은 26세에서 74세 사이의 남성들로, 안정적인 직업과 가정을 가진 이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재판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 중 40%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정생활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54%는 범죄 경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70%는 여전히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며, 그것이 성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했고 그녀가 동의했다는 남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여성 단체들은 그녀가 동의했다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는 가해 남성들의 주장엔 아직도 프랑스 사회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가부장적 관점이 반영돼 있다고 말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투' 바람이 불었던 2018년에도 프랑스에선 카트린 드뇌브 등 문화계 유명 여성 인사 100인이 르몽드에 '유혹할 자유를 변호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투고해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프랑스는 서구 사회에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고 사건의 실체를 공론화하는 것을 선택한 지젤 덕분에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난 엽기적 사건'의 하나로 스쳐 지나갔을 범죄가 '무엇이 도미니크 펠리코 같은 괴물을 키워내고 여성의 학대를 방치하게 만들고 있는가?'란 문제 의식을 프랑스 사회에 던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재판이 '프랑스 남성성에 대한 재판'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여성 단체들은 특히 50년을 한 남자의 아내로 살며 3명의 자녀를 성실하게 키워낸, 야한 옷을 입지도 않고 특이한 성적 취향을 보이지도 않은 '전통적인 측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도덕적인 그녀'의 면모가 성범죄 피해자에게 흔히 덧씌워지는 2차 가해의 명분조차 주지 않음으로써, 사회가 온전히 범죄 자체에 집중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어머니로부터 종종 지난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건강 상태를 염려해 병원 검사 등을 권했던 지젤의 두 아들과 딸은 현재 그녀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50년을 꾸려온 자신의 가정은 물론 삶이 통째로 기만당하는 위기 속에서도, 지젤은 모범이 되기를 원했고 '용기'를 선택했습니다. 동시에 범죄 피해자 지젤은 프랑스 사회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내가 지젤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든 수많은 시위대가 함께 하고 있고, 도미니크 성범죄의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딸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책 출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부끄러움은 피고인들의 몫이어야 한다"던 그녀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재판 결과는 이르면 다음 달 말 나올 예정입니다.
(사진=AP, 엑스(X·옛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 아래 주소로 접속하시면 음성으로 기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https://news.sbs.co.kr/d/?id=N1007867556 ]
곽상은 기자 2bwithu@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BS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일본 총리 지명 선거 당일에…'캐스팅보트' 야당 대표 불륜 폭로돼
- 윤 대통령 "임기 후반기, 소득·교육 양극화 타개 위한 전향적 노력"
- 이스라엘 축구팬 피습 후폭풍…유럽 내 추가 공격 경계령
-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시즌 첫 월드컵 단체전 우승
- 전 여친 살해 '30대 미용사' 신상정보 공개될까…"내부 검토 중"
- '소녀상 모욕' 미국 유튜버, 편의점 업무방해로 검찰 송치
- AI 발전 속도 너무 빨라…빅테크들, '성능 평가' 서둘러 재설계
- '30세 넘으면 자궁 적출'이 저출산 대책?…일본 보수당 대표 망언 논란
- 주문한 이불에서 수상한 냄새…열어보니 '곰팡이 이불' 경악
- "해외계좌서 130억 찾아가라"…황당 메일에 속아 마약 운반